익명 질문함: 시 수업을 듣거나 해설집을 읽어보면 시를 느끼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요?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시집을 펴면 마냥 어렵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문맥도 모르겠고 막 이상한 단어끼리 붙여놓은 것 같고... 예전에 시에 대한 글을 쓰셨던 게 기억나 질문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대답이 조금 길어질 것 같네요. 우선 시 읽기에 앞서서 ‘읽기’와 ‘이해’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매일 뭔가를 읽고 이해하고 그것을 행동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흔한 예시로 지하철 시간표를 들어볼게요. 오늘 지하철 막차 시간이 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하철 시간표를 ‘읽으면’ 됩니다. 알아보고자 하는 요일과 목적지와 출발지 등 필요한 정보를 이 시간표에 대입해서 ‘읽어낸’ 후에 ‘이해’를 하면 되는 것이죠. 

우리는 흔히 ‘읽는다’라고 하면 책을 펼쳐 거기에 쓰여진 글자들을 읽는 것으로 좁게 이해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책 뿐 아니라 표지판, 노선도, 지도, 시계, 달력 모두 기호로 이뤄져 있고 우리는 매일매일 이 기호들을 ‘읽고’ ‘해석’하여 ‘이해’를 통해 일상을 만들어갑니다. 표지판이나 노선도를 이루는 기호들이 지시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광화문역은 광화문역일 뿐이고, 저녁 7시는 저녁 7시입니다. 이것을 만약 각자 다르게 해석하면 저녁 7시에 광화문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할 수도 지킬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명확한 읽기와는 조금 다른 종류의 읽기가 존재합니다.

익명님이 친해지고 싶은 어떤 사람과 저녁 식사를 했다고 가정해보죠. 그 분에게 익명님과의 저녁식사가 기분 좋은 일이었는지 지루한 일이었는지 알아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표정이나 몸짓, 말투 같은 것을 보고 추측할 수도 있고, 직접 어제 저녁 식사가 어땠는지 물어보고 그 대답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추측’과 ‘믿음’에 기반하는 해석일 뿐, 그 자체로 진실이라고 확정짓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표지판이나 지도를 읽는 것과는 달리 굉장히 넓은 해석의 여지를 가지고 있는 셈이죠. 우리는 매일 일상에서 이러한 종류의 불확실성을 스스로 해석하고 추측하면서 살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종류의 불확실성은 조금 고통스러운 것이죠. 뭐가 뭔지 모르는 삶은 혼란스러우니까요. 이런 불확실성을 조금이라도 더 명료하게 만들어주는 종류의 대표적인 ‘읽기’가 뉴스와 신문입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추려내고 언론은 ‘오늘 세상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고 사람들이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모든 종류의 학문도 우리의 ‘무지’를 조금이라도 유의미한 ‘앎’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좋은 시는 해석의 불확실성을 함부로 쉽게 ‘아는 것’으로 만드는 일을 위험하다고 여깁니다. 저는 오랫동안 시 읽기를 두고 “비밀을 즐기는 장르”라고 말해왔는데요. 해석의 여지가 너무나 다양해서 불확실한 것을, 오로지 단 하나의 정답으로 추출하여 이해하는 것은 사실 폭력이 되기 쉽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어떤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그날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확정짓고 결론 내린 후 잊혀지는 일들이 아주 많죠. 좋은 시는 이런 종류의 모든 ‘앎의 폭력’에 저항합니다. 모르는 것을 함부로 간단히 손쉽게 해석하지 않기 위해, 그러나 모르는 것을 가장 섬세하게 귀 기울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장르라고 말이죠. 

그러니 익명님께서 어떤 시집을 읽고 “문맥도 모르겠고 막 이상한 단어끼리 붙여놓은 것 같고…”라고 느끼셨다면, 사실 이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시를 이미 읽으신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한 편의 신문 칼럼을 읽는 것과 시 한편을 읽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입니다. 전자의 경우 하고자 하는 말을 아주 뚜렷하게 요약할 수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러한 종류의 요약에 최선을 다해 저항하는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전자처럼 쉽게 요약 가능한 시가 있다면, 그냥 짧은 산문이나 일기, 칼럼을 쓰면 될 것이지 시로 쓸 이유는 없겠지요. 오히려 우리는 너무 쉽게 읽히는 시들, 뚜렷하게 메시지로 환원되는 시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시를 읽는 법은 간단합니다. ‘비밀을 즐길 것’. 우리가 어떤 시를 보고 ‘어렵다’ 혹은 ‘난해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 안에서 뭔가 뚜렷하게 요약 가능한 메시지를 읽어내려고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애초에 시는 그러한 손쉬운 이해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언젠가 저는 어떤 글에서 “시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거는 장르”라고 쓴 적도 있는데요. 지도와 표지판, 시계와 달력은 우리에게 결코 말을 걸지 않습니다. 역시 광화문역은 광화문역일 뿐이고, 저녁 7시는 저녁 7시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는 어떨까요.


남겨진 것 이후에 / 이제니


흰 집 건너 흰 집이 있어 살아가는 냄새를 희미하게 풍기고 있다. 거룩한 말은 이 종이에 어울리지 않아서 나 자신도 읽지 못하도록 흘려서 쓴다. 하늘은 어둡고. 바닥은 무겁고. 나는 다시는 오지 않는 사람을 가지게 되었고. 너는 말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읽히지 않는 문장이 되었다. 낮잠에서 깨어나 문득 울음을 터뜨리는 유년의 얼굴로. 마음과 물질 사이에서 서성이는 눈빛으로. 인간 저 너머의 음역으로 움직이고 움직이면서.


돌보는 말과 돌아보는 말 사이에서
밀리는 마음과 밀어내는 마음 사이에서

사랑받은 적 없는 사람이 모르는 사이 하나하나 감정을 잃어버리듯이. 한밤의 고양이와 친해진 것은 어느 결에 사람을 저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냥 사람이라는 말. 그저 사랑이라는 말. 그러니 너는 마음 놓고 울어라. 그러니 너는 마음 놓고 네 자신으로 존재하여라. 두드리면 비춰볼 수 있는 물처럼. 물은 단단한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남겨진 것 이후를 비추고 있었다.

_이제니, 『그리하여 흘려 쓴 것들』, 문학과지성사, 2019.


출간된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이제니 시인의 새 시집의 첫 시입니다. 이 시는 우리에게 어떤 요약 가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기보다는, 아주 섬세한 실감들을 감각적으로 매만질 수 있게 해줍니다. “흰 집 건너 흰 집”, 멀리서부터 은은하게 풀려나오는 듯한 “살아가는 냄새”, “다시는 오지 않는 사람”, “낮잠에서 깨어나 문득 울음을 터트리는” 시간, “서성이는 눈빛”, “사랑받은 적 없는 사람이 모르는 사이 하나하나 감정을” 잃어버리게 되는 일들…  또박또박 또렷하게 글자로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마치 종이 위에 물감을 흘린 것처럼 종이를 기울이는 방향으로 번져가는 물감의 형태처럼 그야말로 흘려쓴 문장들입니다. 

제목이 ‘남겨진 것 이후에’ 인데요. 무엇으로부터 남겨진 것일까요? 우린 이것을 각자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다면 이별 이후 남겨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거구요. 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맞이한 적이 있다면 죽음 이후 남겨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고, 시에 나오는 사람처럼 애초에 사랑 받은 적도 없고 사랑한 적도 없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하나 감정을 잃어”버린 이후 남겨진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 시 제목을 통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다를 거에요. 다만 평소에 생각해보기 힘들었던 어떤 감각과 생각들을 떠올리면서 그것에 집중해보면 됩니다. 그건 표지판이나 지도, 시계와 달력을 읽는 것과 다르게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 알지 못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불안한 것,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어떤 환희나 기쁨,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먹먹해지는 슬픔 등 모든 것들을 다시 경험하게 해줍니다. 

저는 이제니 시 특유의 호흡을 무척 좋아합니다. 떠오르는 언어들을 어떤 형태로 정형화시켜서 길들이지 않고, 물 위에 떨어트린 물감이 퍼져나가는 모습처럼, 부드럽게 풀어져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특유의 호흡을 가지고 있지요. 이제니의 시는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 내어 읽을 때, 이 호흡이 가진 그 리듬감이 훨씬 더 풍부하게 경험됩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리내어 읽고 듣기에 적합한 시들이지요. 시는 우리를 조금 더 부드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줘요. 서로 적대적인 의견으로 격앙되어 있는 긴장으로 가득 찬 토론장에서, 말의 내용보다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 표정, 호흡, 그 공간의 분위기에 집중한다면 그 공간이 전혀 다르게 경험되는 것처럼요.

시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우리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 모두를 조금 더 ‘경청하는’ 자세로 살아가게 하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경청은 우리 자신과 타인, 세상을 우리가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겸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다시 한번, “시집을 펴면 마냥 어렵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문맥도 모르겠고 막 이상한 단어끼리 붙여놓은 것” 같다고 느끼신 것은 익명님이 시를 읽을 수 있는 완벽한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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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학평론가와 비평가의 차이가 무엇인지" 고민 중인 장은정이라고 합니다. 제가 장난 삼아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어느 잡지에 글을 발표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잡지를 구매하거나 도서관에서라도 찾아보실 분들이 딱 백명만 되어도, 그 백명의 이름들을 떠올리면서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저만의 비평 독자들을 모아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꼭 백명이 아니더라도 열명만 되어도 저는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열명이 실존한다고 확신하기가 어려워요. 여기에 제 독자라고 밝혀주시면 글을 쓸 때 그 열명을 떠올리며 원고를 쓸 것 같습니다. 메일 주소를 알려주시면 최근 작업소식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당연히 무료이고, 더 이상 소식을 받아보고 싶지 않으실 때에는 그냥 제 메일 주소를 차단처리해주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7월 14일

장은정 올림

 

 

 

 

