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환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장은정 입니다. 선생님께서 가장 최근에 트윗하신 내용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봤습니다. 민경환 선생님의 가장 최근의 트윗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2020년 9월 18일 오후 12:53

제가 만약 진짜 누군가 "좆되길" 바랐다면 이렇게 돌려서 말하지 않고 그냥 올리고 삭제한 트윗 몇 개 캡처 떠서 올리면 그만입니다. 당장 지금 지켜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건, 제가 하려는 일의 목적이 사람 매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요.

 

2020년 9월 18일 오후 12:53

제가 굳이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본인은 알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고, 또 그리 믿고 말했습니다. 차단, 또 대화라... 장은정 선생님 디엠 끝난 직후에 차단한 사람이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되겠죠. 저도 좀 압니다. 디엠으로 할 말 하면 차단박고 저격트윗 한동안 계속 올리고 삭제하시고요

 

2020년 9월 18일 오후 12:54

그래서 제가 왜 껴있는지도 모르고 조리돌림을 당했는데 제가 장은정 선생님께서 합리적으로 착각하신 이유를 1시간 20분 정도를 들었던 이유도 거기 있었죠. 그걸 다시 보는데 왜 사과는 저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대화요? 수틀리면 먼저 차단박고 저격트윗 쓰고 루머 유포하는 그런 대화요?

 

2020년 9월 18일 오후 12:57

적어도 저는 장은정 선생님과의 사적 대화를 둘 사이의 일로 남기기 위해서, 또 삭제한 멘션에 대한 최대한의 존중으로 삭제한 멘션은 저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거 딱 하나 올렸네요. 근데 제가 장은정 선생님 "좆되길" 바란다고요? 뭐 얼마나 더 하셨는지 저는 쓰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되길 바라세요?

 

2020년 9월 18일 오후 12:59

다들 무슨 일 일어났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끝낼 여지를 남겼고, 오해는 저를 향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장은정 선생님 좋은 사람으로 남을 수 있도록 다 여지를 충분히 드렸어요. 제 상처(?)가 아니라 그간 이어진 장선생님의 비겁함에 대해서 말씀하셨어야죠. 안 하시니까 제가 계속 입 여는 거구요.

 

2020년 9월 18일 오후 12:59

다 인정이요? 대체 뭘 인정하셨죠? 제가 멘탈 박살난 평론가라는 것을? 제가 토론할 용기도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정당한 비판과 불링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걸 인정했다고 하는 건 사과가 아니죠. 사과를 바라지 않지만 사과했다고 말씀하진 마세요.

 

*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트윗 내용 중에 "제가 굳이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본인은 알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하고, 또 그리 믿고 말했습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제가 뭘 알아야 하는지 무엇을 반성해야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무엇을 반성해야하는지 자세히 말씀해주실 수 없을까요?" 라고 직접 묻고 싶었지만 이미 차단을 당한 상태여서 멘션이나 디엠을 보낼 수 없었으므로 혼자서 추측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주고 받은 디엠도 모두 다시 정독하고 이여로 선생님과의 메일과 디엠, 윤아랑 선생님과의 디엠도 모두 복기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떠올리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이 역시 민경환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저 스스로 알아야 할 일'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제가 그 당시 기록들을 최대한 복기하여 현재의 관점에서 돌이켜 봤을 때, 지금 선생님께서 저를 차단한 후에 저를 저격하는 트윗을 계속 올리시는 행동을 제가 먼저 한 적이 있음을 뒤늦게 떠올렸습니다. 정확히는 저는 선생님을 차단한 것이 아니라 언팔을 했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 디엠에 남아있었습니다. 그 디엠에서 저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2020년 6월 28일, 오후 10:48

제가 팔로워를 끊었던 이유는 선생님께서 평론가라는 지위를 제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위계적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는 것이 굉장한 스트레스였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임승유 시인의 새 시집에 대해 트위터에서 언급하셨는데 굉장히 폭력적이고 근거없이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보고 저는 비평가로서 죄송하지만 수치심을 느꼈습니다. 선생님의 포스팅 하나하나가 제게는 큰 스트레스였고 저희는 관심 기반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장에 있어도 마주칠 일도, 심지어 토론할 기회도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윤아랑 선생님이나 이여로 선생님처럼 서로 동의할 수 있는 동료를 가지고 계신 것처럼 저 역시 페미니스트 비평가로서 제 문제의식에 동참하고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동료와 선배 후배들이 있습니다. 서로의 네트워킹이 다른 것이지요.