그리고, 대답들


Let it go! / 항상 응원합니다. / 늘 응원하여요. 사랑해요. / 글을 기다릴게요 / 메일을 즐겁게 기다리겠습니다 :) / 항상 응원하구 있습니다! / 많지 않은, 그러나 존재하는 여성 비평가들의 글을 보고 그 사유에 자극받고 싶어요. / 항상 감사하고 응원하고 있어요! /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질문을 멈추지 않는 선생님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계속 쓰셨으면 좋겠습니다. / 좋은 글을 써주세요. 그리고 삶에서 힘을 잃지 마세요 / 응원해요 ! / 밟아야 할 프로세스가 없다는 것이, 잘해나가고 있다는 인정을 줄 믿을만한 '권위'가 없다는 것이 때로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것 같은 막막함과 외로움을 느끼게 할 수도 있지만, 저 같은 무명의 독자들이 천천히, 단단하고 믿을 수 있는 돌다리가 되어드렸으면 좋겠어요. 조심조심 딛고 늘 건강히 나아가시길 기도하겠습니다. / 한국문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늘 고민하시는 평론가 님을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지치지 않고 글을 쓰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사랑합니다. / '당연히' 무료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평론가님,비평가님,작가님 글 기다립니다. 허잇챠! / 항상 마음 깊이 응원하고 있습니다. :) / 기대됩니다! / 야호 / 은정님의 글을 늘 기대하고 응원해요. 💪 / 응원합니다! / 늘 멀리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평온하고 행복하실 일이 더 많기를 바라요. 그 일로 돈도 많이 벌었으면 좋겠고요. 지나가는 말로 오래 전에 식사나 커피 하자고 하셨는데 제가 쑥쓰러움이 많아 먼저 말씀드리지 못했어요. 그때 먼저 말씀드리지 못한 게 제 후회로 남아있지만... 지금은 안 그래도 좋으니 행복과 건강만을 빌어요. ❤️ / 🧡💛💚💙💜🤎🖤🤍 / 오래오래 글 써주세요 / 선생님의 물음과 성찰이 궁금하고 개인적으로 비평이 유효하게 전달되는 방식이 고민됩니다. 응원하고 있어요. 🙌🏼. / 비평의 역할에 대해 숙고하는 비평가가 있어서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응정님의 행보 앞으로도 지켜보고 응원하겠습니다. / 글 늘 잘 보고 있습니다. 응원합니다. / 이런 시도 좋고 활동을 응원할게요. / 고민의 흐름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잘 읽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 장은정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독자로서 행보를 늘 응원하고, 지지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종종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지만 제가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는 힘을 선생님에게서 받고, 또 배웁니다.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어 짧게나마 글을 남깁니다. 오늘 하루도 무탈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랄게요. 건강 유의하세요! / 응정무 따랑해욧 / 제가 늘 여기 있을게요! / 항상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표현이 이상한데.. 아무튼 무기력한 일상에서 잠시나마 생각하게 해주셔요. 구몬 선생님 같은 느낌.. 이미 응원하시는 분이 많아서 덜 보태도 되겠지만 많아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화이팅 ! / 함께, 같이 써나가요. 늘 감사합니다. / 늘 응원합니다. / I’m your biggest fan / 저도 더 잘읽고싶어요 /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있기에 쓰신다는 말이 가슴이 깊게 남아요. 선생님의 사려깊은 글 앞으로도 기대하고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응원해요 세상이 이렇더라도 응원하고 있어요 / 선생님의 소식을 메일링 서비스로 받아볼 수 있다니! 이런 프로젝트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해요. 항상 응원하는 마음입니다. / 고민하시는 점들, 일상 이야기들, 그 외 지면에 발표하신 글들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응정님의 말씀에는 어떤 울림이 있어서 종종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해요. 작업소식을 보내주신다면 기쁜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응정님께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러모로 고통스러운 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함께 힘내어요! / 비평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 매력을 알아가고 싶어요! / 평론가님 응원합니다 :D 항상 목소리 내는 모습 너무 멋지시고, 존경합니다! /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언제나 응원해요. /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계속해서 글을 쓰시려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기대하고 있습니다! / 책을 마케팅 할 때 유명한 남성 평론가의 이름을 빌린 문구가 많더라구요. 왜 여성 평론가는 없을까 궁금해 하다가 제가 여성 평론가들을 모르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글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여성평론가들의 시각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합니다. 어떻게 시작할지 몰랐는데 첫걸음을 떼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 저 역시 요즘 글을 쓰고 싶지만 쉽게 쓰고 있지 못 한데, 힘드신 상황에서도 꾸준히 글을 쓰시고자 하는 비평가님을 응원하고 싶어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앞으로도 건필하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늘 응원합니다! / 글을 쓸 때의 막막함에 대하여 상상해봅니다. 읽는 것으로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제 게으름을 이겨야만 합니다. / 늘 용감하게, 힘들지만 씩씩하게 글 써주셔서 고마워요. 쑥스러움이 많고 ㅠㅠ 조용히 읽어서 그렇지 늘 감사히 읽고 있어요! 은정 님의 글이 얼마나 큰 용기가 되는지 몰라요! 이런 형태로 소식 전해주시면, (물론 쑥스러움 때문에 ㅎㅎㅎ 막 떠들썩하게 읽고 그러진 못하겠지만 ㅠㅠ) 쓰시는 글, 감사하게 찾아서 읽어볼 거예요 ㅎㅎ 응원하는 마음으로, 축복하는 마음으로 비평 독자 프로젝트에 임합니다! (은정 님의 노력과 진심을 다한 마음들이 분명히 많은 부분들을 - 더 밝은 쪽으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말씀을 꼭, 꼭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 언젠가 등단한다면 제 시를 꼭 비평받고 싶어요 늘 응원합니다 / 장은정 평론가님과 평론가님의 글을 애정합니다. 목소리 내주셔서 감사해요. 이런 마음이 혹 부담이 될까봐 꼭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망설였었습니다. 늦게나마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침묵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 :) / 노동으로의 평론' 에 대한 글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건필을 응원하고 싶어 신청합니다. / 행복합시다 / 응원합니다 / 수만 명의 독자가 생길 때까지 함께하고 싶습니다. 사랑해요... (♡) / 항상 좋아하고 있어요! / 안녕하세요. 저는 영화와 문학을 좋아하는 평범한 독자입니다. 제가 힘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기쁘지만, 저를 떠올리며 글을 쓰신다니 결국 서로에게 큰 활력이 될 것 같아요. 응원합니다 :) / 오래오래 써주세요. / 은정님은 멋진 글을 쓰시고 그것보다 더 멋진 분이세요. 언제나 응원할게요 🍀☘️ / 좋아해요 계속 그럴 거예요 / 오랜 기간 독자가 되어, 시간이 묻어나는 글을 보고 싶습니다. 첫 글자와 마침표 사이 고민한 지점을 들으며, 글 너머의 마음에 가까워지고 싶습니다. 백 명 중 하나가 되어 은정 님의 기력이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 / 최근에야 SNS로 선생님을 보았고, 말씀하시는 것들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하시는 모든 것에 대해 응원드려요. / 고맙습니다 / 선생님 사랑해요 / 👍 / 응원합니다. / 저는 오래된 독자는 아닙니다만 최근에 우연히 그 글을 읽고 트위터도 팔로우하며 조용하게나마 지켜보던 1인입니다. 같이 힘냅시다 (무엇이든간에). 전 조용히 응원할께요 쭉- / 트위터를 통해 장은정 평론가님의 치열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의 힘이라도 보태고 싶어서 구독을 신청했습니다. 반지성주의가 넘실대는 시대에 위기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 인문학을 계속한다는 게 의미없게 느껴지는 순간을 저 자신도 많이 경험하고 있고요. 분야가 다른 글을 쓰고 있지만, 독자층의 실수를 파악하고 싶은 평론가님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계속 좋은 글을 써주시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장을 마련해 주시니 편하고 좋네요... 근데 제가 편하다면 누군가의 수고로움이 분명 있는 것일 텐데... 잊지 않고 감사하게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계속 써주세요. 응원합니다. /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 / 🙏🏻💎 감사합니다. 저는 유리 멘탈들이 파상의 힘으로 세계를 바꿀 거라 믿고, 응정 님의 활약을 기다립니다! / 응원합니다 ! / 선생님이 어떤 글을 쓰시든 저는 독자가 되겠습니다.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어디에선가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있습니다. 가끔 그 실체가 되어드리겠습니다 / 언제나 응원합니다. 평론가님 덕분에 때로 아주 큰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 함께하겠습니다😌 / 🥰🥰🥰 / 응원합니다. 같이 나누어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자 하는 사람이 있고 저는 읽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글을 써주세요. 읽겠습니다. 고민하는 것을 멈추고 싶지 않습니다. / 은정 평론가님 글 읽고 싶습니다 :) / 글 늘 잘 읽고 있습니다. 트윗도요 ㅎㅎ 은정님 글이 가진 힘을 믿어요. 정말 좋은 글이거든요. 늘 건강하고 끈질기게 계속 써주셨음 합니다. / 어찌 생각하시든, 읽는 사람들로서 문학 비평에 대한 무엇을 응원합니다. / 꾸준히 자기 언어로 표현하는 여성 비평가의 존재는 동시대의 여성 독자뿐만 아니라 미래의 여성들에게도 길잡이별이 되어줄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니까요. 언제나 지지하면서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습니다. / / 애써서 말해주시고, 힘든 상황에서도 말해주셔서 늘 감사해요. 저는 침묵이 익숙한 독자라 은정님이 부러우면서도 존경스러워요. 사,,사,, 사는 동안 행복하세요!💖 <캣콜링> 글 읽고 팔로했어요! 비평가님 화이팅! / ♡ /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 항상 응원합니다! / 소설을 좋아하지만 문학비평을 많이 찾아읽지는 못합니다. 응정님 트위터에 쓰시는 글에 공감할 때가 많아서 작업 소식 팔로우하며 읽어보고 싶습니다. / 은정님의 독자가 될 수 있어 기쁘네요!!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 / 앞으로 보내주시는 메일의 글도 잘 읽어보겠습니다. 기다릴게요! / 지치지 말아 주세요. 항상 응원합니다! 💪 / 사랑해요!💓💓💓 / 잘 보고 있어요! / 응원합니다. 고맙습니다 / 늘 응원하는 마음으로, 제가 관심이 있는 분야에 비평가님 같은 분이 계시고 또 비평가님의 글이 존재한다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을 읽는 것은 영혼을 영글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 또한 미흡하게나마 글을 쓸 용기를 얻어요. 앞으로도 건강히 쓰고 싶은 글을 써나가시길 바라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비평가님의 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 건강한 계절되세요^^ / 우리는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窓으로 선생님을 선택하며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 트위터에서 처음 뵀는데 계속 읽고싶은 트윗들이었어요! 100명 중 1명 되고 싶어용 /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정말 많이 응원하고 있어요. 든든한(?) 한 명의 독자로 자리하겠습니다. / 봄, 경향신문 기사 보고 장은정을 응원함!^^ /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 계속 써주세요. 계속 읽을게요. / 백명이 이미 넘었다고 해서 어쩌지 고민하다가 폼 남깁니다. 계속 써나가시는데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오히려 저도 좋습니다 / 늘 응원하며 발표 지면을 따라읽고 있는 독자 중 하나입니다. 언제고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몇 안 되는 제 기쁨입니다. 부디 오래 써주세요. / 독자가 될 수 있어 무척 설레고 앞으로의 글들이 기대가 됩니다. / 고맙습니다. /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 조용한 독자입니다. 오래오래 작업 잘 이어나가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평론가님의 글과 말과 행동과 사유를 늘 가슴에 새기고 있어요. 어쩌면 평론가님께서 겪었던 부조리한 일들 저 역시 겪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괜찮다,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자 라고 결심할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감사합니다. 그저 그 자리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이렇게나마 마음을 전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 연희에서 비유 기획 단계 때 스쳐지나듯 몇개월간 뵈었던 사람입니다! ㅎㅎ 써주시는 글 읽으며 늘 조용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앞으로도 계속 응원 보내겠습니다 💪💪 / 응원할게요. :D / 장은정 만세! /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 / 생각나는 드라마 대사가 있어서요. 그리고 저 역시 회사 동료들에게 매일 하는 말이기도 하구요. “내일 봅시다.” / 응원해요! 사랑해요! /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응원하고 있습니다. 계속 목소리를 내주세요. 그치만 힘들 땐 조금 쉬셔도 돼요. 저는 늘 약한 쪽으로 기울어지시는 선생님의 언어에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함께 위안을 얻습니다. / 응원합니다. 저와 은정님을 비롯한 세상에 있는 모든 은정이들이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자유롭게, 맘껏 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저도 비평을 쓰고 있고 첫 평론집이 곧 나오지만 앞으로 계속 비평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비평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이 됩니다. 비평에 대한 선생님의 트윗과, 트윗 비평을 곰곰 새기며 평소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 늘 용기를 보여주셔서, 목소리를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을 챙기시면서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 트위터 보고 달려왔어요. 은정 님의 독자가 될게요! 😊😊 /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저에게 동시대의 글쓰기란 어떠해야 하는가 늘 글로써 보여주시는 분 ^^ / 멋진 프로젝트입니다! 아기 키우느라 제대로 다 읽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응원하겠습니다! / 글 기다립니다. / 잘 읽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트위터 계정 통해서 김경인 시인의 해설을 읽고 쓰신 글을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장은정 평론가 선생님이 고민하는 부분,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서 제가 많이 배웁니다. 고맙습니다. 힘내시고요! / 장은정 비평가님 안녕하세요.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응원하고 있어요. 몸 건강히 지내시길 바라요 💖 / 페르시아 군대에 맞서는 300 스파르타보다 더 화력 좋은 백 명의 독자와 손 잡고 어디든 같이 가요💪 / 이소호 시인의 캣콜링 해설에서 처음으로 장은정 작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번이고 밑줄을 겹쳐 그으며 읽었습니다. 앞으로 계속 써나갈 글들이 궁금하고, 읽고 싶어요. 글을 업으로 삼는 게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계속, 꾸준하게 써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럼 메일을 기다리겠습니다. / 지방에서 대학원을 나와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함께 공부한 친구가 장은정 님의 글을 꾸준히 읽고 있다고 말해줘서, 저도 여러 지면을 통해 은정 님의 이름을 발견하면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저는 요즘 지방에서, 여성으로, 시간 강사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늘 생각하고 있어요. 은정 님이 가시는 길이 누군가에게는 지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부담은 갖지 마시고) 기꺼워해주시면 독자인 저도 기쁠 것 같습니다. / 메일의 형태라도 원고를 보내주신다면 고정원고료를 아예 납부할 수 있도록하거나 계좌라도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좋은 작업들 기대할게요🙂 / 읽는 일을 선생님과 나눌 수 있어 기뻐요 / 안녕하세요. 장은정 평론가님! 멀리서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작게나마 힘을 드리고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SNS로 보여주신 글과 문예지에 실린 크고 소중한 글을 유심히 잘 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그러기 위해선 밥도 잘 챙겨드시고, 잠도 푹 주무시고, 건강도 잘 챙기셔야 합니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요..!! 내일 또 펜을 들어 무언가 써야하니까요..!! 그럼 무더운 여름, 풍족하고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늘 응원합니다 건강하세요 / 부끄럽지만 아직 장은정 님의 비평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비평(주로 "평론"이라고 해왔죠)을 잘 읽지 않았고요. 하지만 제가 (독립출판을 하긴 해도) 문학 쪽에 발을 담그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문학 자체에만 관심을 두었었지, 비평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었어요. 이건 국내 문학 비평에 대한 저의 무지한 불신에서 온 것입니다. 한국은 읽을 문학이 왜 이렇게 없는데다가, 왜 평론이나 작품해설을 빼고 소설/시집을 내지 못하는 것인지, 작가는 왜 문학 자체로만 독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것인지 불평하곤 했거든요. 이 상태로 저는 24년 전 한국을 떠나, 인터넷이 원활하지 않은 시대에 한국 문학계의 움직임을 마치 간헐적으로 도달하는 무전처럼 접했고, 그 신호 사이의 공백을 모른 채 지내왔습니다. 인터넷 시대가 와도 그 소원함을 되찾기 힘들었고요. 그러다 한 4~5년 전부터 한국 문학계가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적어도 변화를 갈망한다는 것. 제가 많이 무지하고 무관심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보내주시는 정보들을 (다 읽어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해외에 있어, 보내주신 걸 다 찾아 읽어보기는 힘들 겁니다.) -- 여하튼 트위터로 제가 읽은 건, 응정 님의 문학에 대한 에너지와 애증, 공적 변화를 위한 실천의지입니다. 문학평론가와 비평가의 차이에 대한 고민 자체가 이미 현재의 흐름에 대한 자기차별화 과정을 말해준다고 생각해요.이렇게 독자를 챙겨주셔서 감사하고요, 독자 더 많이 모으시기 바라요. /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게 뭐가 되었든, 필요하다고 하시면 함께할게요. 건강하세요. / 응원합니다. / 밝고 날카로운 글 감사합니다! 화이팅! / 응원합니다. / 헉 대박적 맞춤 서비스~~ 어떻게 이런 생각하신건지 진짜 최고에요! 메일 안보내주셔도 다 찾아서 읽어보겠지맘요~♥️/ 은정님 빠이팅!! 박논 빠이팅!! 올해 계획 전부 빠이팅!!! /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 / 선생님처럼 계속해서 질문하고, 고민하는 사람을 응원하면서 닮아 같은 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고맙습니다. / 좋은 글에 대한 소식을 직접 전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드릴 일이에요. 요즘 같은 때에 더 소중한 이야기 앞으로도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 ☺️👍🏼 / 너무 멋져요! ♡♡♡ 계속 지치지 말고 써주세요!! / 잘 읽겠습니다 /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늘 응원해요. / 저 또한 같은 길을 걸어갈 여성평론가로서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 저는 문학의 넒은 스펙트럼 중에서도 비평을, 여성 비평가의 비평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문창과 학생입니다. 작년 여름, 문학은 위험하다 북토크에서 나누었던 비평가님들과의 대화와 그때 느낀 환희를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요! 불완전한 확신과 두려움 속에서 꿈을 꾸는 저에게는 특히 여성 작가님들과 비평가님들의 활동이 큰 힘이 되고 있어요. 때때로 남겨 주시는 트윗 속에서 깊은 슬픔이 읽힐 때면 저 역시도 마음이 너무 아프고 속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 주시는 긍지와 응원의 트윗들을 보면 저도 다시 힘을 얻고 있습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비평가님께 직접적인 메시지가 닿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비평가님의 소식을 메일로 전해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벌써 설레요!! 긴 장마가 이어지고 있어요. 늘 건강 유의하시고, 우산 꼭 챙기세요. 늘 다정한 응원을 보냅니다. ♡♡ / 항상 응원합니다. /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 장은정 평론가의 목소리가 담긴 것이라면 어떤 글이든 무엇에 관한 글이든 궁금하고 읽고 싶습니다! / 꽃무늬 롬퍼를 입고 씁시다 / 글을 계속 써주세요. 파이팅’ / "안녕하세요, 비평가님. 비평가님의 단단하면서 따뜻한 글에 위로받는 독자입니다. 이 어쩔 수 없는 세상에서 서로 토닥여주며 살아요. 항상 응원합니다! / 똑같은 마음이란 없다고 믿지만 그래도 그 마음을 향해 달려가면서, 삼세번 드림 / 항상 잘 읽고 있어요... 계속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너무 좋은 기회네요!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제가 잘 울지 않는 편인데요... 문학은 위험하다 읽으면서 매일 울었어요. 제가 운 게 뭐 그리 대수는 아니지만... ㅌㅇㅌ 댓글로 마음을 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부끄러움이 많아서... 일단 이렇게라도 마음을 전할 수 있어 기뻐요. / 은정님의 글을 읽어보고 싶어요 비평을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 흔들리는 한 해 속에서도 우리는 존재할 것 입니다. 감사합니다. / "장은정 선생님, 존경합니다. 나중에 꼭 뵐 수 있길 바라요. 저 또한 열심히 읽고 쓰겠습니다. 평론을 쓰는 게 하나도 괴롭지 않은, 방구석의 어느 문창과 학생" / 응원할게요 좋은 비평 많이 남겨주세요 / 트위터 타고 왔습니다. 항상 힘내시기를 빌게요. 파이팅입니다! / 좋은 글 기다릴게요! / 선생님의 자리에서 계속 글을 써 내려가시길, 그 자리가 더욱 넓어지길! / 비평이 제게 좀 어렵지만 쓰시는 내내 따라 읽을 수 있다면 내 무지도 조금 깨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감사합니다. / 좋은 독자가 되어볼게요. 이제 도서관, 서점, 구독중인 잡지에서 장은정비평가님의 글을 보면 반갑겠죠? 덕분에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네요. 감사합니다! 응원할게요~! / 독자에게 독서의 방향을 밝혀주시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 이슈에 대해 힘드실텐데 말씀해 주시는 것도 감사합니다. 사랑을 보내요! / 제가 아주 짙은 회의 속을 헤매고 있을 때 평론가님의 글이 제게 용기를 주었어요. 언젠가 제 작은 도움도 평론가님께 용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멀리서 독자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 긴 마음과 멀리 가는 말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 감사합니다 / 멀리서 작은 목소리로나마 응원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요🐢 /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고작 트윗에 마음, 리트윗을 남기고, 은정님께서 영업해주시는 책이나 영화를 직접 소비해보는 것밖에 못 하지만요. 그래도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 같이 힘내보아요! / 빗소리 감사해요. 언제나. / 어떤 글을 써내려가실지 궁금합니다! 파이팅입니다~! / "단행본 계속 기다리는 중입니다..ㅎ 은정님으로부터 용기를 늘 배웁니다 부디 건강하고 오래 글 써주세요!" / 힘내세요! / 같이 읽으면 좋을 다른 레퍼런스와, 작업하면서 고민했던 지점들을 알면 더 유익할 거 같습니다~ / 저는 국문학 대학원생입니다. 평론도 틈틈이 써보고 있는데요. 물론 그전부터도 평론가님 글을 좋아했습니다만 어떤 사건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전에 읽을 때는 굉장히 잘 쓴 글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 논리와 문장을 배우려고 읽었는데 이후에는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이분이 애쓰고 있구나, 힘들지만 싸워보려고 하고 있구나, 부딪히며 조각 나면서도 다른 부서진 영혼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일어나서 맞서고 있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가끔 트위터에서 그만두고 싶어 하시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계속 싸워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감히 말씀드리자면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소설도 시도 아닌 평론이 가장 정확하게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더 써주시면 좋겠지만 그만둔다고 하셔도 이해하고 이미 써주셨던 글 만으로도 평생 감사할 것입니다. / 화이팅! / 읽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디 써 주세요. 오래오래 같이 쓰고, 읽어요, 우리. / 응원합니다!!! / 선생님 작업이 큰 힘이 됩니다 샘도 힘내세요~ / 꾸준히 발언하는 것은 꾸준히 쓰는 것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평론가님의 평론과 트위터를 보며 늘 느낍니다. 건강히 활동하시길 언제나 응원해요. / 작업을 응원해요. 요즘 며칠만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여러 분주한 일을 이유로 정작 중요한 일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놓치고만 있는 것 같아 조금 초조해요. 갑분편지...ㅋㅋㅋ 건강하게 오래오래 글써요..! / 독자로서, 글 작업 소식 알려주시길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 미시적 작품분석 보다는 제도(장치)비평이 필요한 현재 가장 중요하고 힘든 일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 어두운 눈을 밝혀 열심히 읽을게요. / 여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비평에 많이 목말라 있었습니다. 늘 계셨겠지만 제가 몰랐을 것이기 때문에 부끄럽기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계속 있어주셨기 때문에 만날 수 있어서 반갑기도 합니다. 비평가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 응정님 사랑하고 응원해요 전 이미 응정님의 독자였지만요 응정님이 저랑 같이 오래오래 할머니가 되어서도 쓰고 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 / 보내주시면 잘 읽겠습니다. 많이 읽어보지 않은 비평의 글을 읽을 생각에 이러한 경험이 신기합니다. / 응원하고 또 응원해요 한번 꼬옥 안아드리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필요한 발언하는 것 응원합니다 /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 평론가 님 글을 찾아 읽고 공부하는 독자가 적지 않을 거예요! 앞으로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오랜 독자로서 응원합니다. / 은정 씨의 작업과 노동, 고민과 생활을 늘 응원하고 있어요. 건강 유의하시고 너무 덥지 않은 여름 보내세요. / 천군만마의 응정을 위해! / 응원합니다! 얼마든지 독자가 될게요 / 응원합니다 / 선생님을 멀리서 구독하고 있는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선생님의 진심 어린 비평들을 정말 정말 좋아하고 늘 많이 배우고 있어요. 선생님같이 글을 쓰고 싶다고 매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존경하고 응원하고 있어요. 언제나 사랑이 선생님의 하루에 함께 하기를 항상 기도할게요. / 트윗은 항상 잘 보고 있어요 은정님의 글을 본격적으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날에 모종의 경로로 읽었을 수도 있습니다ㅎㅎ) 메일 보내주시면 앞으로의 활동과 쓰시는 글들 읽어보고 싶습니다. 