 

저는 위와 같은 이유로 당시 저희가 비평적 대화를 나눌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팔로워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하에 언팔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위 내용을 제대로 실천했다면 팔로워를 끊은 이후, 선생님의 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할 자격도 없겠지요. 제가 먼저 대화를 차단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얼마 전 선생님의 글을 읽고 "지금 우리가 신형철, 김홍중, 황종연, 권희철, 가라타니 고진을 왜 이야기해야 하는지 나는 솔직히 이해가 안간다. 너무 충분히 하고 또 하고 한 이야기들을 영원히 반복할 셈인지. 뭐, 비평의 방식은 복수성이니까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겠죠. 다만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네요." 라고 트윗했습니다. 제가 먼저 선생님께 비평적 대화를 차단해놓고 선생님의 글을 함부로 언급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어젯밤 '사이버불링과 문제제기의 차이', 그리고 SNS에서의 '윤리성'과 '잠재적 동등성' 개념에 대해 논의해보자고 글(ice-summer.tistory.com/35)을 올렸을 때, 글을 올릴 당시에는 진심으로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을 청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제안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으나 선생님께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선생님께서 느끼셨을 황당함과 분노를 제 나름대로는 일정 부분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글 내용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먼저 비평적 대화를 차단한 사람이 이번엔 자신이 차단을 당하고 대화를 거절당하자 반성문이라는 것에 정작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 단 하나도 서술하지 않은 채로 상황이 일단락 되었다고 생각하고, 혼자서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 비평적 장을 함께 만들고 대화를 해보자고 제안했으니 얼마나 황당하셨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이 명백하며, 이에 대해 선생님께서 느끼셨을 혼란과 배신감, 분노에 대해 감히 짐작해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트윗에서 언급하셨던 "그런데 대화요? 수틀리면 먼저 차단박고 저격트윗 쓰고 루머 유포하는 그런 대화요?" 저는 사실 이 사건이 무엇인지 정확히 바로 떠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윤아랑 선생님과 대화한 직후, 무척 분노하여 다음과 같이 공론화 한 바 있습니다.

 

2020년 6월 28일 오후 3:52

플텍 계정인 친구가 쓴 말. "기성 문인/비평가의 대척점에 자신을 놓고 날카로운 태도로 글을 쓰는 남자들이, 남자보다 여자 선배들을 향해 확연하게 미움 드러내는 걸 보면 웃기고 짜증난다." 이 문장을 읽고 정말 그런걸까? 내가 '여자' 평론가라서 그런걸까? 전혀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한번은 인터뷰 심사 자리에서 내가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식으로 되물어서 모두 어이없어하던 와중에 나보다 10살 정도 많은 남자 평론가가 "아니, 은정샘 질문은~"하면서 같은 말을 반복했는데 갑자기 각잡고 자세를 고쳐잡고 진지하게 대답하더라. 심사가 끝나고 심사위원들끼리 내려오는 길에 남자 선배에게 선생님, 아까 면접에서 남자 세 분으로 구성된 팀이 제 질문 무시한다고 느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어봤더니 사실 본인은 그런 경우를 하도 많이 봐서 여성평론가가 한 질문을 본인이 반복했던 경험이 다수라고 했다. 얼마전 조리돌림 당한 걸 캡처해뒀다가 내가 그 자리에서 정말 뭘 잘못했나 싶어 어젯밤 대화를 걸어 오늘 오전까지 대화했는데 대화 내용의 80%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비난하는 내용이었고 조리돌림에 대해선 "내가 언급할 때만" 깍듯이 사과하시더라. 대화해서 즐거웠구요. 다시는 보지 맙시다. 얼마 전 한 여성평론가가 자신들 무시하고 조리돌림 했다고 그렇게 몰려가서 정의롭게 화내시더니 본인들이나 잘하세요. 그 여성평론가에게 몰려가서 화내시던 분들, 그리고 저에게 이 일에 대해 입장 표명할 생각 없냐고 디엠하셨던 이여로 선생님과 심지어 메인 트윗으로 항의 중이신 민경환 선생님은 이 사태에 대해서도 입장 표명하시죠. 이 두분들 반응을 보고 제가 겪은 일이 '여자'라서 겪은 건지 판단하겠습니다." 

 

사실상, 이 분노는 오롯이 윤아랑 평론가를 향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윤아랑 평론가가 "모 문학평론가가 예전에 모 영상비평지 토크에서 '저는 정성일 말고는 영화비평 아무것도 모르지만~~ 본지에서 페미니즘 이슈를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은 패착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말한 걸 생각하면서 그래도 나는 그보다 나은 인간이라고 자위한다"라고 트윗을 하였고 저는 이 트윗을 인알하여 마찬가지로 똑같이 조리돌림을 할까 하다가 내가 어떤 점에서 부끄러움을 느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고 디엠을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윤아랑 평론가는 제가 그 자리에서 얼마나 무례했는지에 대해 80% 정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이 트윗을 보고 인알을 해서 공식적으로 논쟁을 시작할까도 생각했지만 윤아랑 선생님이 타인에게 공격받길 원하지 않아서 개인적인 디엠이라는 형태를 취했는데 저는 이 대화에서 시종일관 선생님께 혼나기만 한다고, 누가보면 윤아랑 선생님께서 조리돌림을 당하신 줄 알겠다고 항의하자 그제야 윤아랑 선생님께서 깍듯이 사과하셨습니다. 제게 그 대화는 여전히 굉장히 불쾌한 경험으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그 대화 직후 "내가 남자였어도 윤아랑 선생님이 나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구셨을까?" 하는 의심을 했고 그 과정에서 위 공론화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위 트윗을 올리고보니 당시 시점이, 이여로 선생님께서 문단에서 작동하는 위계문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던 시기였고, 그 상황에서 제가 올린 트윗이 이여로 선생님의 문제제기가 갖는 타당성을 일정 부분 훼손할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뒤늦게 자각하고 모두 삭제하였습니다. 그리고 삭제한 트윗에 대해, 이번 공론화는 제 원칙에 맞지 않는 공론화여서 스스로 철회했으며, 이에 언급된 세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공식적인 트윗을 남겼습니다. 저는 당시 이여로 선생님의 위계 권력 문제제기가 일정 부분 유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이에 대해 이여로 선생님께서 제게 디엠으로 이 사안에 대해 입장표명을 해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으나 제 나름의 이유로 참여하기 어렵지만 선생님께서 느끼셨을 불쾌감에 대해서는 위로를 표한다는 장문의 메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쓴 위의 트윗이 여러 사람들에게 캡처되어, 삭제된 이후였으나 세 분께 전달됐고, 민경환 선생님께서는 제게 상황파악을 위해 제게 디엠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모두가 보는 공식적인 타임라인에서 세 분께 이미 사과를 했으므로 디엠으로 따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듯 합니다. 하지만 민경환 선생님께서는 저의 공론화로 인해, 자신이 여성혐오적인 평론가로 오해될 수 있는 사이버불링이므로 제가 한번 더 제대로 사과하는 것이 옳았을텐데 당시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도 더불어 너무 늦게 다시금 사과드립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혼자서 고민해 본, 반성해야 할 내용들의 사실 관계들입니다. 제 나름대로는 민경환 선생님의 입장과 관점에서 객관화해보려고 애써보았으나 분명 부족한 부분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제가 이번에도 잘못 짚었거나 부족하다면 더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민경환 선생님께 했던 행동들 중 추론할 수 있는 잘못된 행동들에 대해 모두 나열하였으며 이를 모든 이에게 공개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2020년 9월 18일 금요일

장은정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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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환 선생님께 _ 장은정 올림  (1) 2020.09.18
2019  (0) 2019.12.14
  • 이성식 2020.09.18 20:14 # modify/delete reply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문학평론가 장은정입니다. 저는 오랜 시간, 문학비평이 (종이)문학잡지에 갇힌 채로 누가 어떤 의제를 제기하고 그 의제에 누가 참여했는지 일반 독자가 따라가기 힘든 구조 속에 갇혀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왜냐하면 문학비평 장르에서는 '문학사'라는 기반 하에서 이전과 지금을 비교하며 그 차이를 짚어내는 것을 중요한 비평적 행위로 간주해온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한국문학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으면 문학계 내에서 벌어지는 비평적 논쟁들을 독자들이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개인 블로그를 사용하시는 노태훈 선생님께서 2020년 문사 여름호에 실린 제 글 「우리의 2010년대」를 두고 개인블로그에 피드백을 남겨주셨을 때, 저는 그 피드백을 지면에서 답하는 것이 아니라 댓글 기능을 이용하여 다시 질문을 이어나갔고 이를 제 트위터 계정에 게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노태훈 선생님과 저와의 대화가 저의 글 전문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저희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대립되는 의견이 새로운 의제를 만들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저는 문학비평의 공론장이 당장은 종이잡지를 기반으로 작동한다고 하더라도 독자들이 좀 더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논의의 방식이나 영역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 역시 2020년의 비평가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감사하게도 노태훈 선생님께서는 제 질문에 정성껏 답변해주셨고, 저는 긴 답변에 감사드린다고 인사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와 노태훈 선생님과의 대화는 노태훈 선생님의 블로그 주소와 제 트위터 계정을 통해 독자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서로 대립하는 두 의견에 대해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더라도 독자분들께서 두 글을 따라 읽은 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시기도 했으며 그때 제가 제안드렸던 '#지금비평' 해시태그는 그 참여율이 미진하지만 이를 어떻게 해야 활성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늘 고민하는 중입니다.