괜찮으시다면 피드백을 드려보고도 싶고요^^ 은정님 심신에 건강과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며.. / 꾸준히 글 쓰시는 데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음 좋겠습니다만 글을 그냥 받아봐도 괜찮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좋은 마음으로 글 잘 읽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장 평론가님의 독자입니다. 매 문장이 이어질 수 있게 기다리는 독자로 계속 있겠습니다. / 늘 올려주시는 글들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독자가 될 수 있게 노력할게요! / 장은정 평론가님, 건강 잘 챙기세요. 트위터에서 평론가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정말 기뻐요. 감사합니다. 멀리서나마 연대하는 마음을 보내고 싶어요. 더 많은 여성 평론가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 좋은 글과 생각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은정님의 독자가 될수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는 건 별로 없지만) 문학을 통해 많은 위안을 받고 있는 독자입니다. 최근 문학계 이슈들로 저 또한 마음이 좋지 않으나, 선생님 같은 분들이 계시고 글을 계속 쓰시는 한,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용기내 주셔서 감사하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보내주시는 소식지도 감사하게 읽어보겠습니다. (앞으로 쓰실 평론과 책도요) / 은정님 글 너무 재미있어요! / 늘 응원하겠습니다. :) /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 응원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부탁드려요. / 응원합니다 :) 글쓰기에 작은 힘이 되길! / 응원합니다. / 감사히 읽겠습니다 ㅎㅎ / 실존합니다 / 응원합니다! 계속 써 주세요~❤️ / 선생님 글을 읽고 많은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에게 좋은 글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인데요.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글을 메일로 받을 수 있다면 저에겐 너무 큰 기쁨이자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선생님, 꼭 건강하시고, 건필하십시오. 그럼 이만 글 줄이겠습니다. / 많이 배우고 또 같이 성장하는 독자가 될께요 / 글을 쓰고 발표하는 것은 자신감의 문제가 아닐까요. 응원합니다. / 음.. 실은 그동안 비평글은 많이 읽어보지 않았지만 비평가님 덕분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장은정 비평가의 글을 한 번 읽고 싶네요. 건필하시기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 캣콜링 비평을 읽고 은정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도 응원합니다 지치지 말고 오래 써주세요 / <3 항상 응원합니다 <3 / 언제나 응원해요!!:) / 감사합니다. / 늘 고마워요. / 항상 지면으로 만나뵙고 있습니다. 계속 써주세요. 계속 말해주세요. 계속 비평해주세요. /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 소식 기쁘게 기다리고 작업물 잘 찾아 감사히 읽겠습니다. / 응원합니다 / 엄청 힘들고 고된 일이라 생각이 들었고. 요즘 점점 말과 글의 힘과 무서움을 느끼는데 더 그러실거 같아서.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평론가님의 비평을 아직 본 적은 없지만 혹은 봤으나 기억하지 못하는 거겠지만. 지금부터는 꼭 성함을 기억하고, 또 잘 읽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멋진 응원의 말을 남기고 싶은데 뭐라고 써야할지 모르겠네요! 사랑해요 은정님! / 늘 잘 보고 있습니다 / 감사하고 믿고 응원하고 애정합니다 💛💛 / 응원과 지지를 보냅니다! / 항상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치지 않고 계속 써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응원합니다. / 좋은 작업 많이 해주세요!! /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꾸준히 열심히 쓰시기를 응원할게요 ^^ / 늘 응원합니다. /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 시대를 함께 하는 예술인의 글을 기다립니다. / 군림하지 않고, 착취당하지 않는, 올곧은 비평의 길을 응원합니다. / 늘 감사합니다. / "이에 대한 답변은 유보하겠습니다 차후에 말씀 드리죠" / 응정님 참 멋있는 사람이에요. / 언제나 응원해요 / 화이팅. / 안녕하세요! 제가 평론가님의 글을 강성은 시인님 시집<Lo-fi>에서 처음 읽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평론가님 글을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트위터로 만날 수 있어서 숨은독자(?)로 너무 좋기도 했구요! 평론 중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평화로운 것이 있는가. 그러나 묻자. 사람은 그러한 평화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가.’ 이 문장은 제게 두고두고 아주 큰 위로와 힘이 되고있습니다. 그 이후로 이렇게 트위터로 평론가님이 관심을 기울이시는 세계를, 그것의 문제를 알게되고 저도 새로 인식하고 배워가고 있어요. 지쳐가는 시기지만 정말 힘내시고 이렇게 작업 소식지 받아볼 수 있게 된다니 정말 기뻐요!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 평론가님 행보를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글을 쓰시면 뭔가 귀하의 안에서 무구한 것이 함께하기를 바라요. 뭐든 잘하실 분이란 기분이 드는 게, 뭔가 되게 좋은데요?! / 애독자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 어떤 절차나 권위의 인정보다는, 결국 내 작업물이 가닿을 사람들로부터의 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창작자입니다. 영역은 다르지만 평론가님의 생각에 마음 깊이 공감했고, 저도 그 독자가 되고 싶어 남겨요. /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응원합니다. 건필하세요! / 비평가로서의 은정님도, 선생님으로서의 은정님도 모두 겪어보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좋은 가르침 주셔서 감사해요. 늘 응원할게요 :) / 오래오래 글 써주세요. 응원할게요. / 응원합니다 / 고민하고, 말하고, 행동하시는 모습 정말 멋있어요.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부디 오래도록 지치지 않으시길. / 응정님의 문학평론가/평론가로서의 작업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여성으로서 큰 자극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 그간 트위터를 통해 응정님이 던져주신 질문, 지적들.용감하고 맑은 질문들. 실체가 있는 질문을 던져주심에 언제나 감사할뿐입니다. / 평론집을 몇권 읽어보긴했지만 아직 잘 알지는 못해서 평론이란 어떻게 쓰이고 또 어떻게 써야 좋은 비평인가 궁금했었어요. 구독을 통해 비평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좀 더 다가가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가 됩니다. 작업하면서 고민하셨던 지점들이 굉장히 궁금해요! 앞으로의 작업 꾸준히 응원하겠습니다!! / 사랑해요 / 재밌는 글 많이 써주세요~ / 응원합니다! / 아주 많은 책을 읽지도 않고 지식도 많지 않아서 충직한 독자가 되어드리지 못할 지도 모르지만 응원을 드리며 노동의 귀한 결과물을 받아보고 싶습니다. / 응원해요 :) 열심히 읽겠습니닷 / 프로젝트 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사히 읽겠습니다. / 항상 응원해요 사랑합니다 / 계속 말하고 써주세요 늘 감사합니다 / 응원해요, 은정 평론가 님. / 예전에 트위터에 기획해서 써보고 싶으시다던 꼭지들도 여력이 될 때 써주세요, 선생님🙌🏻 그때 올려주신 기획이 정말정말 신선하고 좋아서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일반문학 비평뿐만 아니라 아동문학 비평에도 관심이 있는데, 평론가 집단에서 등단은 했으되 지면을 받지 못한 신인 및 젊은 비평가(문학에서 젊은 작가가 등단 10년 이하의 작가로 통용된다면 비평가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젊은’이란 표현도 너무 이분법적이지만… 10년차 넘어가면 늙은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죠…?)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중견 비평가들이 자리를 꿰차고 내주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본인의 자리를 만들어야만 하는 신인 비평가들의 이야기가 정말 궁금해요. 왜냐면 등단은 못했어도 저 또한 전공생이기 때문…… 선생냄의 글을 꾸준히 읽고 싶습니다.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몸 건강, 마음 건강 챙기세요! 충분히 휴식도 취하시고요! / 한국문학에 일말의 희망이 남아 있다면 평론가님 같은 분들 덕분인 듯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제 막 영화 리뷰를 쓰고 시민기사에 도전해보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결국 기록한 글은 누구에게 읽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저인데 비평가님의 생각도 그러하신것 같아요. 제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 신청합니다.(사실 글도 엄청 기대돼요!) / 세상을 향해 다정한 관심을 가지고 계신 작가님은 제게 큰 위로와 자극이 됐어요. 프로젝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비평가님의 눈에 보이는 독자가 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 응원해요 / 항상 조용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계속 써주세요 감사합니다 / 저는 문학비평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에요.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유의미한 독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요즘 저는 자신감이 없어 글을 잘 쓰지 않는데요. 은정 선생님 글로 추진력(?)을 얻고 싶어요. 자주 행복하세요. / 새로운 행보, 기대되어요. 응원하고 싶습니다. :) / 세상이 혹독할 때에도 소중하다고 믿는 걸 끝까지 지켜가는 사람들 덕분에 그나마 살 만해지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힘을 얻고 함께 나아가는 기분이 들어요. 진부한 말이지만, 응원합니다! / 늘 여성 평론가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평론가님을 항상 응원하고 지켜보고 싶어요! / 작년 여름, 문학은 위험하다 북토크부터 은정님의 활동을 관심있게 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언제나 은정님의 글과 목소리를 지지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건필하세요! /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늘 감사히 따라가며 읽습니다. 감사합니다. / 계속 비평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 힘 내셔요! / 늘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 주변 선배들과 학우분들의 추천으로 수업을 늘 듣고 싶었는데, 여건이 되지 않아 듣지 못한게 너무나 아쉽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항상 찾아 챙겨보고 있습니다. 좋은 글로 때로는 위안을, 희망을,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접 마음을 전할 기회가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멀리서나마 늘 선생님을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잊지 말아주세요. 제가 선생님께 받은 것이 많아서, 늘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지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힘들 땐 잠깐 숨을 고르더라도, 선생님에게 늘 응원을 보내며 함께 마음으로 보폭맞춰 걷고 있는 저 같은 분들도 있다는 것 꼭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날이 점점 무더워지고 있는데 더위 조심하시고, 편안한 나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 다 죽여주세요! /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 기대합니다 /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트위터 계정을 알기 전부터 작가님 글을 읽어왔습니다. 잡지에서 간간이 보이는 비평이 반가웠으나, 잡지에는 제가 좋아하는 글뿐 아니라 다른 글도 섞여 있으니까요. 이런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언제까지나 따라 읽는 독자가 되겠습니다. / 어떤 방식과 어조로 어떤 사건을 비판할지 기대됩니다! / 응원합니다 / 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글을 계속 써주세요. 문학평론과 비평의 차이점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문학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지켜보고 그에 답하는 일을 하시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계속 읽고 써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 재밌고 즐거운 일을 지속하실 수 있기를! / 계속 써주시길 바랍니다. / 늘 응원하면서도 용기도 없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응정님의 사유의 힘에 도움받아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응원해왔어요. / 👍🏻 / 늦은 것 같아 망설이다가 용기내봅니다.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질문들을 하실 때마다 그 용기에 감탄하고 있었는데 은정님 글을 받아볼 수 있다니 ... 비평에도 독자가 있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응원합니다. / 비평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접할 기회가 잘 없었는데 좋은 기획인 것 같아요! 기대하겠습니다. / 기대와 응원 보냅니다! / 남의 글을 메일링 신청하는 것은 처음이에요! 기대됩니다! / 감사합니다 / 기다리겠습니다 :) / 장 선생의 고민과 발상에 동의하며 지지합니다. / 조금 늦었지만 신청해봅니다. 응원합니다. / 저는 언제나 말을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이라서 어제도 폼을 작성하다가 이 부분에서 막혔어요. 그래서 은정님께서 쓰신 강성은 시인님의 lo-fi의 해설을 읽고 왔습니다. 은정님의 글을 계속 계속 읽고싶어요. 그리고 계속 이렇게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아프지 않고 지치지 않으시는 선 안에서요. 늘 은정님의 마음이 우선이 되길 바라요. 진심으로 바라요. 많은 부분들에 있어서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제게 있어서 생에 가장 중요한 지키고 싶은 마음은 누구도 쉽게 미워하지 않는 것. 가능성을 믿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이 가진 기적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인데 참으로 모호한 말들이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함께해주고 계시다고 생각해요. (물리적으로 함께 하지 않아도) 원하는 만큼 글을 써주시고 그리고 그 이전에 살아주세요. 함께 계속 살아가고 싶어요 / 그냥 감사합니다. 은정님 글을 좋아해요. / 안녕하세요 처음 뵙습니다. 무료로 이런 것을 봐도 되는가 모르겠습니다. 응원합니다. / 사릉한다 ㅎㅎ / 항상 응원합니다 / 끊임없이 써주세요. 저는 읽겠습니다. / 늘 응원합니다! / 안녕하세요 글일기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무엇도 읽고 싶지않아서 손을 놓고 있었더니 점점 아무것도 모르는게 무섭습니다 비평이 무언지도 잘 모르지만 잘 읽어보려고 합니다 읽기가 매우 필요하다고 느껴지거든요 고맙습니다 / 단행본이든 잡지든 장은정 님 글이 수록돼 있으면 꼼꼼히 읽고 있어요.. / 비평가님 글은 많이 읽어보지 못했지만, 여성이 쓴 글을 애타게 찾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좋은 글을 읽고 싶고요, 은정님의 메일이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 독자가 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기대됩니다! / 너무 잘 보고 있어요 ;) / 오래도록 비평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 텀블러 계실 때부터 따라오고 있어요. 항상 응원합니다. / 주변인들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글을 안겨주세요!! / 응원합니다! 선생님 메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건강 또 건강하세요 부디! / 응원합니다! / :)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저도 받아볼래요😊 /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 / 감사합니다. / 이야기하는 모습 보면서 함께 말하는 데에 힘이 되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한편 응정님의 일상이 걱정되기도 하고요. 제 일상처럼요. 저도 쓰는 데에 힘이 될 것 같아요. 글소식, 궁금합니다. / 고민하는 사람이 좋아요. 고민을 나눠주세요. / 평론가님 글이 저에게는 큰 위로가 됐어요. 항상 응원할게요! / 이렇게 이메일로 은정님의 글을 받아서 읽을 수 있어 저야말로 기쁩니다 ^^ 그런데 조금 늦은 것 같은데 아직까지 신청이 유효할진 모르겠네요... / 저도 평론과 비평의 차이에 대해 고민했던 적이 있었는데 두가지를 구분짓는 차이점을 잘 모르는데다 제가 쓸 일도 없다보니 제 안에서는 아직도 애매모호 하지만 두 종류의 글 모두 읽어보고나서 여러가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걸 좋아해서 신청해봅니다. / 힘내세요 / 멀리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해주셔 감사해요. / 감사합니다! / 많이 배우겠습니다. / 건강하게 오래 작업하시길... / 기대됩니다 / 전에 백은선, 김승일 시인이랑 읻다 대담회에서 객관적으로 얘기를 하라고 하셨던 게 기억이 나서 이 분 수업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던 찰나, 트위터 계정을 알게 되었고 어떠한 트윗에 감명을 받아 제 마음속에 멋있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멋진 기회가 있어 신청합니다! / 쓰시는 글에서 느껴지는 고민들이 좋아요. 귀한 생각을 나누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비평독자가 된다니,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은정 님이 쓰시는 글을 언제나 진심으로 감사하며 잘 보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생활 모두가 튼튼하고 안녕하게 지속되기를 빌어요. 어려운 여름이지만 여름의 좋은 것들을 누릴 수 있으시기를, 몸과 마음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 / 응원하고 사랑하여요. 할 말 있었는데 까먹었지만 또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기대됩니다. 응원해요! / 응원응원(ง •̀ω•́)ง✧ / 읽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할게요! 즐겁게 쓰는 사람이 되어 주세요. 사실 즐겁지 않아도 괜찮아요. 쓰는 사람으로 남아달라는 어려운 부탁을 드려봅니다.. / 감사합니다. / 응정님이 계셔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 첫 번째 메일링 너무 잘 받았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모두모두 간추려 은정 님에게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 저도 언젠가 비평이 해보고 싶어요😊 / 이런 구독은 처음이라 설렙니다 은정님의 세계를 보여주세요! / 언제나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런 시도도 가능하다는 걸 배웁니다.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응원해요. :) / 화이티잉! / 장은정 평론가님의 글을 받아 볼 수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 응원할게요!! / 고맙습니다 / ❤️ / 기쁜 마음으로 메일 기다리겠습니다 / 이런 기획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쓰시는 글과 행보 응원하고 있어요. 기대하며 받아볼게요. (-: / 들숨에 건강, 날숨에 재력을 얻으시기를! / 감사히 읽겠습니다. / 글을 나누어주셔서 미리 감사드려요 ^^* / 너무 멋져요🙊... 문학은 위험하다를 읽고, 또 작년북토크(?)도 갔다 와서 평론가님의 저자 싸인(?)본의 책도 소장하게 됐었는데 트위터를 통해서 소통을 하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이렇게 유익한 뉴스레터를 기획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응원해요! / 뒤늦게 신청한 사람입니다...ㅜㅜ 오늘 분은 다 말한 것 같아요.. 부끄럽 / 독자로 뵐 수 있어 기쁘고 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장은정님의 트윗과 글들을 잘 읽고 있습니다 더 밀착한 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 항상 응원할게요 / 트위터 잘 보고 있습니다. 응원도 하고 있습니다! / 고마워요 / 감사합니다:) / 너무 기대되어요. 감사히 읽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문학을 좋아하고 비평에 관심있는 고3입니다. 트위터로 장은정 평론가님 구독한지는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페미니즘 평론 정리 트윗으로 처음 뵈었었어요!) 늘 목소리 내고 고민하시는 모습을 보며 공감하기도 하고 따라 슬퍼하기도 하고 (어떻게 된 게 따라 기쁜 날보다 슬픈 날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어려워요) 또 평론가님을 여러가지 생활의 면면들 응원하기도 했습니다. 저번 신청은 놓쳤는데 8월 메일은 꼭 받아보고 싶어서 이렇게 메일 주소 남겨요. / 장마 때문에 생활이 좀 처지는 것 같아요. 아무쪼록 건강한 나날들, 그래도 마음에 품이 조금 남아있어서 예쁘고 다정한 것들이 눈에 보이는 나날들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응원합니다. 계속 목소리 내 주셔서 감사해요." / 기대됩니다! / 다른분들의 트윗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 / 매달 십오일을 기다리고 있을게요💓 은정님 글로부터 매번 많이 배우고 용기를 얻습니다. / 백명의 독자가 꼭 되고 싶어요. / 항상 멀리서 은정님의 글을 읽어가는 독자입니다! 트위터는 초보+눈팅이라 조금 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제 누구보다 빠르게 은정님의 글을 읽고 비판적 지식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계속해서 응원합니다! _ / 응원하고 기대하며 같이 읽고 써나가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 좋은 글을 받게 될 생각하니 기뻐요! 미리 감사합니다...! / 언제나 모든 작업을 응원하고있어요 기대돼요! / 계속, 오래 써주세요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조금 침울하고 막막한 여름날에 설레는 일 만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시길 빌어요. / 늘 애독하고 있습니다. / 저도 은정님의 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건강하세요! / 좋은 프로젝트 진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꾸준하고 즐겁게 글쓸 수 있는 용기있고 따뜻한 좋은 방법을 찾으신것같아요. 제게도 자극이 될 것 같아요. 멋져요 장은정님!! / 재미있게 구독하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고맙습니다 / 1등일까봐 무섭지만 제출합니다. 장은정 선생님 화이팅! / 궁금해요 얼른 받아보고 싶어요 편히 주무세요 / 여기 또 한 명의 독자가 있어요! 항상 응원할게요! / 응원합니다! / 감사해요. 계속 쓰는 모습만으로도 힘이 나요. 오늘도 잘 자고, 잘 드셨으면 좋겠어요. / 다른 분 덕에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평론가님을 더 많이 좋아합니다. 비유도 너무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너무 좋은 문장에 감탄하고 질투하고 동경해요 <3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메일 구독은 처음 하는데요, 평론가님의글!! 무척 기대됩니다!!! 구독 신청을 하게 되어 너무 행복합니다 :-)" / 기대됩니다! 잘 부탁합니다! / 이런 프로젝트 넘 고맙습니다! / 기대가 됩니다^^ / 감사합니다 / 평론을 즐겨읽는 독자입니다. 평론가 님 성함 보이면 눈 반짝하며 챙겨보고 있어요. 여성 평론가 님들 글 더 많은 지면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구독 서비스 감사합니다. / 소극적이고 낯을 가려 답문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꾸준히 열심히 읽을게요 ! :) / 좋아요. / 이런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 / 항상 감사해요 / 늘 응원하겠습니다. / 덜 슬픈 날들이 함께 하길 바라요. 화이팅♡ / 계속 써주세요. 저는 읽겠습니다. /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건필하세요! / 비평문을 구독해보는 건 처음이에요. 많이 설레고 신납니다. 이런 일을 벌여주셔서 감사해요 / 고맙습니다. / 7월 메일도 신청 했었는데 바보같이 메일주소를 남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ㅠㅠ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 타임라인에서 메일링 후기를 접하고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더운 여름 건강히 무탈하게 잘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꾸준한 작업 응원합니다 / ♥️♥️♥️ / 응원합니다. /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 좋은 영향 감사합니다! /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요! / 감사합니다. / 101번째 독자가 되고싶습니다! /응원합니다. 여성의 시각.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했어요. 빛과 소금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 앞으로의 행보가 너무 궁금해요 ! / 감사히 받아볼게요. 기대됩니다^^ / 비평이라니, 이런 소중한 원고를........당연히 유료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작가님 계좌번호를 주세요!!!! / 멋져용!! 감사히 읽겠습니다! / 응원합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 / 늘 응원합니다. / 오래 자고 일어나니 이토록 설레는 소식이 올라와 있어 이른 새벽에 잠시 웃을 수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고민 않고 서둘러 신청합니다. 건강하지 않은 일들이 만연해진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장은정 님의 이 공간에서 만큼은 마음을 담아 건강하셨으면 합니다. 장은정 님도, 저도요. 분명 그럴 수 있겠다는 예감을 조심스레 전하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언제나 소식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다시 뵈어요. / ^^ 비평이 뭔지 알고 싶어요. 학교 다닐 때 재수강을 해도 계속 점수가 안 나왔거든요.. / 고맙습니다. / 응원하고 있어요! / 트위터에서 리트윗되신거 보고 찾아왔어요 너무기대되어요 감사합니다! / 이런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 평론가님의 소식이 궁금합니다. :) / 글 기대하고 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응원할게요. / 감사합니다. / 비평독자라니 이런 좋은 서비스 제공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항상 응원합니다 / ^^ / 여유와 웃음이 항상 함께하시길 바래요. 감사합니다. / 궁금하고 응원합니다! / 늘 응원합니다!! / 비평가님의 글(쓰는 일)이 앞으로도 지속되길 응원하겠습니다. 잘 보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비평 읽는 걸 꽤 좋아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떤 이유에서인지 잘 안 읽게 되었어요. 그러다 비평가 선생님께서 올려주신 트윗이나 공유하신 링크 타고 들어가 몇몇 비평 읽어보니, 예전에 느꼈던 설렘 같은 게 조금씩 되살아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설렘을 안고 메일링 서비스를 다급히 신청해봅니다..! / 좋은 비평을 읽고 나면 머릿 속에 오래 남아 종종 떠오르기도 하고, 그만큼 비평가의 노고가 느껴져서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그랬는데, 생각해 보니 작가에 대한 팬심 표출은 해도 비평가/평론가에 대한 애정과 감사는 잘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의 감사와 앞으로의 감사도 표현해봅니다. 💕 " / 장은정 비평가님의 독자가 되겠습니다! / 비평이라는 험준한 길을 걷는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 / 날 더운데 건강 조심하셔요 / 감사합니다:) / 글노동만으로도 생활비 걱정없는 그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 선생님의 비평을 응원합니다! / 넘 잘 보고 이써여 / 먼 곳에서 가까운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더 많은 힘과 평온이 선생님께로 향햐기를요. / 좋은 하루 되세요🌺 / 당연히 유료라고 생각했는데, 유료화하셔도 되지 않을까요. 어쨌든 감사히 받겠습니다 / 요청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데 정말 무료로 하셔도 괜찮으신지요??? 응원합니다~ / 잘 부탁드려요 / 트위터에서 보고 신청합니다 / 작가님 안녕하세요. 작가님을 작가님의 작업을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신청이 늦어져서 7월 메일을 못 받았는데 7월 메일주소도 받을 수 있을까요? 행복한 일이 작가님에게 가득하길 기도합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일도요:) / 천천히 읽고 오랫동안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감사해요 /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 늘 잘 눈팅하고 있어요 응원해요 :) / 앞으로 잘부탁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 쓰고 싶으면 그냥 쓰면 되는거고 / 기대됩니다. / 늘 멀리서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응원하고 싶어요! / 응원합니다! / 문학과 글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같은 지향점을 가진 비평이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장은정 선생님의 글을 읽겠습니다. / 응원합니다! / 계속 써주세요. / 등단 후 또래 평론가들 모임이나 만남이 많이 없는 편이에요. 제가 하는 작업방식이 효율적인지, 혹은 제가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항상 응원하고 저 또한 든든한 독자가 되어드렸으면 합니다^^ / 항상 하시는 말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멋진 프로젝트 감사해요! /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 트위터에서 많은 분이 추천하시는 메일링 서비스, 저도 살포시 신청합니다. 미리 감사드립니다.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응원합니다! / 트위터에서 보고 신청해요. 작은 이름이나마 작가님께 큰 힘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 마음이 몽글몽글 해져요 🥰 감사합니다 / 7월 메일도 받아보고 싶어요♡ / 7월호 잘 읽었습니다! / 응원합니다😊 / 평론가 님의 트윗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실존하는 독자1입니다. 작업을 응원합니다. / 건강하세요💙 / 고맙습니다 비평가님 잘 읽을게요 / 많은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건필하세요 / 안녕하세요! 어제 7월 소식을 신청했다고 생각했는데 메일이 오지 않아서 신청서를 다시 씁니다. 문학평론과 비평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장은정 비평가께서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응원하고 싶고 독자가 되고 싶어 신청합니다. 문학에 대한, 인간에 대한 애정을 계속 간직하시기를 응원합니다. 찐무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에 건강하시길 빕니다. / 응원합니다.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독자로도 은정님이 가고자 하시는 곳까지 함께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진짜로요. / 괜히 불뚝거렸습니다. 죄송해요. /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 좋아합니다! / 언제나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좋은 글 항상 감사합니다! 지면에서 자주 뵙고 싶어요:) /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멋진 기획 감사해요. 두근두근 기다릴께요. / 좋은 글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 기대하겠습니다☺️ / 두근두근 중입니다:-) / 감사합니다 /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들 덕에 많은 공부를 하먀 조금이나마 성장하고 있습니다 / 보내주시는 글 감사히 읽겠습니다 / 메일링 서비스 시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 사실 이번 '그런 생활'의 이슈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을 접하다 작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작 작가님의 글과 소식을 받아보지 못한 게 아쉬워요.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 지인들의 추천으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8월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0^ / 너무 멋진 장은정 평론가님.. 장은정 평론가님 같은 분이 있어서 저도 계속 쓰고 싶어져요.. / 기대합니다! / 소중히 감사히 읽겠습니다. /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 열심히 읽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 응원해요🙂 / 여기에 있습니다. 계속 써주세요. / 응원합니다. / 건강 유의하세요. 늘 감사해요 / 장은정 선생님의 소식을 들으면서 저도 창작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열정과 끈기가 생길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글을 써나가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독자가 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독자가 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 / 고맙습니다!! / 트위터에서 보고 신청했어요 화이팅! / 메일 주소를 잘못 적어 다시 신청합니다.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 소설을 투고 중인 습작생이에요. 평론가님의 트위터를 평소 자주 열람했어요. 항상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자신을, 주변을 돌보려고 노력하고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모습에서 힘을 얻어요 / 기대합니다! / 늘 지지하겠습니다 / 이렇게 귀한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 응원합니다! / 은정 선생님을 보면서 용기를 많이 얻어요 우연히 뵙게 되었던 날 선생님의 카리스마를 잊지못해요 제가 여기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싸우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연대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 정말로요 💓🌳🙏🌲♥️ /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늘 귀한 마음으로 받아보겠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하시고 지치지 마세요. / 예전에 트위터를 통해 처음 성함을 알게 되었는데요, 이런 저런 글들 늘 잘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메시지를 남기는 건 또 처음이라 조금 부끄럽네요..앞으로도 다양한 생각들 많이 나눠주세요~^^ / 눈에 빛을 잃고 살아가던 요즈음, 집중하여 바라볼 수 있는 글들을 보고 읽을 수 있어서 늘 감사해요. / 믿음직한 독자가 되어드리고 싶어요 ... 감사합니다 / 이렇게까지 수고가 들어간 일을 공짜로 누리게 되어도 괜찮은지.. 요즘 일군의 인스타 작가들은 이런 메일링 서비스를 유료로 진행해 수익을 얻는 것을 몇 번 보았는데, 다같이 공공연하게 선생님을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응원합니다. / 좋은 글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 기대하고 있습니다 /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할게요. / 계속 써주시길. / 안녕하세요.. 너무 기대됩니다. 그런데 이거 구독료 없어요..? / 기대돼요 / 안녕하세요, 저는 미술비평을 이제 막 시작하게 된 미술인입니다. 선생님이 보여주신 비평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태도, 성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많은 것을 고민하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지만, 메일링이라는 방법으로 선생님의 작업 소식을 이렇게 쉽게 받아볼 수 있다니 기쁘고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이 잡지에 발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잡지를 사는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행보도 응원합니다! / 트위터에서 알게 됐어요 /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 장은정 평론가님!!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 / 늘 제가 좋아하는 것을 뜯어보고 이것저것 해석하는 일을 좋아했는데 요새의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가는 여성서사에 대해 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알아보던 중 응정님이 제 트위터 타임라인에 흘러들어왔어요. 비평에 대한 트윗은 아니었고, 페미니스트로서 박원순의 죽음과 일련의 흐름에 대한 분노였지만 담벼락으로 찾아가 한국 문학계에 대한 트윗 몇 가지를 읽어보니 선생님이 쓰시는 글들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 분노와 우울 사이 균형을 잡는 일은 언제나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요새 인생에 더 많은 즐거움을 만들어가려 노력하고 있어요. 시답잖은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하지만 이것은 잠을 자는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하는 시각과 같은 것을 압니다― 할 일을 미루어두고 이상한 장난을 치며 웃곤 해요. / 비평은 배운 적이 없어 많이 부족할 수 있지만, 가끔 답장을 쓰거나 블로그에 감상을 남겨도 될까요? 안 된다면 무시해주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팬이 될게요 / 장은정님의 작업을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 트위터에서 응정님을 알게 되어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르실 거예요. 평론의 서평화 이후 평론의 무게와 가치가 낮아졌다는 이야기가 쏟아질 때에도 평론이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위해 진행되어야 하고,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여져야 하는지 고민하는 글과 문단 내 이슈를 아카이빙 해주시는 글을 볼 때마다 그래도 누군가는 지난한 싸움을 계속 이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항상 응원할게요! / 트위터를 하지는 않지만, 어쩌다 트위터에서 쓰신 타래들을 읽게 되었고 공감하고 생각하게 되는 바가 많았습니다. 비평가님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 저도 제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열 명, 아니 저는 좀 소박해서 세 명만 돼도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정말 그랬었네요 제가ㅎㅎ 오래 잊고 있던 일을 비평가님 덕분에 기억해냈습니다ㅋㅋ 이제껏 비평가님 글 한 편 읽어봤지만 앞으로는 계속 읽어보고 싶습니다!ㅎㅎ / 저도 제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열 명, 아니 저는 좀 소박해서 세 명만 돼도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정말 그랬었네요 제가ㅎㅎ 오래 잊고 있던 일을 비평가님 덕분에 기억해냈습니다ㅋㅋ 이제껏 비평가님 글 한 편 읽어봤지만 앞으로는 계속 읽어보고 싶습니다!ㅎㅎ / 고맙습니다..늘 응원하겠습니다. / 늘 좋은 질문을 던져 주시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열심히 읽으면서 따라가렵니다 감사합니다 / 성실한 독자가 되겠습니다. / 은정 님의 모든 글을 응원해요. / 감사합니다 / 보내주신 글들 감사히 읽겠습니다 :-) / 언제나 응원하고 있습니다. 날이 많이 혼란하지만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선생님의 행보를 응원합니다 / 당연히 돈을 내고 구독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들어왔는데 무료여서 아쉬울 정도예요. 여러 지면에 남기신 은정님의 평론부터 제한된 글자수로 쓰시는 트윗들을 보며 은정님과 유사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생각들을 종종 해요. 쓰는 사람이 쓰는 일로만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건 차치하고서라도, 다양한 이유 때문에 쓰는 일을 지속하는 게 힘든 세상에서 은정님께서 오랫동안 하고 싶은 일들을 차근히 하실 수 있으셨으면 하고 바랍니다. / 트위터의 숨은 독자예요. 메일링 신청 놓쳐서 아쉬웠는데 추가해 주신다니 감사해요! 지난 번에 신청했는데 메일 주소를 빼먹은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 늘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그리고 은정님의 글을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랑했어요🤍🤍 / 응원합니다 / 존경하고 응원해요. 감사합니다. / 응원하고 있습니다! 뭔가 은정님께 항상 위로를 받게되는 것 같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부단히 걸어가시는 모습이 정말 멋있습니다. 꼭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무어라 길게 전하고 싶은데 머뭇거리게 되네요 은정님의 독자가 되고 싶어 신청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시를 좋아하는데 구조적으로 이해하지는 못하겠어서 비평을 찾아보던 와중, 장은정님의 비평가 가장 마음을 울리고, 명쾌하게 작품이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사유를 더 이해하고 응원드리고 싶어 일개 트위터 구독자(?)로서 매우 수줍지만 용기 내서 독자를 청해봅니다. / 고맙습니다. / 예전부터 탐라 너머로 보기만 하다가 오늘 비평독자 프로젝트를 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신청합니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겠습니다. / "비평독자 프로젝트 너모 멋있고 작업 담긴 메일도 궁금해요!" / 이제서야 책에 빠져버린 사람이에요. 은정님으로 인해 문학평론 혹은 비평에도 관심을 갖고 싶어 신청합니다~ 은정님 내내 평안하세요! 감사히 읽겠습니다, / 건필하세요! / 저를 지탱해주는 선생님의 평론을 읽을 수 있어 기뻐요! 글을 읽고 싶다는 감각을 유지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 응원합니다! 힘드시면 꼭 쉬셔요♡ / 건강 챙기세요!! / 응원하고 있습니다! / 좋은 글 기다리겠습니다!^^ / 트위터를 거의 하지 않는데, 비평가님 글 받아보고 싶어 들어왔습니다. 저는 다른 종류의 글을 쓰다가 문학을 공부 중인 남자인데요. 크고 작은 이슈가 있을 때 비평가님 글을 보며 용기를 지지해온 사람입니다. 감사히 읽겠습니다. / 주변 분의 추천으로 찾아오게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 이런 프로젝트 진행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고맙습니다 / 새로운 시도는 참 좋은 거 같아요 항상 응원해요 작가님 / 좋은 독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균형을 잃지 않고 문학(&계)과 함께하려는 응정님의 노력을 아끼고 존경합니다. 힘내시길 바랍니다. /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요즘처럼 개인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늘 열정을가지고 약자들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평론가님의 글들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작업글 등을 메일로 보내주신다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 "예전부터 장은정 평론가님이 쓴 평론들을 읽었습니다. 소설책 뒤에 있는 글들로요. 트위터로도 알게 되어 멀리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신청하게 되어서 너무 기뻐요 지금!" / 문학을 전공했고 문학을 좋아하지만, 문학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트윗을 보며 좋은 자극을 받아요. 잘 보고 있습니다 :) / 작업을 공유해주시고 읽어볼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 감사합니다 트위터 보면서도 많이 배웠어요! / 감사합니다 (후다닥) / 저번에 놓쳐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다시 모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기다릴게요. / 늘 응원하고 존경합니다. / 응정님 항상 응원해요!! 비평가로서의 응정님, 개인으로서의 응정님 모두 즐겁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좋은 기획으로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지지하고 응원해요! / 응원합니다! / 트위터로 잘 보고있습니다.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안녕하세요! 비평에 관심이 많은 문창과 학생입니다! 꾸준히 소설을 배웠지만 대학에 오고 나서는 비평에 더욱 관심이 생겨 요즘 여러 책을 읽고 쓰는 중인데 이렇게 비평독자 프로젝트라는 좋은 서비스에 참여하게 되어 기쁩니다. 해당 프로젝트가 수많은 독자뿐만 아니라 응정 님에게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다 주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아프지 마세요. 응정님의 힘 있는 글 오래 보고 싶습니다. / 화이팅! / 그늘을 두드리며 같이 걸어요 / 제가 (구체적으로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물론 이전에 몇 차례 쓱 본 적은 있을 겁니다, 은정 님 글을 처음 읽은 게 2017년 7월, <시인동네>에 실린 ‘남은 것들’입니다. 역시 자의식을 가지고 읽은 은정 님 마지막 글은 ‘피로 젖은 흙’이구요. 2017년 7월 이후, 장은정이란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오는 글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읽는 자에게 기쁜 일이지요. 누군가의 글을 기다리고 기다렸던 누군가의 글이 지면에 혹은 웹진에 실릴 때 저는 신이 납니다. 조금 더 신났으면 합니다. ^^ / 좋은 글 계속 읽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고 싶어요. / 너무 늦게 신청하는데 가능할런지요ㅠㅠ /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 영화평론에 관심이 있는데 계속 파다 보니 ‘비평’이라는 장르도 궁금하더라구요. 어떻게든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해서 신청해봅니다. / 늘 응원해요! 애정을 듬뿍 보냅니다♡♡ / 잘부탁드립니다! / 누군가의 독자가 되는 건 기쁜 일이에요. 고마워요. / 감사합니다 / 은정님의 트위터를 팔로우하고 있으면서도 비평은 제게 심리적으로 먼 분야였던지라 찾아 읽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비평과 가까워질 좋은 기회를 얻은 것 같아요. 하시는 모든 일 응원합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응원합니다. / 은정 님 저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구요 언제나 사댱하고 응원해요🥺 / 성실하게 읽을게요. / 제 메일함에는 제가 신청하지 않은 소식들도 많은데요, 구독 메일은 제 받은편지함을 소중하게 만들어 줄 것 같습니다. 은정님 글이 도착하면 설레는 마음으로 열어보겠습니다. / 무료여도 되는 걸까요.. 저는 유료독자이고 싶어요. 응원해요. 많이요!! / 항상 탐라 너머로 구경(?)만 했었는데, 한강나가셔서 캠페인?! 하시는거 보고 굉장히 감명받았어요. 용기있는 분이란 생각이 들어 은정님의 글을 더 읽어보고 싶어졌답니다. 은정님의 세상을 보시는 시선이 궁금해요 / 화이팅! / 고맙습니다. / 지난주인가 속상한 마음으로 페이스북에 대화를 보내놓았었는데 아무래도 읽지 못하신 거 같아셔서 여기다 한번 더 남겨보아요.. 사...사모합니다... 멀리서 응원하고 있는 팬이에요. 지면에 나온 은정님 글 꼬박꼬박 챙겨보고 오래 읽습니다. 그래도 놓치는 게 있었을 거 같은데 이렇게 작업 소식을 이메일로 보내주시는ㅠㅠㅠ 일까지ㅠㅠㅠ해주시다니ㅠㅠㅠ 진짜.. 너무.. 멋져요... 은정님 제 마음속에 멋진 언니 탑입니다...ㅠㅠ (하트백개 찍고 싶은데 맥북은 하트 어떻게 찍는지를 모르는 1인ㅠㅠ) /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여자들을 많이 보고싶어요. / 당신을 존경합니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 안녕하세요, 응정님. 신청이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트위터 타임라인에 던지는 물음들과 공론화하는 문제들은 제게도 생각해 볼 것들입니다. 함께 고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백명의 독자 중 한 명으로 다가갈 수 있어 기쁩니다. 밤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있어요. 이 비평독자 프로젝트 덕분에 저는 충만한 마음으로 가을과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무탈하고 따뜻한 나날들을 보내시길 바라요. :) / 다른 분 덕에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평론가님을 더 많이 좋아합니다. 비유도 너무 재밌게 잘 읽고 있어요. 너무 좋은 문장에 감탄하고 질투하고 동경해요 <3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래도록 은정님의 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 🌼🌼많이...죠아합니다🌼🌼 / 잘 부탁드립니당♡ / 은정님 글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독자 1명으로서 맘이 떨려요.. 우연히 사 본 문학잡지나 시집에서 선생님 글을 발견하면 왠지 기뻐서 조금 더 잘 보이는 자리에 두고 자주 읽어보게 되어요 선생님 글을 계속 읽고 싶어요 항상 응원하고 있습니다 🦦💖 / 기다리겠습니다. / 은정님 글 기다리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 한겨례 기사로 시작해서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 / !!!!! / 응원합니다 / 계속 써 주세요. 지난 번 피드에 스케치 하셨던 프로젝트도 어느 정도 구상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시작을 기다리고 있어요. 응원할게요. / 사랑해요 응원해요 / 당신의 자유가 우리의 길이 될 것입니다. / 당신의 열정과 노력을 응원합니다 :) / 비평을 이제 막 읽기 시작한 학생입니다. 장은정 평론가님 글을 읽으며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이번 프로젝트를 신청합니다. 은정님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제가 아직 생각도 짧고 글도 짧은터라 괜히 응원의 마음을 전한답시고 부담만 드린게 아닐지 걱정이 되는데.. 그냥 가볍게 읽고 넘겨주세요. 보내주신 메일은 꼬박꼬박 챙겨 보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장은정 비평가님. 트위터의 응정님 계정을 통해 문학 비평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예지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데 장은정님이 쓴 글부터 읽어보려고 해요. 의미 있는 작업 계속해주셔서 감사합니다! :D / 은정님 글을 꼭 읽어보고싶었어요. 이런 폼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친구가 되어줄래요? /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싶어요. 잘부탁드립니다. / 힘든 순간들보다는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계속 쓰시면 읽을게요. / 싸우지 않아도 될 날을 위해 함께 싸우는 우리를 꿈꿉니다 :) / : ) 뜻 깊은 일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해요. / "모든 글에 영혼과 진심이 담겨있음을 느낍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흠뻑 공감하며 읽고 있습니다" / 좋은 글 잘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두근두근 /보내주실 글들 기대하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 좋은 기획 감사합니다. 이번 겨울이 장은정 평론가님께 더욱 포근하고 다정하기를 바라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작가님의 글들은 따뜻함과 날카로움이 공존해서 읽는 내내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 비평을 잘 모르지만 응정님 트위터가 너무 재밌고 공감가는 글도 많아서 하시는일에도 관심갖게 되었어요 응원하고싶습니다 / 응원해요. 늘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 :) /저도 응원합니다. /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 사랑과 응원을! / 항상 응원하여요! / 언제나 목소리 내시는 모습에 늘 가르침을 받아요. 건강잘챙기시고 항상 그자리에 계셔주세요! / 감사합니다. / 건평(!)하시길 바랍니다. /제가 앞으로 응원해도 될까요 사실 이걸 남기는 것 자체가 응원이지만 잘 부탁드려요 파이팅! ♥️ / 건강하고 행복한 2021년 보내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뉴스레터 진행해주셔서 감사드려요. / 은정님,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계속 독자가 되고 싶어요. /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 구독료 받으시면 너무 좋을거 같아요... ㅠㅠ쓰는 사람 독자 모두를 위해서요. 무료라니요 ㅠㅠ말도안대애애 /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 응원할게요 !!! / 기대합니다 / 타임라인에서 뵐 때마다 어쩐지 기쁜 분이에요. 독자가 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늘 응원합니다 ♡ / 응원합니다. / 사실 작가님을 잘 모릅니다. 그보다 세상에 무지했습니다. 서른 즈음이 되기까지 정말 열심히 살아야만 했거든요. 이젠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부터 출퇴근 시간이 자유시간이 되었어요. 어쩌면 코로나는, 하늘이 "자연아 너도 회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여유롭게 가지거라~" 해서 이렇게 길어지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우연히 트위터를 통해 작가님이 쓰신 글 들을 읽었고 궁금해졌고 오늘부로 독자가 되어보기로 했어요. 제 지루한 일상에 한 줄기 여유가 되어주세요. / 저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글을 쓰십니다. 그래서 제게 아주 귀한 분이십니다. / 건강 잘챙기세요 / 응원합니다. / 평론가님의 트윗 탐라에 실린 촌철살인 다양한 단상과 소식을 접하며 많은 자극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항상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 / 소액의 후원하고 싶어요 / 🍦🍪🥂 / 안녕하세요! 독자입니다. 파도타기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뒤엉킨 호오만 갖고 글을 쓰다가 요즘은 그나마 타인이 '읽을 만한' 것들을 추려내고 싶어서, 비평에서 힌트를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비평을 쓰고 계시는 분의 작업들을 초면이라는 무례를 무릅쓰고 구독해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불특정 다수에게 제안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기다리며 기대하겠습니다. /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좋은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업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주셔서 감사합니다. / 글 재밌을 거 같아요 기대해요! / 지금은 따라읽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 비평(집)을 재밌게 읽었던 독자로서 프로젝트에 흥미를 느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비평의 공원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너무 좋은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 은정님 글을 좋아하게 된 시점을 잘 모르겠습니다. 김경인 시집 이후 사보는 시집에 은정님 해설이 더는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쓰시는 글 즐겁게 따라 읽겠습니다. / 늘 응원하겠습니다 ! / 제가 많이 배우게 되는 분이세요 /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응원하겠습니다! /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어요 / 기대됩니다! 응원해요 작가님 / 백명의 독자 중 하나!( ´╹ᗜ╹`) / 감히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어요 “투쟁하며 글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하게 남아있었어요. 그리고 오랜 기간동안 작업을 지속하시는 부분이 존경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또한 기존남성위주의 문학계에서 투쟁하는 것 그 자체라 느껴졌어요. 제가 드린 말씀이 실례가 되지 않았길 바랍니다. / 기대됩니다. / 응원합니다.!! / "작년에 처음으로 우연하게 님의 글들을 읽게 됐습니다. 많은 생각을 했지요. 아무튼 파이팅입니다. 저 또한 파이팅하겠습니다, 힘을 내겠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 결론이 "문학평론가"여도 "비평가"여도 보여주기 위한 글(예. 축사)이 아닌 자기자신에게 솔직하고 정직한 글이길 기대해봅니다~~ / 늘 응원합니다. / 뇌에 힘주고 열심히 읽겠습니다~ 얍! / 좋은글 항상 읽고 응원하고 있습니다! / 응원합니다. / 늘 응원해요 글을 써주심에 감사하구요 / 멋진 프로젝트 응원하겠습니다!! / 은정님께서 써주신 글들이 제 읽기 지평을 이렇게 받아먹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넓혀주고 있습니다. 참 감사한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 실존하는 독자 중 한 명입니다! 하찮은 존재지만 지치지 않고 계속 쓰실 수 있길 조용히 응원하고 있습니다! / 계획보다 2년 당겨진 프로젝트에 기대와 응원을! /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 언제나 응원해요. 계속 써주세요. / 글을 기대합니다. / 화이팅! / 기존에 신청했었는데 그 이메일을 잘 안 쓰게 되어서 다시 신청합니다.ㅎㅎ / 노고가 가득한 글을 받아볼 수 있다니 기쁘네요. / 사랑합니다 / 응원합니다. / 응원합니다:) / 화이팅입니다. / 은정님의 독자가 되고싶어요! 응원합니다😻 / 응원하고 또 배우고 싶습니다:) / 기대하고 있어요😍 / 독자입니다. 영광입니다. / 같이 읽으면 좋을 레퍼런스를 소개해 주신다는 점이 가장 기대됩니다. 건필하시길 바바라요. / 기대하고 응원하고 있어요:) / 언젠가는 평론가님의 멋진 동료가 될게요 오래오래 함께해요 늘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답니다..! / 생각, 글 다 재밌어요. / 오랜 독자가 되고 싶어요~^^ / 응원합니당 / 지속 가능한 응정님의 비평을 빌고 응원합니다. / 은정님의 글을 보고 삶을 견뎌내고, 변화를 모색할 힘을 얻어요. 늘 감사합니다. / 예비독자입니다. 문제의식에 공감합니다.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 2021년 1월의 마지막 날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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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 석권한 '젊은작가상'에도 별점테러↘링크