 

저는 지면에서만 벌이는 비평가들의 논쟁은 비평가로서 굉장히 안전한 논쟁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평론가들끼리만 읽고 이야기하니까요. 조남주 소설가의 <82년생 김지영>이 전세계로 번역되어 퍼져나가고 있을 때, 일부의 남성평론가들과 여성평론가들 간의 큰 비평적 논쟁이 있었으나 그 사실을 독자들은 전혀 몰랐습니다. "#문학은_위험하다"에 일부 글들이 실려 단행본으로 만들어진 이후에야, 비평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그 책을 통해 뒤늦게 그런 논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는 후기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저는 제 수업 시간에 이 논쟁들을 (김현과 백낙청으로부터 시작하는) 문학사의 순서대로 정리하여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문예창작학과이기에 창작자 정체성이 대부분인 학생들인데도 이 논쟁을 굉장히 흥미로워하며 따라가며 즐기는 것을 보면서 문학비평 장르가 그동안 독자가 없었던 것은 '비평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매체와 그 작동원리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위키라거나 뉴스레터 등을 통해 비평의 그 작동원리에 대한 실험을 여러차례 거듭하는 중입니다. 

 

저는 이런 이유로 비평가로서 지면에 제 글을 한편 완성도 있게 써내는 것 뿐 아니라 공론장의 원리를 바꾸고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며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 또한 2020년을 살아가는 문학비평가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현재 여러 웹진들이 이를 시도 중이지만, 평론가들은 종이잡지에 글쓰는 것에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매체에 어울리지 않는 종이잡지의 문체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많고 저는 이를 당연히 일종의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페미니즘 문학비평 위키를 만들었던 것도 이런 판단에 따라, 종이잡지에 적힌 내용들이 위키라는 매체로 재구성되면서 독자들과 만나기 쉬운 접점을 구성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SNS에서 비평적 논쟁을 벌이는 일을 적극적으로 해왔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제 비평적 대상은 현재 출간되는 작품에 국한되지 않으며, 독립출판계의 지속성을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지, 소위 메이저로 불리는 대형출판사들이 유지해오는 제도가 과연 문학출판계 전체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지면에서든, 언론에서든, 제 개인 SNS에서든 제가 비평가로서 믿는 바에 따라 발화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고 지속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한 종이잡지의 좌담에서 한 남성시인이 2019년을 정리하는 한 좌담에서 황병승 시인의 죽음을 두고 한 세대의 종말을 실감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저는 그 대사를 사진으로 찍어 제 계정에 올린 후, 그 의견을 비판했습니다. 그 잡지는 현대시라는 잡지였고 그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서관에서도 구하기 힘든 잡지인 한, 그 발화는 종이잡지 안에서 비판 받지 않고 안전하게 조용히 지나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안 읽었을 테니까요. 황병승 시인은 비평적 상찬에 의해 생겨난 위계를 이용하여 많은 여성들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했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도 숱한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습니다. 엄연히 황병승 시인의 피해자들이 존재하며 그 경험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는 현재, 황병승 시인에게 한 시대의 문학적 대표성을 부여할 때 피해자의 경험은 문학사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며,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의 의의를 명백히 폄하하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미래파로 불리웠던 여성 시인들이 여전히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시 세계를 갱신해나가고 있는데, 이를 마치 없는 일처럼 치부하는 굉장히 문제적인 발언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발화를 '종이'에서 'SNS'로 옮겼고, 그 행위는 제게 비평적 실천이었습니다. 똑같은 문장이, 종이가 아니라 웹으로 옮겨졌다는 사실만으로 일종의 여론이 생겨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 문장의 내용이 문제적이라는 확고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트위터에서 저와 의견이 다르고 그 다름이 서로 논의해볼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면 늘 말을 걸어왔습니다. 자신의 계정을 가지고 그 계정에 비평적 의견을 개진하는 비평가가 있을 때는 물론이고, 출판사를 대상으로 하거나 그 출판사의 영향력 있는 편집자에게나 의문이 드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런데 '사적 대화 무단 인용'이라는 사건을 겪은 후 발간된 문학동네의 특집 주제가 세대론이라는 것, 게다가 그 특집 제목이 권혁웅 평론가가 사용했던 미래파라는 용어 대신 신형철 평론가가 사용했던 '뉴웨이브'를 반복하여 전면에 내세운 것은 정말 무책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출판사보다 앞장서서 퀴어 페미니즘 담론을 만들어온 잡지가 '사적 대화 무단 인용' 사건을 겪고 권두언에서 한 문단으로 간단히 그 이야기를 축약해버린 후 그 호의 특집으로 세대론을 내세운 것은 저로서는 윤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민경환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었고, 최근 2~3년 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로 여성평론가들이 남성평론가들 중심으로 구성되어온 남성 중심적 담론을 해체하기 위해 여러번 인용하고 전복해왔던 이름들이 2020년 가을호에 그대로 각주로 들어있는 것을 목격한 후 "지금 우리가 신형철, 김홍중, 황종연, 권희철, 가라타니 고진을 왜 이야기해야 하는지 나는 솔직히 이해가 안간다. 너무 충분히 이야기하고 또 하고 한 이야기들을 영원히 반복할 셈인지. 뭐, 비평의 방식은 복수성이니까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겠죠. 다만 그런 작업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네요."라고 게시했습니다. 민경환 선생님께서는 저의 이 트윗을 '폭력'이라고 여겨 공론화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민경환 선생님의 말처럼 선생님과 저 사이에는 선배와 후배라는 위계가 있고 제 의견이 민경환 선생님께는 말 그대로 '선배질' 혹은 '꼰대질'의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여겨 일종의 반성문을 게시했습니다. 그 반성문은 현재 제 계정의 메인에 걸려있습니다. 논쟁을 할 때 두 사람의 위치가 반드시 동등할 수 없음을 간과해서는 안되며, 이에 대한 실천적 문제의식을 통과한 후 발화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발화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므로 이에 대해 변명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논의가 반성문으로 끝나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남은 질문들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여전히 종이잡지에 갇혀있는 비평적 논쟁들이 더 많은 독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말이 도는" 살아있는 담론이 되기 위해서 기존 비평들이 이런 것들이 그동안 '비평적인 것'이라고 여겨온 것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거나 버리고, 그동안 '비평적이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 것들을 도입하며 비평적 문법을 바꿔보는 것에 거침없이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문학은 오래 '문학사' 내부에서만 논의되어 왔습니다. 저는 문학의 자율성 개념이 강화되면서 '문학사 내에서의 문학적 논쟁'이 점차 비평의 논쟁 영역으로 협소화된 것이 90년대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여러 번 문제제기를 하는 글을 발표했고, 그후부터는 우선 제 자신이 먼저 그동안 '비평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여겨진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왔습니다. 제가 11년간 비평가로서 벌어들인 소득을 엑셀에 모두 정리하여 합산해서 낸 글이라거나, 윤이형 소설가의 소설을 인용하면서 '그럼에도 이 글은 '소설 비평'이 아니라, '시간 비평'이다' 라고 선언하는 것 모두 제 나름 시도해본 '다른 비평'들의 예시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그동안 지면에서 비평가들은 서로를 선후배로 호명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저는 한때 박상수 평론가와 여러 번 논쟁을 벌였는데, "박상수는 다음의 글에서"와 같이 지면 내에서의 '잠재적 동등성'을 가정하고 비평을 써왔고 박상수 평론가 역시 그렇게 글을 썼습니다. 제가 이번에 놓친 것 중 하나는 이처럼 비평 '지면'에서 통용되던 '잠재적 동등성'을 SNS라는 매체에 반성없이 그대로 적용시킨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제기와 사이버불링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요? 그 차이에 대한 사유가 SNS에서의 '잠재적 동등성'을 새로이 구성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2016년 문학출판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에서 채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여성 연대체들이 무너진 것도 정확히 바로 이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문헌없음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 있었던, 너무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서 어떤 분들은 '참고문헌없음' 모먼트까지 만들어가며 이를 '봄알람 출판사 음해사건'이라고 명명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문제제기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사이버불링입니다. 누군가는 내로남불이라고 하더군요. 남에게는 문제제기이고 자신에게는 사이버불링이라구요. 저희는 지금 4년 째, 트위터를 공론장으로 사용하면서도 이 문제를 깊이있게 논의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민경환 선생님께 문제제기를 받고 반성문을 쓰면서 개인적으로는 페미라이터의 해체문을 쓰던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거의 유사한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디까지가 문제제기이고, 어디서부터 사이버불링일까요?