(2021년 4월 15일자 기사) 

 

Q. 최근 도서 판매 사이트에서 2021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대한 ‘별점테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 여성작가에 대한 공격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별점테러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이미 82년생 김지영 때부터 있었던 일이고 흔히 여성서사 혹은 퀴어서사라고 불리는 거의 모든 컨텐츠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플레이스테이션 4게임에서 발매한 라스트 오브 오스2는 전작이 아버지가 딸로 상징되는 소녀를 구하는 이야기였는데, 2편에서 여성 주인공으로 바뀐 데다 레즈비언으로 설정된 것을 가지고 소위 ‘피시가 묻어서 게임이 망했다’고 평가하고 유명 유투버들이 그 게임 시디를 부수는 퍼포먼스가 연달아 나타났습니다. 여성퀴어 존재가 부각된 컨텐츠를 실제로 부수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어 송출하며 ‘사이다’라고 여기는 일에 비한다면 어떤 책에 대한 별점을 낮게 주는 것을 ‘테러’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요? 우리가 무언가를 ‘테러’라고 부른다면 얼마 전 변희수 하사가 죽음을 맞게 된 상황이야말로 ‘혐오의 테러’이며 국방부에서 제출한 문장들이야말로 테러겠지요. 저는 오히려 ‘별점테러’라는 용어가 현실의 폭력을 지우는 것에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Q. 일각에서는 “<사랑하는 일> 속 인물이 ‘한남’이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쓰지만,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에서 등장인물은 게임에서 쓰이는 ‘혜지’라는 여성혐오 표현을 비판한다”면서 “이는 평가위원들이 여성혐오만 문제 삼고 남성혐오는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많은 이들에게 잊혀지고 있지만 2016년 10월 문학출판계 성폭력 문제가 터졌을 때, 공론화된 대부분의 내용에서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면서 이를 ‘예술적인 것’으로 정당화하는 공통점이 나타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문학 뿐 아니라 예술계 전체에서 나타난 성범죄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입니다. 그동안 예술사는 끊임없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미적인 것과 동일시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입시라는 제도를 통과하기 위해 그런 작품들을 고전으로, 정전으로, 문학의 정답으로 교육 받아왔습니다. 저만 해도 학부 전공 시간에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문학’이라고 교육 받았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심사위원들이 이러한 맥락을 모두 지우고 작품에 혐오 표현이 있느냐 없느냐만 가지고 심사를 했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겠지요.


Q. 여성이슈나 퀴어를 다룬 작품들이 문학계에서 ‘주류’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작품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현재 한국사회에서 제작되고 있는 모든 컨텐츠들 중에서 “여성이슈나 퀴어를 다룬 작품들”이 과연 몇 프로나 차지할까요? 제가 2017년에 제 62회 현대문학상을 탔을 때 시와 소설, 평론 수상자가 처음으로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들은 말이 “역시 요즘 우먼파워라니까!”와 같은 감탄사였습니다. 그동안 남성들이 수상하는 일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여성이 상을 타면 그것이 특별하고 아주 큰 일로 느껴지면서 심지어 ‘주류’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로 총 62번의 시상식 중 전원이 여성이었다는 것이 최초라면, 98%의 ‘맨 파워’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요. 그동안 남성들이 수상해온 경력과 비슷하게 60년 이상 여성만이 수상을 해야 겨우 동등해지는 환경입니다. 즉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그것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것이 ‘주류'처럼 보이는 시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작품을 읽지 않고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작품을 읽고도 이런 별점테러에 공감하는 독자층도 있는 듯합니다. 작가나 비평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거나 독자들이 의견을 나눈다면, 오해나 갈등이 사그라들 것이라고 기대하시나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에 기반한 경험과 주로 관계를 맺는 네트워킹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들을 기반으로 의견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 미디어 환경은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데이터가 노출되지 않고 이미 가지고 있는 의견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빅데이터가 작동하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이나 경험을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이 극히 드물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나 경험이 현저히 낮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작가나 비평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한다고 해도 나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의 말을 경청하려는 태도가 없다면 오해나 갈등은 더 큰 적대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이 타인의 경험을 마주할 수 있지 못하고 그것으로부터 영향 받고 있음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대화도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우리가 현재 대화할 공간이 존재하는지, 그것에 대해 먼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롤로그 (장은정)

 

처음에 요청 받은 것은 40매짜리 원고 청탁이었다. 쓰고 싶은 것들은 언제나 차고 넘치므로 40매 정도야 금방 써내려갈 수 있을 테지만, 다른 문학잡지들에서 청탁을 받았을 때 쓰는 글들을 그대로 《모티프》에 싣는다는 것이 부적합하게 느껴졌다. 어째서일까? 

고백하자면 나는 평소 모티프의 방향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던 독자였다. 내가 하려는/해야 한다고 여기는 문학과 《모티프》가 하고 있는 문학은 달랐던 것인데, 평소라면 ‘뭐 각자 믿는 대로 다르게 사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그저 내 글을 썼을 텐데 이번에는 그게 잘 안됐다. 왜일까?

지금 문학장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문학들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표절 사태, 문학출판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 미투 운동을 통과하면서 기존의 문학에 대한 합의된 내용들이 깨져나가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문학들이 형성되고 있다. 지금의 비평은 자신의 입장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완성도 있게 내어놓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입장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비평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독자들이 이 간극에 참여할 수 있는 글쓰기를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말하는 이의 이야기들을 경청하되 때로는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하기도 하는 인터뷰가 가능하다면, 이 역시 비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본질적으로 비평이란 대화다. 누구와 대화할 것인가? 우선 나는 《모티프》와 대화하고 싶었다. 이 '인터뷰-비평'을 읽는 당신과도 이어서 대화하고 싶다. 

 

 

 

첫 번째 모티프, 유수연

_벌써 1,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장은정 : 현실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처음 잡지 만드는 돈은 어디서 난건가.
유수연 : 등록금, 여행 적금, 주식 판매금.
장은정 : 그렇게까지 만들고 싶었나?
유수연 : 본전은 뽑을 줄 알았다. 아니면 유명해지거나.
장은정 : 그래서 초기 투자금이 얼마였나?
유수연 : 스파크 한 대. 
장은정 : 미안한데, 스파크 얼만지 모른다.
유수연 : 노 옵션, 천만원 정도다.
장은정 : 그럼 2호는?
유수연 : 1호랑 합쳐서 소나타. 
장은정 : 이럴 수가.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보나? 
유수연 : 갑자기?
장은정 : 그럼 3호는?
유수연 : 그건 나랏돈으로 하려고 했다.
장은정 : 잘 안 된 거 봤다. 
유수연 : 신규 문예지 파트가 신설됐기에 이번엔 될 줄 알았다.  
장은정 : 악스트랑 릿터가 받았던데?
유수연 : 축하한다.
장은정 : 심사평이 뭐였더라?
유수연 : "신규 문예지 및 독립 문예지의 경우, 참신성과 함께 지속성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신중하게 선정하려고 했다." (↘링크)
장은정 : 심사 결과가 납득이 됐나?
유수연 : 안 됐다. 
장은정 : 선정된 잡지들이 더 참신했다고 보나?
유수연 : 심사위원들이 생각하는 참신성의 기준이 심사평에서 제시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장은정 : 지속성에 대해서는 어떤가?
유수연 : 신규 문예지 파트에서 ‘지속성’을 심사 기준으로 삼는다는 게 부적절했다고 본다. 
장은정 : 그 이유는?
유수연 : 선정 결과를 보면 결국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매체만이 지원 대상이 되었다.
장은정 : 그렇게 되면,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매체는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구조에 일조하겠다.
유수연 : 그렇다. 연예계로 따지면 대형 기획사에 나랏돈을 붓는 꼴이 아닌가?
장은정 : 대형 출판사 입장에서는 대형 기획사에 비교하면 억울할 것 같다. 
유수연 : 영리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럴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영리 바깥의 영역이다.
장은정 :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유수연 : 정부에서 문학이라는 예술을 존속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질문하고 싶다.
장은정 : 공공기관이 우선 예술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유수연 :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돈 나올 구멍에 돈을 붓는 것이 아니라, 돈이 안 되더라도 남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장은정 : 공공기관이 예술에 대한 철학이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유수연 : 현재 사업은 굵은 가지만 두고 잔가지를 모두 잘라버리는 것이다. 을지로에서 을지면옥만 남기는 것과 뭐가 다른가?
장은정 : 공공기관이 기여해야 하는 문학출판계 생태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유수연 : 공공 자금은 ‘가위’가 아니라 ‘영양제’의 역할 아닌가? 생태계 자체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은정 : 자본력을 가진 매체만 지원하는 것이 을지로를 밀어버리고 고층빌딩을 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유수연 : 신규문예지(창간3년 이내) 항목에서 ‘독립잡지’(가 대체 뭘까?)라고 할 만한 잡지가 하나도 선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예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장은정 : 그럼 당장 3호는 어떻게 만들 계획인가? 
유수연 : 항상 해왔던 대로 텀블벅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장은정 : 목표 금액은?
유수연 : 다시, 스파크 한 대.
장은정 : 그럼 한 호를 낼 때마다 스파크 한 대씩 들어가는 건데, 아니? 그렇게까지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솔직히 모르겠다. 
유수연 :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두 번째 모티프, 이리
_나를 묶고 가둔다면

 

장은정 : 소나타 한 대를 이미 보냈는데도 3호를 준비 중이다. 솔직히 왜 계속 하는지 모르겠다.
이리 : 그러게.
장은정 : 그런데도 계속하고 있지 않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이리 : 한 권 쯤은 이런 게 있었으면 했다. 문학만 실려 있지 않는 문학잡지를 읽고 싶다는 생각은 다들 한번쯤 하지 않나? 
장은정 : 난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이리 : 한 적이 없다고? 이전 문학잡지들에 만족했어?
장은정 : 음. 내가 대학생 시절에 읽었던 문예지는 지루한 수업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었다.
이리 : 충격적이다. 뭐라고? 유일하다고?
장은정 : 당시 작품 속에서 내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었던 작가들은 모두 신인이었고, 이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로지 문예지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당신은 어떤가? 
이리 : 월세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문학잡지에서는 내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장은정 : 그럼 문예지를 아예 안 읽었나? 
이리 : 읽기는 했다. 전공 수업 자료였다.
장은정 : 그럼 뭐가 재미있었나?
이리 : SNS와 낭독회. 어디서나 좋아하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왜 읽기만 해야 되지?
장은정 : 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오로지 문예지뿐이었다.
이리 : 주어진 선택지의 개수가 ‘재미’의 감각을 다르게 만드는 것 같다.
장은정 : 그런데 재미에도 유통기한이 있지 않나?
이리 : 그렇다. 낭독회도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읽거나,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거나,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반복되는 것이 답답했다.
장은정 : 이 지점은 바로 공감이 간다. 그럼 이후엔 뭐가 재밌게 느껴졌나?
이리 : 문학이 아닌 예술 장르에서 여는 행사들과 비교했을 때, 접근법이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장은정 : 동의한다. 얼마 전 홍대우와페스티벌의 기획 중에 세탁소에서 디제잉을 하는 것을 보고 접근법에 놀랐다. 공연은 공연장에서 한다는 발상을 버리고, 장소의 고정된 기능 자체를 다르게 변주하면서 관객을 모았다. 공연 도중에도 세탁소 영업을 하고 있어서 세탁물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것까지 공연의 일부였다. 이에 비하면 문학 행사들은 왜 이렇게 다 비슷할까? 
이리 : 문학에 대한 기존의 엄숙한 태도가 새로운 상상들을 가로막는 것 같다. 특히 기존의 문학 독자들만을 대상으로 기획하는 것 같다. ‘독자들과의 대화’라는 코너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작가뿐이다. 독자는 질문 이외엔 말할 수 없다.
장은정 : 모티프는 뭐가 다른가?
이리 : 우리가 그리는 작가는 독자의 자리이기도 하다. 패션이 그 교차점이 되리라 생각했다. 
장은정 : 사실 이게 제일 궁금했다. 대체 문학이 패션과 무슨 관계인가? 그거 너무 개인적인 취향 아닌가? 
이리 : 패션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옷 안 입는 사람도 있나?
장은정 : 패션이 보편적이라서 가져다 붙였다는 건가?
이리 : 그렇다. 책 안 읽는 사람은 없어도 옷을 안 입는 사람은 없다. 패션이라는 수단을 통해 책을 만나볼 수 있는 계기를 더 많이 만들고 싶었다.
장은정 : 패션만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 않나? 의식주 중에 왜 ‘의’였나?
이리 : 의식주 중에 가장 개인을 ‘표현’하는 가장 직관적인 수단이라고 본다. 
장은정 : 옷의 기능적 측면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은 대상 독자가 아닌가?
이리 : 패션은 단순히 뭘 ‘걸치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패션 트렌드는 시대적 상징성을 가진다.
장은정 : 패션의 ‘재정의’를 의도했다는 말인가?
이리 :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문학도 ‘패셔너블’한 예술이 되었으면 한다.
장은정 : 사실 나는 처음 모티프를 접했을 때, 작가를 ‘스타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불편했다. 이때 독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리 : 그동안의 문예지가 작가에게 부여하는 권위와 모티프가 작가를 그리는 방식은 다르다고 본다.
장은정 : 뭐가 다른데?
이리 : 그건 이유수가 말해줄 거다. 

 

 

 

세 번째 모티프, 이유수
_모티프에만 있는 것; 디렉팅

장은정 : 왜 이유수가 말해준다고 하는 거지?
이유수 : 작가와 작품을 시각화하는 작업이 모티프의 핵심이다. 현재 모티프에서 포토 디렉팅을 맡고 있다.
장은정 : 사진이나 영상, 그림 등 방법은 다양할 텐데, 시각화의 수단으로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이유수 : 가상으로 구현된 세계가 그림에 비해서 더욱 실제처럼 경험되는 매체다.
장은정 : 그건 모든 예술의 공통점 아닌가? 사진만의 특수성이 뭔가?
이유수 : 일단 종이잡지의 형식이므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어야만 했던 것은 ‘그려진’ 것과 ‘찍힌’ 것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진이 우리의 문학을 보여주기에 더 적합했다. 우리의 문학을 보여주기에 사진이 더 적합했다.
장은정 : 사진 중에서도 패션화보를 택한 이유는 뭔가?
이유수 : 만일 그림이나 예술이라면 작가에게 모두 일임해야 하지만, 패션화보의 경우엔 우리가 직접 모델을 선정하고, 옷을 입히고, 구도와 배경을 연출을 주도할 수 있다.
장은정 : 그렇다면 모티프의 패션화보란 작가와 문학작품에 대한 독자-해석자의 위치라고 볼 수 있을까?
이유수 : 그렇다. 동시에 기획자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이 ‘디렉팅’으로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장은정 : 사실 생소한 말이다. 정확히 어떤 디렉팅을 했나?
이유수 : 모티프의 시각화는 두 가지 챕터로 대표된다. 1)작품을 해석해서 화보로 보여주는 것과 2)작가가 자신이 쓴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연출하는 화보다.
장은정 : 1)그럼 전자부터 이야기해보자. 시보다 화보가 먼저 나오면 시에 대한 다양한 독해를 오히려 가로막는 것 아닌가?
이유수 : 왜?
장은정 : 예를 들어 문보영의 「그림책의 두 가지 색」에서는 두 가지 색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모티프는 주황색과 보라색으로 구체화시켰다. 이로 인해 다른 색의 상상을 가로막은 것 아닌가?
이유수 :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상정한 독자는 그런 상상에 익숙치 않은 이들이다.
장은정 : 그 독자도 모티프가 상정한 허상일 수도 있지 않나?
이유수 : 문학이라곤 국어 과목이 전부였던 사람들을 독자로 상정하면서 이것이 허상이 아닐까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2호를 내면서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다. 모티프가 상정한 독자군은 두 종류다. 시와 사진이 함께 담긴 페이지를 펼쳤을 때, 시부터 읽는 독자와 사진부터 보는 독자. 당신은 전자고, 내가 말하는 것은 후자다.
장은정 : 후자의 독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데?
이유수 : 처음 모티프를 보고 이게 무슨 책이냐고 묻지 않고 이 모델이 누구냐고 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땐 어째서 주황색과 보라색을 골랐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이것은 사진부터 보는 사람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장은정 : 모티프가 시의 독자를 발명했다는 건가?
이유수 : 그렇다. 이번엔 내가 묻고 싶다. 우리의 화보가 시에 대한 상상을 가로막는다고 했는데, 그거 너무 독자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장은정 : 무슨 뜻이지?
이유수 : 우리가 주황색과 보라색으로 특정했다고 해서 시를 읽는 사람들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후자의 독자가 당신과 같은 질문을 한 셈이 아닌가? 
장은정 : 정당한 비판이다. 잡지의 컨텐츠에서 독자로 가는 방향만을 고려하고, 독자의 편에서 역으로 잡지로 질문하는 방향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유수 : 결국 우리가 주황색과 보라색을 고름으로써 해석이 다른 독자들과 시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본다.
장은정 : 2)그렇다면 작가를 촬영하는 화보의 경우로 넘어가보자. ‘완전히 새로운 포맷’이라고 스스로 소개하는 것을 보고 설득이 안됐다. 패션잡지에서 작가들을 대상으로 화보를 촬영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유수 : 패션잡지에서 작가를 촬영할 경우 그들은 작가를 단지 모델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는 작가를 자신이 쓴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장은정 : 사실 나는 그걸 모티프의 보도자료를 보면서야 깨달았다. 
이유수 : 굳이 그 차이를 부각하진 않았다.
장은정 : 왜? 그게 잘 전달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유수 : 의도를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설득보다는 매혹이 우선 되었으면 했다.
장은정 : 물론 기존 문예지와 나란히 두면 모티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만, 기존의 패션잡지와 섞어 놓았을 때에도 독자가 선택하게 만드는 ‘다른’ 매혹이 있다고 보나?
이유수 : 그건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장은정 : 적어도 디렉팅을 하는 입장에서는 패션잡지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이유수 : 기존의 패션잡지의 화보는 상품의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모델이 될 작가와 작품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장은정 : 역시 그것까진 몰랐다. 
이유수 : 반복하지만, 그건 당신이 사진과 글 중에 글부터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장은정 : 듣고 보니 디렉팅이 다른 모든 문학잡지와 비교했을 때 모티프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포지션 같다.
이유수 : 우리는 그 디렉팅이 당신이 하는 비평적 작업과 근본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는지는 독자들 각각이 판단할 문제다. 

 

 

 

네 번째 모티프, 김의석

_문학의 손익분기점

 

장은정 : 그래, 일단 알겠다. 그런데 일단 다음 호를 제작할 수 있는 수익은 내야할 텐데, 마케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의석 : 그렇다.

장은정 : 낯빛이 어둡다.

김의석 : 쉽지 않다. 사실 마케팅 부분이 우리에게 가장 큰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장은정 : 왜지?

김의석 :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장은정 : 첫 번째 좌절은?

김의석 : 창간호의 가격을 책정할 때다. 더 많은 문학 독자를 만들려고 시작한 일인데, 그것도 사실은 자본력 없이 컨텐츠 내용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은정 : 어떤 일을 겪은 건가?

김의석 :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원이냐, 만오천이냐’의 고민이었다. 만원이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대신 원하는 걸 만들 수 없다. 반면, 마음껏 원하는 대로 만들면 그만큼 독자들을 만날 기회도 적어진다.

장은정 : 현타 왔을 것 같다.

김의석 : 살 때랑 팔 때랑 마음이 다르더라.

장은정 : 결국 만오천원으로 책정했을 때, 심정이 착잡했겠다.

김의석 : 그렇다. 더욱 착잡했던 건 그 만오천원도 1쇄를 모두 판매했을 때에만 본전이다.

장은정 : 창간호 1쇄는 다 팔렸나?

김의석 : 70%는 팔았다.

장은정 : 현재는 30% 적자네?

김의석 : 창간호만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장은정 : 만오천원이 마지노선이었던 이유는?

김의석 : 제작·인쇄비 오천원, 유통 수수료 오천원, 나머지 남은 오천원으로 촬영도 하고 원고료와 디자인 비용까지 충당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사무실 월세는 빠져있다.

장은정 : 존경한다.

김의석 : 스파크는 연비라도 좋지.

장은정 : 그런데 이게 첫 번째 좌절이라고? 몇 번째까지 있나?

김의석 : 세어본 적은 없지만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순서를 매겨보겠다.

장은정 : , 그럼 두 번째 좌절.

김의석 : 처음 대형서점에 유통할 때, 문예지 매대가 아니라 패션지 매대에 책을 올리고 싶었다. 그런데 직접 서점에 확인하러 갔을 때 쪼그려 앉아야만 뽑을 수 있는 위치에 모티프가 진열되어 있었다.

장은정 : 독자와의 거리가 실감났을 것 같다.

김의석 : 물리적으로 느껴졌다.

장은정 : 그것을 어떻게 넘으려고 했는가?

김의석 : 대형서점으로는 방법이 안보였다. 그래서 독립서점 뿐 아니라 굳이 서점이 아닌 장소에서도 모티프가 놓여야 할 것 같았다. 소위 ‘편집샵’에 유통하고 싶었다.

장은정 : 성공했나?

김의석 : 쉽지 않았다. 인지도부터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장은정 : 과연 희망일까?

김의석 : 인지도와 판매량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것 같다.

장은정 : 1년 정도 모티프를 만들면서 실감한 출판 생태계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의석 : 말이 길어질 것 같다.

장은정 :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김의석 : 유통과정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다름없다. 대형서점에 책을 납품할 때, 그 조건이 소형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까다로웠다. 자체 재고 관리 시스템인 scm도 체계적이지 않다. 언제 어디서 책이 팔려 입금이 되는 건지, 어느 매장에는 우리 책이 한 권도 없는데 왜 더 입고 요청이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장은정 : 공급자로서의 고충이 심한 것 같다.

김의석 : 그렇다. 유통과정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장은정 : 또 뭐가 문제인가?

김의석 : 현장에서 독자가 만나볼 수 있는 책의 종류가 한정적이다. 서점에 들어가면 보이는 매대에는 베스트셀러만이 놓인다. 조명 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책들이 수없이 많다.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진열되고, 그렇게 관리되지 않은 책들은 손때가 묻어 헌 것이 되거나 도장이 찍히거나, 스티커가 붙어 상품 가치가 없어진 상태로 우리에게 반품된다.

장은정 : 그 손해는 고스란히 출판사의 몫이 되겠다.

김의석 : 정답이다.

장은정 : 만일 딱 한 가지 책을 만드는 조건이 바뀐다면, 자본금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김의석 : 유통과정의 위탁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 말이 위탁이지, 진열 기간이 끝나서 반품이 들어오면 못 쓰는 책들이 태반이다. 정가의 삼 분의 일이 넘는 수수료가 관행적으로 정해진 비율이라는 설명만 들었다.

장은정 : 그 관행을 누가 정한 건가?

김의석 : 우리도 그걸 물어보고 싶다.

장은정 : 모티프에게 롤 모델이 되는 곳이 있다면?

김의석 :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자생적으로 발행을 이어갈 수 있는 모든 매거진.

장은정 : 그런 곳이 있기는 한가?

김의석 : 사실 찾아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몇 군데나 있을지는 우리도 잘 모르겠다.

장은정 : 인터뷰가 끝나가는 데도 여러분들이 무슨 힘으로 버티는지 모르겠다.

김의석 :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바보인 것 같기도 하고.

장은정 : 이러고도 계속 만들 건가?

김의석 :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갈 데 까지 가보려 한다.

 

 

에필로그 (모티프)

공전이 만들어진 것은 2017년 12월, 모티프가 창간된 것은 2018년 4월의 일이다. 우리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의 기획회의를 통해 모티프의 문학을 정의했다. 구성원 네 명의 의견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분모는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소비되는 문학을 만들자.' 소설이, 시가, 문학이,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세상에 보다 인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문학잡지라는 포지션을 고수해온 것도 동일하다. '이런 것도 문학이에요.'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책을 만드는 일도, 여러명이 무언가를 기획해내는 일도 처음이었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세상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배웠다.

 

장은정 평론가의 모티프에 대한 첫인상처럼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척당하거나 반려당했다. 우리도 딱히 그들이 말하는 문학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려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위의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애초에 우리가 타겟팅했던 이들은 이미 '본인들의 문학'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본 대담을 통해 우리의 그러한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방향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계속 나아가도 된다'는 확신을 얻기도 했다. 이것이 이번 인터뷰-비평에서의 가장 큰 성과였다.