 

얼마전 김봉곤 작가의 '사적 대화 무단 인용' 사건을 두고 한영인 평론가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것을 기억합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제가 읽고 기억하는 바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상처 받은 사람이 있어서 비윤리적인 것과 비윤리적이어서 누군가 상처 받은 것은 구분해야한다." 저는 이 문장이 아주 중요한 구분을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발화로 인한 민경환 선생님의 상처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논쟁의 형식에 있어서 내용적 측면 이외에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위계를 고려하지 않고 발화한 행위가 비윤리적이기 때문에 반성합니다. 트위터에서는 흔히 피해자 중심주의가 "상처받은 사람이 있으므로 비윤리적이다"로 잘못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지 자신의 기분이 상했으므로 타인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숱하게 봐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저는 제가 이번 사안에서 행한 반성 뿐 아니라, SNS 매체에서 논쟁을 할 때의 '윤리'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나갈 책임 역시 있다고 생각하여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SNS 매체에서의 논쟁에서의 윤리성이나 잠재적 동등성 개념에 대해 고민해보신 분이 있다면 제게 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길든 짧든, 어떤 형식의 글이든 좋습니다. 보내주신 모든 글을 제 블로그에 따로 카테고리를 만들어 보내주시는대로 매일 싣고자 합니다. 제 메일주소는 riyunion@naver.com입니다. 보내주실 때 [토론에 참여합니다]라고 머릿말을 제목에 포함시켜주시면 제가 분류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많은 의견을 듣고 대화하고 싶습니다.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2020년 9월 18일 

장은정 올림

 

 

 

프롤로그 (장은정)

 

처음에 요청 받은 것은 40매짜리 원고 청탁이었다. 쓰고 싶은 것들은 언제나 차고 넘치므로 40매 정도야 금방 써내려갈 수 있을 테지만, 다른 문학잡지들에서 청탁을 받았을 때 쓰는 글들을 그대로 《모티프》에 싣는다는 것이 부적합하게 느껴졌다. 어째서일까? 

고백하자면 나는 평소 모티프의 방향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던 독자였다. 내가 하려는/해야 한다고 여기는 문학과 《모티프》가 하고 있는 문학은 달랐던 것인데, 평소라면 ‘뭐 각자 믿는 대로 다르게 사는 거지’라고 생각하고 그저 내 글을 썼을 텐데 이번에는 그게 잘 안됐다. 왜일까?

지금 문학장은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문학들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표절 사태, 문학출판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 미투 운동을 통과하면서 기존의 문학에 대한 합의된 내용들이 깨져나가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각자의 문학들이 형성되고 있다. 지금의 비평은 자신의 입장을 체계적이고 논리적으로 완성도 있게 내어놓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과 다른 입장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비평의 중심으로 삼으면서 독자들이 이 간극에 참여할 수 있는 글쓰기를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말하는 이의 이야기들을 경청하되 때로는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하기도 하는 인터뷰가 가능하다면, 이 역시 비평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게 본질적으로 비평이란 대화다. 누구와 대화할 것인가? 우선 나는 《모티프》와 대화하고 싶었다. 이 '인터뷰-비평'을 읽는 당신과도 이어서 대화하고 싶다. 

 

 

 