 

우리는 모티프를 만들기 시작한 뒤로 언제나 불확신과 불안함을 기저에 두고 나아갔다. 스스로의 활동을 단순히 '미래의 누군가에게 더 나은 과거'라 지칭했던 것도 이러한 불안정함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딛고 있는 것이 곧 무너질 모래성 따위가 아니라고 믿는다. 모티프의 뜻처럼 우리의 행보가 문학에서 절대 생략될 수 없는 역사의 한 꼭짓점으로 남기를 기원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문학을 한 문장으로 정의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모티프는 그저 '문학'이라는, 조금 멀게 느껴지는 세계와 독자를 이어줄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오늘의 이 인터뷰-비평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방식의 비평도, 우리가 문학을 말하는 방식처럼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공전은 세상과 가까운 문학을 꿈꿉니다."

 

 

(2019년 5월, 모티프 3호에 수록) 

 

※알립니다. 

1. 저는 2019년 겨울에 '노동자로서의 평론가'라는 주제를 청탁받아서, 11년간 발표한 원고에 각각의 일련번호를 붙인 후, 청탁서 여부와 고료 기재 여부, 매수 및 입금고료와 입금날짜까지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이 파일을 완성하는 것에만 한달이 걸렸고, 이 데이터들을 대상으로 「지나간 미래」를 작성했습니다. 이 글은 『자음과모음』 2020년 봄호(링크)에 실렸습니다. 

 

2. 경향신문의 이영경 기자님께서 위 글을 읽으시고 인터뷰를 요청해주셨습니다. 이 인터뷰를 기반으로 "매당 5000원의 삶" '노동자로서 평론가'의 삶은 가능한가'(↘링크) 기사가 작성되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이영경 기자님께서 정리하시기 전, 제가 작성한 인터뷰 원본 전문입니다. 이영경 기자님의 동의 하에 전문을 공개합니다.


이영경 : 글을 읽는 독자를 30년 후인 2050년의 독자로 상정하고 글을 쓴 이유가 있으신지요.

 

장은정 : 우리는 일상에 주어진 과업들을 하루하루 소화하기도 벅차기에 내가 처해 있는 여러 조건들이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특정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을 사유하기 힘듭니다. 제가 만일 2050년의 관점을 도입하지 않고 이 글을 썼다면 출판 산업의 구조 속에서 평론가가 갖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폭로하는 것으로만 읽혔을 것입니다. 적을 상정하고 분명한 전선을 그어 프레임을 짜는 것은 빠른 시간 내에 사람들을 함께 행동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며, 이런 방식의 운동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방향성 없이 이 방식이 반복될 경우, 그에 참여한 사람들을 궁극적으로는 무력하게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경험의 축적이 없다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한 반복으로 경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으로부터 30년 이후라는 설정은 ‘어떤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질문과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맞물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태어난 아이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살게 될 세상은 지금의 우리에게 큰 책임이 있습니다.

 


이영경 : 2009년 등단, 11년 동안 문학평론가로서 일해왔습니다. 11년이라면 짧지 않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행 계좌를 들여다보며 지난 11년의 평론가로서의 삶을 돌아보니 어떤 소회가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장은정 : 저는 이 작업을 하기 전에는 제 문학관과 비평관을 통해 저를 어떠어떠한 평론가라고 이해해왔습니다. 그런데 은행 계좌에 입금된 내역을 보면서 저의 자의식과는 별개로 현재의 한국 사회의 출판 산업 내에서 문학평론가에게 부여된 장소가 고정된 상태로 반복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1년 간 쓴 비평들의 총 매수와 원고료 총액을 계산해보니 1매당 오천원 정도였고, 월 평균 46만원을 벌었습니다. 이것은 제 삶의 조건일 뿐 제 가치를 매기는 것이 아닌데도 제가 매당 오천 원짜리 삶을 살았다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처한 경제적 조건과 제 삶이 갖는 의미를 구분하여 사유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옳은 태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경제적 조건이 비평이라는 장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비평가로 하여금 어떠한 자의식을 갖게 하는지 그 관계를 더욱 면밀히 사유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 중입니다.

 

 
이영경 : 비평가의 역할이 ‘지식인-비평가’에서 ‘작가-평론가’로의 변화를 소영현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해 말씀하셨습니다. ‘작가-비평가’는 개별 작품을 꼼꼼히 읽고 해설하고 비평하는 평론가, ‘서평가로서의 평론가’에 가깝게 들리는데요, 제가 해석한 말이 맞을까요? ‘작가-비평가’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장은정 : 소영현 평론가는 ‘작가-평론가’의 기반이 황종연, 이광호, 김형중 평론가에게서 그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저는 이 기반이 2000년대에 이르러 신형철 평론가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에 발간된 그의 첫 평론집 서문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나에게 비평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는 일이다.” 대략 10년이 지난 2017년, 《문학동네》 인터뷰에서 권희철 평론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에게 비평은 작품에 대한, 작품에 의한 비평입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비평이 작품을 경유하지 않고는 세상의 비참과 폭력, 고통에 대해 ‘직접’ 발언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작가-비평가’ 모델에 근본적인 의심을 갖게 된 것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일부 남성평론가들이 페미니즘 비평을 쓰는 여성평론가들의 글을 비판하면서 비평가는 작품을 충실히 읽는 직업이지 그런 식의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부터입니다. 그 이후, ‘지식인-비평가’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기획에서 시작된 ‘작가-비평가’ 모델 역시 그 역사적 유효성이 끝났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이영경 :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문학 출판사에서 ‘젊은 평론가’들을 10년 정도 활용하고, 10년이 지나면 다음 세대의 평론가들에게 또 ‘젊은 평론가’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들이 ‘젊은 평론가’로서 여러가지 역할을 요구받고, 최근 유튜브 등 영상 콘텐츠까지 확대되면서 역할 또한 다양화되는 가운데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젊은 평론가’로서 평론가의 경력에 얻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10여년의 ‘젊은 평론가’로서의 경력이, 현재 선생님의 앞으로 평론가로서의 경력을 만들어 나가는데 어떤 연결점이나 커리어로 작용하는지 궁금합니다.

 

장은정 : 저의 11년의 경력 중 ‘젊은 평론가’로서의 경력은 5~6년 정도입니다. 7년 차 쯤, 90년대생 평론가들이 유입되면서 짧은 리뷰 지면 청탁 대신 대체로 긴 분량의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제가 기성 평론가로 분류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5~6년간의 ‘젊은 평론가’로서의 경력을 통해 제가 얻게 된 것은 출판 산업이 신간이 출간되는 속도에 맞춰 ‘젊은 평론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 구조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번 《자음과모음》(2020년 봄호)에 발표한 「지나간 미래」는 그 이해를 역으로 활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출판계에서 비평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질 것으로 보이고, 만약 제가 앞으로도 이곳에서 경력을 쌓아나간다면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아직은 예상하기 힘듭니다. 

 


이영경 : 젊은 평론가들이 ‘과분하게 주어지는 큰 기회’라 받아들여 제대로 된 청탁서나 보상 없이 ‘인정’을 위해 일하고 10년이 지나면(물론 교체 주기는 다른 업종에 비해 깁니다만), 다른 ‘젊은 평론가’들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어찌보면 이는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 상황 같기도 한데요. 정당한 보수 없이 스펙 쌓기나 ‘기회’를 위해 일하고, 안정적인 직업이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 말이죠. 예를 들어 인턴 같은 제도가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장은정 : 동의합니다. 이번 이상문학상 사태 속에서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가 발표한 성명서에는 출판계에서는 외주노동자 뿐 아니라 재직 중인 출판노동자에게조차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며, 10년 넘는 경력을 쌓고도 아웃소싱의 영역으로 내몰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번 이상문학상 사태에서 언론노조의 성명서가 나왔을 때 가장 반가웠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구체적인 발화 없이는 (한국출판인회의의 입장문에서 목격할 수 있는 바와 같이)창작자와 출판사라는 대립구도로 단순하게 이해되기 쉽고 그 과정에서 출판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이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학평론가’가 처해있는 이 특수한 노동환경이 ‘문학출판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문학출판계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처해있는 상황들이 더욱 입체적으로 가시화되어 어떤 연결점으로 맞물려 있는지 ‘공적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영경 :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 2015~2017년 문학잡지 혁신호,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폭로, 2017년 최영미 시인 미투, 2020년 1월 이상문학상 저작권 문제를 경험하면서 평론가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각각의 사건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평론가님 개인에게, 또 문단 제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시는지요.

 

장은정 : 우선 저는 이 사건들이 문단 제도 전체에 끼친 영향을 조망할 만한 안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경험적 범주와 비평관을 통해 답변하고자 합니다. 저는 최근 다른 지면에서 이 사건들을 기존 문학출판계를 향한 ‘질문하기’의 역사라는 점에서 하나의 큰 흐름으로 묶은 바 있습니다. 이 시기와 제가 기성평론가로 분류되기 시작한 시점이 맞물려 저는 각 사건들에 대해 여러 번 발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발표한 글들은 이전의 글들과 확연한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그전의 글들이 특정한 작품이나 작가가 갖는 문학적 가치를 부여하는데 지면을 할애했다면, 이 시기는 위 사건들의 발생 구조를 분석하는 것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합니다. 즉 저는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매체 비평, 제도 비평 쪽으로 관심사가 이동하여 일종의 ‘작가 중심주의’에서 이탈하게 되었습니다. 신경숙 표절 사태는 문예지 혁신의 계기가 되었지만, 그때 문학계가 꿈꾼 ‘혁신’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출판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에 참여한 피해자들 대다수가 가해자들로부터 역고소를 당했고 길고 고통스러웠던 재판 결과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론화조차 되지 못한 피해사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은 문단 제도 전체에 끼친 영향보다는 문학출판계를 이루는 구성원들 각각에게 이 시간들이 어떤 경험으로 남아있는지, 그때 고려되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영경 : 이상문학상 사태,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저작권 소송 패소 등으로 저작권 등 작가 권리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작가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는 등의 변화로 문학상, 출판시 작가들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사례가 있기도 한데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 알 수 없는 곳, 규모가 작은 출판사의 경우는 이런 부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문학 출판계가 작가들의 저작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장은정 : 얼마 전, 우롱센텐스의 주최로 〈예술인을 위한 권익 보호 워크숍〉이 열렸고 2월 19일에 ‘계약 및 저작권’에 대한 세미나가 진행된 바 있습니다.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이번 이상문학상 사태를 계기로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권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여러 교육들을 필요로 하는 시기라고 판단됩니다. 사실 ‘작가들’이라고 묶어서 이야기하지만 장르별로 처한 상황이 워낙 다릅니다. 제가 입금내역을 기반으로 출판산업의 구조에 대해 서술한 글을 시인이나 소설가 친구들에게 먼저 보여줬을 때, 평론가들이 이러한 시스템 속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작가가 갖는 노동권리 문제는 장르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특수성을 고려해가면서 앞으로 더욱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나가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경 : 페미니즘 비평 아카이브(↘링크)를 운영하고 계신대요, 이런 시도 또한 ‘평론가로서의 역할 재정립’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아카이브 작업의 의미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지 계획이 있으신가요.

 

장은정 : 2016년 10월의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SNS의 특성과 언론사의 보도 형태, 문학잡지에서의 특수한 비평적 접근 방식, 한국사회 내 페미니즘의 흐름 등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각자 사용하는 매체가 달라 이 사건들을 기억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들이 동일한 시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데이터를 한 번에 모아볼 수 있는 페이지가 있다면 ‘공동 시간’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 아카이빙 페이지는 1. 언론사 보도 기사 2. 문학잡지 관련 기획 3. 관련 행사들의 자료집 4. 당시 출간된 페미니즘 신간 서적의 목록 등으로 구성됩니다. 이는 제게 파편적으로 흩어진 데이터들을 일정한 년도와 월에 모아 ‘동시대’를 데이터로 재구성하는 적극적인 비평적 개입입니다. 또한 이 시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시간을 어떻게 기록하여 남길 것인가’에 대한 제 방식의 대답이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문학평론가’로서 출판사로부터 청탁받은 원고를 작성하는 것에 골몰했다면, 이제는 ‘비평적 행위’가 앞서고 글쓰기는 그러한 비평적 행위의 한 요소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아카이빙 팀 ‘모월모일’ 멤버로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2017년 이후의 폴더들을 데이터로 채우는 일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이영경 : 이전에 ‘작가연대 총파업’이란 글(↘링크)을 쓰신 적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작가들의 노동조합 결성, 단결권과 단체행동권 등 행사를 통해 원고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 계류중인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예술인의 단결권을 가능하도록 하고 있지만, 국회의 태업으로 법 통과가 요원한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예술인 협동조합 등 결성을 염두에 두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장은정 :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여성예술인연합이 오래 천착해온 작업으로서 예술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의 성과 중 하나입니다. 문학계에서는 이성미 시인께서 여성예술인연합의 멤버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적 토대의 마련은 당연히 필요하며 아주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문학출판계에서 이러한 법적 토대를 기반으로 조직이 만들어진다면 그 특수성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1월, 문학웹진 《비유》와 《문학3》이 공동 기획한 행사 〈내/일을 위한 시간〉(↘링크)을 통해 ‘만일 협동조합이 생긴다면 우리의 글쓰기 환경엔 어떤 변화가 생길까?’라는 질문을 던져본 바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행사 참여자분들의 의견들 중, 협동조합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등단제도에 의한 위계가 작동할 것이고 모이는 일이 오히려 서로를 낙인찍고 소외시키는 일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이런 의견들을 경청하면서, 조직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그동안 문학출판계에서 작동해오던 다양한 방식의 위계를 해체하는 방식이 되지 않는다면 어렵게 단체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지속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할 생각입니다.

 

이영경 : 현재 독립 문예 잡지가 많이 등장하고 있고, 구독자를 직접 모집하는 작가, 작가들이 만든 새로운 유료 플랫폼 등 기존의 문학제도를 벗어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은정 : 독립문예 잡지는 독자와 작가 사이의 만남을 다르게 촉발하며 문학이라는 장르를 재정의하고 다양하게 향유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2016년 초부터 시작된 펀딩 시스템을 통한 소위 제1세대 독립 문예잡지들은 휴간 혹은 폐간 상태입니다. 이는 2~3년 이상 지속하기 힘든 독립출판 생태계를 보여준다고 판단됩니다. 그들이 잡지의 발행을 중단하게 된 과정에 대해 경청하는 담론이 있어야 경험이 축적되어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일종의 각개전투로서 각자 고립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구독자를 직접 모집하는 작가들 역시 이제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기획하고 모집하고 발송하는 등 일종의 개인사업자로서 활동한다는 점에서 글쓰기 이외의 업무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피로감이 있으리라 추측됩니다. 저는 현재 2세대로 분류될 수 있을 《모티프》, 《토이박스》, 《be:lit》, 《Noizy》, 온라인 플랫폼 "s-r-s" 뿐 아니라 소곡출판사의 시씰팀, 유후팀의 활동, 얼마 전 오픈한 웹진 《던전》 등, 이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들은 주로 20~30대 청년들이며 독립출판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에 대한 섬세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비평계에서도 제도 내에서 승인된 작가들에 대한 작품론만을 반복하여 생산하기보다는 문학출판계의 구조 중 하나인 독립출판 생태계에 관심을 갖고 이들의 시도가 지속될 수 있는 비평 담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영경 : 다양한 작가군의 발굴, 작가 권리 확장 등 기존 문단의 문제점을 벗어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장은정 : 저는 2019년 10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였는가?〉포럼(↘링크) 에서 문학출판계에서 여러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그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주로 대형출판사들이 지목되었을 뿐, 공공기관의 역할에 대한 요구는 거의 무관심에 가까웠다는 현상에 주목하여 그 원인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등단제도’의 악용, 예술고에서의 ‘입시제도’, 예술대학에서의 사제관계, 사설 문학창작 수업 내에서의 위계관계에 이르기까지 문학계가 끝없는 경쟁시스템과 그로 비롯된 위계관계로 촘촘히 엮여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공공기관의 문학사업 기금은 이미 출판산업 내에 진입한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원 배분의 역할에 그침으로써 출판 산업 생태계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기에 누구도 문학계 문제해결의 주체로 상정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인복지재단, 서울문화재단 등 여러 공공기관이 문학출판계의 구조를 면밀히 살피고 문학이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장기적 안목으로 생태계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공적자금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영경 : ‘직업으로서 평론가’가 유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셨나요?

 

장은정 : 현재로서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이영경 : 등단 11년, ‘젊은 평론가’ 시기 이후 평론가로서의 전망은 어떻게 찾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30년 후에 평론가들은 어떤 역할을 하리라 생각하시는지요.

 

장은정 : 비평 전문 잡지를 내세운 《크릿터》의 목차를 보면 ‘리뷰’ 지면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목차는 ‘작가-비평가’ 시대의 ‘비평’이란 결국 ‘서평’ 기능을 수행하는 장르에 불과함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저는 비평이 서평 역할 이상의 일들을 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평론가’ 시절의 저는 각각의 문학작품 속에 들어있는 가장 빛나는 것을 꺼내어 독자에게 보여주는 일을 잘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이제는 작품 한편을 하나의 톱니바퀴로 여기고 어떤 작품을 세상의 어디에 배치하여 어떻게 다르게 작품을 작동하게 할 것인지를 고민 중입니다. 그런 점에서 2019년 〈더 스크랩〉의 행보는 현재 제가 지향하는 비평적 행위에 가장 가깝습니다. 사진이라는 장르의 특수성을 활용하여 홍콩 시위에 독창적 방식으로 연대하는 일을 목격하면서, 비평적 중심점이 이제는 예술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위치’로 이동해야 하며, 향유자의 향유 방식을 어떻게 다르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비평적 개입이 2020년 현재 예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비평가들의 고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0년 후의 평론가들은, 지금 비평가들이 무엇을 비평의 역할로 정립하느냐에 따라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영역이 달라질 것입니다.

 

(2020년 3월)

 

 


오랜 시간, 여행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여행해왔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자신도 모르는 것에 대해 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겠노라고 쉽게 약속했던 것은 쓰는 동안 알지 못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만 몇 개의 기억들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타이베이를 벗어나 중부 지역인 타이중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은 아리산을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예약해놓은 숙소는 아리산 해발 1200m 위치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구불거리는 산길을 한참 올라야 해서 아주 피로해진 상태였다. 장거리를 이동해야 했으므로 숙소에 온 것만으로 하루가 모두 가버려서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숙소의 부엌을 둘러보다 마을을 소개해둔 지도를 발견했다. 지도 한 귀퉁이에 ‘firefly trail’이라고 써져 있었다. 조금 더 어두워지면 반딧불이를 보러 여길 가볼까 싶었는데, 안전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숙소에 묵는 다른 게스트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들도 가보지 않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며 흥미를 보였다.

 

저녁 아홉시 쯤 지도 한 장을 접어 주머니에 넣은 채로 숙소를 나섰다. 산골 마을답게 상점들은 당연히 모두 문을 닫았고 가정집들에서 드문드문 불빛이 흘러나왔다. 가로등이 밝게 켜져 있어 ‘firefly trail’의 입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그 입구에서 돌아 나오는 한 가족이 있었다. 각각 다섯 살, 여덟 살 쯤 되어 보이는 두 남자아이를 한 명씩 안고 있는 부부는 한 손에는 내가 가진 것과 같은 지도를, 다른 한 손에는 손전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반딧불이를 보았느냐고 물어보니 길이 너무 어두워 몇 걸음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핸드폰 플래쉬 불빛에 의지해서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아마도 이 작은 산골마을 사람들은 이 길을 처음 만든 이후로 전혀 관리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서히 길 위로 울창한 식물들이 뒤덮어가고 있었고 이러다가는 돌아오는 길을 잃겠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나서 왔던 길을 되짚어 나왔다. 반딧불이를 반드시 봐야겠다는 집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숙소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지도를 다시 살펴보니 길이 하나 더 있었다. 

 

새로운 입구를 찾았을 때의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기억한다. 아리산의 그 울창한 열대 나무들로 빼곡한, 그야말로 ‘밤의 숲’이었다. 빛이라곤 저 멀리 마을의 마지막 가로등 빛과 내가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 불빛이 전부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토록 완벽한 어둠은 처음이었다. 이제 나는 반딧불이의 빛이 아니라 숲의 어둠에 홀린 기분으로 한발 한발 숲 속을 걸어 들어갔다. 가로등 불빛이 더 이상 도달하지 않기에 사방이 가늠할 수 없는 어둠으로 가득 찼을 때에야 내가 아주 위험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이토록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생생한 어둠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여기까지 왔는데도 반딧불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그러나 밤의 숲에 완전히 매혹된 상태였으므로 나는 잠시 핸드폰 불을 껐다. 완전한 어둠을 경험하고 싶었고, 이 깊은 숲속에서 올려다보는 별빛이 찬란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은은히 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반딧불이로 가득한 숲속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 연한 빛들이 핸드폰의 차갑고 선명한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하늘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빛났다. 순식간에 빛으로 가득한, 밤의 숲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길 위에 조용히 앉아 점멸하는 반딧불이의 빛들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왜 반딧불이의 빛에 매혹되는 것일까? 연약함 때문일까. 

 

숙소로 돌아와 불을 끄고 반듯하게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다른 나라의 산 속에서 반딧불이를 보고 돌아와 낯선 방에서 잠을 청하는 나 자신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하는 기분이 들었고,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밤의 숲속에서의 경험이 꿈처럼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무서운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 그토록 아름다운 경험 이후에 어째서 이런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타이베이에서 묵기로 했던 숙소는 시내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는 조용한 주택가의 한 가정집이었다. 호스트는 자신을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초행길이라 헤맬지도 모를 나를 위해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숙소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동네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집에서 십분 정도 걸어 나갔더니 상점가와 시장이 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카페와 음식점들을, 집 근처의 저렴한 마트를, 집 근처의 공원을 가는 방법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여행이 아니라 이사 온 느낌이 들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안내를 받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오늘은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시립미술관에 갈 것이라고 대답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미술관이 문을 닫을 무렵에야 깨어났다. 호스트는 외출하고 없었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고 이른 아침 비행기를 놓칠까 싶어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쌓였던 피로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때의 적막을 기억한다. 처음 도착한 낯선 작은 방에서 꿈도 없는 깊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 텅 빈 집에 혼자 앉아 있는 동안 공간을 가득 채우던 깨끗한 적막을. 그것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건 서울의 작은 내 방에서도, 일상 속에서 자주 경험하는 감각이었으므로. 어쩌면 그 평범함 때문에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일지 모르겠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고, 어딜 가도 그저 나는 나인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굳은 채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열어둔 방문으로 함께 사는 고양이 미미가 들어왔다. 내 캐리어 곳곳을 꼼꼼하게 냄새 맡는 것을 보고 카메라를 꺼내 미미를 찍으며 웃었다. 그제야 나는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날 저녁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정수리에 얼음물을 부은 것처럼 일시에 모든 감각이 깨어나던 그 깨끗한 적막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빛으로 가득하던 밤의 숲을 보고 돌아와 잠들기 위해 누워 있었을 때 경험했던 감각과 비슷했다. 내게 있어서 모든 경험의 중핵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무의미가 존재하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극대화하는 일에 가까운 것 같다. 반딧불이의 수명은 이 주 정도라고 한다. 대만에 이 주 가량 있었으므로 나의 여행 기간이 어느 반딧불이에게는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는 전체의 일생이었을 것이다. 아리산은 천년 넘게 산 고목들로 가득했다.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린 채 천년을 살아온 나무들이 가득한 숲속에서 나의 삶은 반딧불이의 삶처럼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우주 전체의 시간에 비교한다면 나와 반딧불이, 아리산의 고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넘었다. 벌써 드문드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겪은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연약한 빛과 깨끗한 적막에 대해 썼고, 이 또한 공정하게 잊힐 것이다. 그뿐이다. 

 

(시인동네, 2017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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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것

장은정

 


어떤 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것도 아주 직접적으로. 그때 시는 ‘삶’으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당연하게도 삶은 나 자신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아서 김이듬의 『말할 수 없는 애인』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전화를 걸어와선 “눈이 와, 여긴 함박눈이야”(「함박눈」)라고 말하는 ‘너’에서부터 “인도 아프리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학생들”(「말할 수 없는 애인」)도 있고, “미끄러운 언덕” 위에 있는 “오두막집의 삐걱거리는 문”을 열어야 만날 수 있는 “여태껏 보아왔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늙고 커다랗고 비만한 남자”도(「호수의 백일몽」) 있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첫눈을 맞아본 “쿠바에서 온 소녀”(「기적」)와 “7, 8년 만”에 동행한 “백발의 신사”도(「백발의 신사」) 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 시들은 그들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화자와 함께 있다. 함께 대화하고 함께 눈을 맞고 함께 통화한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시가 아니라 그들‘과의’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일어나는 일들로 가득해서, 어쩐지 김이듬의 시는 ‘텍스트’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화자와 시인을 혼동하게 하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이듬의 시를 읽고 있으면 어쩐지 그녀의 ‘생활’에 동참하게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때로 그 생활은 예전에 좋아했던 남자와 그의 딸을 만나는 일이어서 함께 새로운 감회를 경험하기도 하고(「겨울 휴관」), 반년 넘게 비어있던 앞집에 누군가가 새로 이사 온다는 사실을 알고 먼저 도착한 이삿짐 속의 책 제목을 흘깃거리는 일처럼(「파도」) 두근거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상에 내재해있는, 우리도 한번쯤은 경험해봤음직한 감정들은 김이듬의 시에선 고스란히 ‘시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일화들이 있다. 가령 화자에게 “한국말을 배우던 베트남 여자가 도망”친 일 같은 것들, 결국 “나의 베트남 친구”가 “추방”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자살」). 이런 일화들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사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일화에서 더욱 치열한 자기인식의 문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음악도 독서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철거반도 폭격도 내 식사를 망치지 않는다”(「나는 세상을 믿는다」)는 그러한 자기인식에 의해 가능한 문장이다. 여기에는 ‘나는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음악과 독서는 언제나 ‘즐기는’ 것으로 기능하고 결코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철거반에 대한 기사를 보며 분노할 수도,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쏟아지는 폭격에 비장해지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내 식사를 망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내가 지금 “평범한 기쁨”과 “엄청난 사태로부터도” “떠나 있는 것”임을(「함박눈」) 알게 해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멍청이 정신병자로 분류되지 않으려면/의심 속에서 처참한 현장을 목격해야 한다” “휴전 지대에서의 생존은 몇 편의 어이없는 영화를 더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자살을 지연하는 용기와 인내심을” 가져야한다.(「자살」)

 

이러한 자기인식에 기반한 가치관은 김이듬의 시적 가치관과 직결되어 있다. 그에겐 일반적인 ‘시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한 의심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문학적인 선언문」의 “나는 내가 시적이지 않은 시를 쓰며/시인답지 못하게 살다/문학적이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되길 빈다”는 구절이나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의 “연애는 없고 사랑만 있다/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조용히 그리고 매우 빠르게/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했다”는 구절이 그러하다. 예술적 자율성을 파괴하고 삶으로 뛰어들 것! 이것은 아방가르드의 오래된 태도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저 구절들을 맥락 그대로 해석하는 일은 위험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이듬의 시들은 충분히 시적이기 때문에. 그러니 가장 중요한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김이듬에게 ‘시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축하해
잘해봐
이 소리가 비난으로 들리지 않을 때

누군가 꽃다발을 묶을 때
천천히 풀 때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을 때
그랬다 해도 내가 듣지 못할 때

나는 길을 걸었다
철저히 보호되는 구역이었고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해놓은 길이었다

 

―「꽃다발」 전문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다. 축하한다는 말과 잘해보라는 말들을 듣는다. 그 말이 어쩐 일인지 비난으로 들리지 않아서 그 좋은 일에 흠뻑 젖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천천히 꽃다발을 묶고 천천히 푸는 것과 같이 차분해서, 그 시간만큼은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듣지 못한다. 조용한 곳, 조용한 시간. 그런데 흔치않은 이 시간은 지나치게 너무 조용하다. 여기는 어디일까. 사실 그곳은 “철저히 보호되는 구역이었고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해놓은 길이었다”. 이 시를 다 읽으면 어김없이 몰려드는 이 이상한 기분의 정체는 이것이다. 「꽃다발」은 아주 기쁜 순간, 그 기쁨의 조용한 순간을 시적으로 구축한다. 하지만 마지막 연은 바로 그 시간이 어떤 극도의 배제를 통해 만들어진 것임을 서늘하게 일러주고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시를 다 읽고 나면 어딘가 갇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이 시는 김이듬의 이번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에서 김이듬의 ‘시적인 것’을 가장 응축하여 뛰어나게 보여준다. 아름다운 것을 충분히 감응하게 한 후 그 아름다운 것의 잔인함을 드러낼 것.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것은 이러한 시적인 것을 만드는 원동력이 시에 대한 불신에서 온다는 점이다. 가령 이런 구절은 어떠한가. “절박하다는 건 뭔가 나는 시를 안 썼어도 목매달지 않았을 것이다 난 나를 저주하지 않으며 내 시는 볼펜으로 그린 내 손목시계처럼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나는 속없이 다정하고 인생은 덥다”(「오빠가 왔다」). 뒤표지 글도 일관적이다. “2, 3년 쓰다 말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세 번째 시집을 묶는다. 이렇게 된 데는 시를 향한 열렬한 사랑이나 의지 같은 거보다는 그것들을 상실하고 상실해가려는 내 육신이 있었을 뿐.” 우리는 시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려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김이듬의 시는 자신을 부정하는 힘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사실 삶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힘이다. 그래서 김이듬은 이렇게 쓴다. “내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끝내 내가 말하지 못할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내 쓰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는 일이다. 가령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같은 시는 그저 읽을 수 있을 뿐, 그에 대해 따로 말을 덧붙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_ 《애지》 2011년 여름호 발표. 

 

 

 

남아있는 한 조각

장은정

 


하루 중에서 박형준의 시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해가 지는 무렵일 것이다. 붉음과 어둠이 불길하게 뒤섞이는 이 시간에 대해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에서 그는 이미 단 한 줄로 시를 쓴 적이 있다. “알 속에서 이미 날개를 편 새”(「저녁 노을」). 그 시간을 지나 찾아오는 밤은 “날아다니는 동물”과도 같아서 어린 화자는 석유를 먹고 온 몸에 물집이 잡혔다.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강가로 달리던 장면은 여전히 쉽게 잊히지 않는다(「백열등이 켜진 빈집」). 그래서 그 동안 박형준의 시를 함께 읽어온 독자라면 이번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의 첫 시를 보고 어딘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아이를 안고 달리던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불길한 색감으로 묘사되었던 “저녁 노을”은 이제 “아버지 삼우제 끝나고/식구들, 산소에 앉아 밥을” 먹을 때 바라보는 “황혼”이 되어있다. 그 어둑한 빛에서 화자는 “창호지 안쪽에 배어든/초롱불”을 보고 “아버지가 삐걱 문을 열고 나올 것 같다”고 쓴다. 이제 해가 질 무렵의 시간은 이미지 자체라기보다 더욱 기억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변화는 제 1부 “아버지의 죽음에 바치는 노래”에서 시론으로 더욱 확장되고 있다. 시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가만가만 손가락으로 조용히 짚어간다. 거슬러 오는 동시에 미리 앞질러 가보는 것. 그래서 이 시들은 단순히 ‘애도가’가 아니며 ‘죽음에 관한 시들’이라고도 정리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생을 통과한 후에 비로소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빗속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주던 밀가루 떡의 냄새를 맡거나(「별식(別食)」젊은 아버지의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보는(「꼬리조팝나무」) 시들은 아버지의 죽음이라기보다 삶에 가깝다. 이렇듯 시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반추해보던 화자는 깨닫게 된다. 그의 삶이 “침묵”(「시집」)이었음을. 그 침묵의 삶은 아들이 쓰는 시를 “글씨”라고 부르곤 했었다(「가을밤 귀뚜라미 울음」).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신 날/새 시집이 나왔다”는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침묵이 바람처럼 잦아든 후에야 시가 시작되는 것. 언어 이전에 삶이 있다는, 겸손하고 오래된 믿음은 “너는 삶 대신 이미지를 택했다.”(「서커스」)고 지적한다. 시인이 직접 뒤표지 글에서 자신의 시를 “기억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부재의 이미지”라고 쓴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기반에 두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읽어온 박형준의 시가 삶과 죽음이 기묘하게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색상이었다면, 이제 이 색은 삶을 잃은 이미지로 의미화 된다. 「당신의 팔」이 대표적이다. “당신의 팔 속에서/강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는 1연의 서정적 진술은 “사람이 사랑을/사랑이 사람을/못 믿고/사랑을 사람이 두고/못 믿”는다는 인식에 이른다. 그 때문에 “당신의 팔”은 “정육점 같은 팔”로서 일종의 고깃덩어리로, “강물”은 “고기 같은 강물”로 명명되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나는 언제나/당신의 팔에서 타인을 사랑”하고 “언제나 당신의 팔 속에서 죽”고 만다. 이미 “인간의 언어”를 알아버린 시인에게 아버지와 같은 “침묵의 삶”은 허락되지 않기에 언어는 삶에 가닿을 수 없고 시는 “가만히 펼쳐진 채 묘혈처럼 깊”어지는 것(「시집」)이다. 

 

삶이 제거된 이미지로서 이번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빛’이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이 태양의 빛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 빛이 내릴 때」) 내리는 빛이기에, “희한하게 빗속에서” 떠다니는 “빛들”에(「여우비」) 가깝다고나 할까. 본래 빛은 로고스로서의 진리를 상징해왔다. 하지만 박형준의 이번 시집에서 ‘빛’은 삶을 잃고 이미지로 존재하는 병든 빛에 가깝다. 「저녁 빛」에서는 그 동안 그의 시에서 중심을 이루는 저녁이라는 시간이 ‘빛’으로 형상화되면서 이미지로서의 저녁으로 고조되고 있다. 이때의 저녁은 “사물 속에 빛나는 고통”과도 같아서 노을은 “부드러운 상처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별들로/또 하나의 성좌를 이룬다”. “수평선의 빛”은 이제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빛이 고통인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부재의 이미지이므로 더욱 간절히 ‘있음’을 요구하고, 그러한 요구 속에서 지금의 ‘없음’을 더욱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빛을 “남은 빛”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그것은 삶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 된다. 이것은 결여의 이름이 아니라 삶의 아주 작은 조각의 이름인 것이다. 제 1부 <아버지의 죽음에 바치는 노래>로부터 시작한 박형준의 시가 제 3부 <남은 빛>에 이르러 그 언어에 관한 자의식이 점차 더욱 섬세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삶의 한 조각이 언어라면, 그것은 당연히 “침묵으로 남은 빛”일 것이고 ‘침묵’인 삶을 쓸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일 것. 다만 그 가능성은 “너의 눈과 나의 눈에서 흐르는/눈물”로써만 피어나는 “꽃”과도 같다.

 

시적 언어에 관한 이러한 자의식 속에서 읽을 때, 표제시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는 더욱 크게 울린다. 이 시는 우선 가난했던 한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이는 지하방에 사는 한 젊은이와 작은 열매처럼 찾아온 사랑. 맨방바닥에서 나누던 사랑 끝에 낙과처럼 그녀가 떠났고 젊은이는 그녀를 기다리며 꽃무늬 요를 가만히 접어놓는다. 마침내 다시 그녀가 돌아왔을 때에야 지하방엔 꽃이 활짝 피어나는데, 마지막 연 “사과나무의 꼭대기,/생각날 때에만 울었다”를 읽고 나면 그녀가 이젠 영영 떠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녀가 우리가 끝내 잃어버린 ‘침묵의 삶’이라면, 사과나무 꼭대기야말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빛”은 아닐까. “생각날 때마다 울”수 있는 것은 아직 “사과나무 꼭대기,”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_《문학과사회》 2011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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