첫 번째 모티프, 유수연

_벌써 1,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장은정 : 현실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처음 잡지 만드는 돈은 어디서 난건가.
유수연 : 등록금, 여행 적금, 주식 판매금.
장은정 : 그렇게까지 만들고 싶었나?
유수연 : 본전은 뽑을 줄 알았다. 아니면 유명해지거나.
장은정 : 그래서 초기 투자금이 얼마였나?
유수연 : 스파크 한 대. 
장은정 : 미안한데, 스파크 얼만지 모른다.
유수연 : 노 옵션, 천만원 정도다.
장은정 : 그럼 2호는?
유수연 : 1호랑 합쳐서 소나타. 
장은정 : 이럴 수가.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보나? 
유수연 : 갑자기?
장은정 : 그럼 3호는?
유수연 : 그건 나랏돈으로 하려고 했다.
장은정 : 잘 안 된 거 봤다. 
유수연 : 신규 문예지 파트가 신설됐기에 이번엔 될 줄 알았다.  
장은정 : 악스트랑 릿터가 받았던데?
유수연 : 축하한다.
장은정 : 심사평이 뭐였더라?
유수연 : "신규 문예지 및 독립 문예지의 경우, 참신성과 함께 지속성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신중하게 선정하려고 했다." (↘링크)
장은정 : 심사 결과가 납득이 됐나?
유수연 : 안 됐다. 
장은정 : 선정된 잡지들이 더 참신했다고 보나?
유수연 : 심사위원들이 생각하는 참신성의 기준이 심사평에서 제시되었어야 한다고 본다.
장은정 : 지속성에 대해서는 어떤가?
유수연 : 신규 문예지 파트에서 ‘지속성’을 심사 기준으로 삼는다는 게 부적절했다고 본다. 
장은정 : 그 이유는?
유수연 : 선정 결과를 보면 결국 지속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매체만이 지원 대상이 되었다.
장은정 : 그렇게 되면, 자본력을 갖추지 못한 매체는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구조에 일조하겠다.
유수연 : 그렇다. 연예계로 따지면 대형 기획사에 나랏돈을 붓는 꼴이 아닌가?
장은정 : 대형 출판사 입장에서는 대형 기획사에 비교하면 억울할 것 같다. 
유수연 : 영리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럴 것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영리 바깥의 영역이다.
장은정 :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
유수연 : 정부에서 문학이라는 예술을 존속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질문하고 싶다.
장은정 : 공공기관이 우선 예술의 가치를 모르는 것 같다.
유수연 : 모르는 게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돈 나올 구멍에 돈을 붓는 것이 아니라, 돈이 안 되더라도 남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장은정 : 공공기관이 예술에 대한 철학이 없다는 것에 동의한다.
유수연 : 현재 사업은 굵은 가지만 두고 잔가지를 모두 잘라버리는 것이다. 을지로에서 을지면옥만 남기는 것과 뭐가 다른가?
장은정 : 공공기관이 기여해야 하는 문학출판계 생태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유수연 : 공공 자금은 ‘가위’가 아니라 ‘영양제’의 역할 아닌가? 생태계 자체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은정 : 자본력을 가진 매체만 지원하는 것이 을지로를 밀어버리고 고층빌딩을 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유수연 : 신규문예지(창간3년 이내) 항목에서 ‘독립잡지’(가 대체 뭘까?)라고 할 만한 잡지가 하나도 선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예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장은정 : 그럼 당장 3호는 어떻게 만들 계획인가? 
유수연 : 항상 해왔던 대로 텀블벅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장은정 : 목표 금액은?
유수연 : 다시, 스파크 한 대.
장은정 : 그럼 한 호를 낼 때마다 스파크 한 대씩 들어가는 건데, 아니? 그렇게까지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솔직히 모르겠다. 
유수연 :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두 번째 모티프, 이리
_나를 묶고 가둔다면

 

장은정 : 소나타 한 대를 이미 보냈는데도 3호를 준비 중이다. 솔직히 왜 계속 하는지 모르겠다.
이리 : 그러게.
장은정 : 그런데도 계속하고 있지 않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이리 : 한 권 쯤은 이런 게 있었으면 했다. 문학만 실려 있지 않는 문학잡지를 읽고 싶다는 생각은 다들 한번쯤 하지 않나? 
장은정 : 난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이리 : 한 적이 없다고? 이전 문학잡지들에 만족했어?
장은정 : 음. 내가 대학생 시절에 읽었던 문예지는 지루한 수업에 대한 유일한 보상이었다.
이리 : 충격적이다. 뭐라고? 유일하다고?
장은정 : 당시 작품 속에서 내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었던 작가들은 모두 신인이었고, 이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로지 문예지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다. 당신은 어떤가? 
이리 : 월세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문학잡지에서는 내 이야기를 찾을 수 없었다.
장은정 : 그럼 문예지를 아예 안 읽었나? 
이리 : 읽기는 했다. 전공 수업 자료였다.
장은정 : 그럼 뭐가 재미있었나?
이리 : SNS와 낭독회. 어디서나 좋아하는 작가들을 직접 만나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데 왜 읽기만 해야 되지?
장은정 : 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오로지 문예지뿐이었다.
이리 : 주어진 선택지의 개수가 ‘재미’의 감각을 다르게 만드는 것 같다.
장은정 : 그런데 재미에도 유통기한이 있지 않나?
이리 : 그렇다. 낭독회도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작가가 직접 작품을 읽거나,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거나, 독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 반복되는 것이 답답했다.
장은정 : 이 지점은 바로 공감이 간다. 그럼 이후엔 뭐가 재밌게 느껴졌나?
이리 : 문학이 아닌 예술 장르에서 여는 행사들과 비교했을 때, 접근법이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
장은정 : 동의한다. 얼마 전 홍대우와페스티벌의 기획 중에 세탁소에서 디제잉을 하는 것을 보고 접근법에 놀랐다. 공연은 공연장에서 한다는 발상을 버리고, 장소의 고정된 기능 자체를 다르게 변주하면서 관객을 모았다. 공연 도중에도 세탁소 영업을 하고 있어서 세탁물을 맡기러 오는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것까지 공연의 일부였다. 이에 비하면 문학 행사들은 왜 이렇게 다 비슷할까? 
이리 : 문학에 대한 기존의 엄숙한 태도가 새로운 상상들을 가로막는 것 같다. 특히 기존의 문학 독자들만을 대상으로 기획하는 것 같다. ‘독자들과의 대화’라는 코너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작가뿐이다. 독자는 질문 이외엔 말할 수 없다.
장은정 : 모티프는 뭐가 다른가?
이리 : 우리가 그리는 작가는 독자의 자리이기도 하다. 패션이 그 교차점이 되리라 생각했다. 
장은정 : 사실 이게 제일 궁금했다. 대체 문학이 패션과 무슨 관계인가? 그거 너무 개인적인 취향 아닌가? 
이리 : 패션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옷 안 입는 사람도 있나?
장은정 : 패션이 보편적이라서 가져다 붙였다는 건가?
이리 : 그렇다. 책 안 읽는 사람은 없어도 옷을 안 입는 사람은 없다. 패션이라는 수단을 통해 책을 만나볼 수 있는 계기를 더 많이 만들고 싶었다.
장은정 : 패션만이 보편적인 것은 아니지 않나? 의식주 중에 왜 ‘의’였나?
이리 : 의식주 중에 가장 개인을 ‘표현’하는 가장 직관적인 수단이라고 본다. 
장은정 : 옷의 기능적 측면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은 대상 독자가 아닌가?
이리 : 패션은 단순히 뭘 ‘걸치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패션 트렌드는 시대적 상징성을 가진다.
장은정 : 패션의 ‘재정의’를 의도했다는 말인가?
이리 :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문학도 ‘패셔너블’한 예술이 되었으면 한다.
장은정 : 사실 나는 처음 모티프를 접했을 때, 작가를 ‘스타화’시키는 것이 아닌지 불편했다. 이때 독자는 어디에 있는가?
이리 : 그동안의 문예지가 작가에게 부여하는 권위와 모티프가 작가를 그리는 방식은 다르다고 본다.
장은정 : 뭐가 다른데?
이리 : 그건 이유수가 말해줄 거다. 

 

 

 

세 번째 모티프, 이유수
_모티프에만 있는 것; 디렉팅

장은정 : 왜 이유수가 말해준다고 하는 거지?
이유수 : 작가와 작품을 시각화하는 작업이 모티프의 핵심이다. 현재 모티프에서 포토 디렉팅을 맡고 있다.
장은정 : 사진이나 영상, 그림 등 방법은 다양할 텐데, 시각화의 수단으로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이유수 : 가상으로 구현된 세계가 그림에 비해서 더욱 실제처럼 경험되는 매체다.
장은정 : 그건 모든 예술의 공통점 아닌가? 사진만의 특수성이 뭔가?
이유수 : 일단 종이잡지의 형식이므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한정되어 있었다.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어야만 했던 것은 ‘그려진’ 것과 ‘찍힌’ 것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사진이 우리의 문학을 보여주기에 더 적합했다. 우리의 문학을 보여주기에 사진이 더 적합했다.
장은정 : 사진 중에서도 패션화보를 택한 이유는 뭔가?
이유수 : 만일 그림이나 예술이라면 작가에게 모두 일임해야 하지만, 패션화보의 경우엔 우리가 직접 모델을 선정하고, 옷을 입히고, 구도와 배경을 연출을 주도할 수 있다.
장은정 : 그렇다면 모티프의 패션화보란 작가와 문학작품에 대한 독자-해석자의 위치라고 볼 수 있을까?
이유수 : 그렇다. 동시에 기획자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이 ‘디렉팅’으로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장은정 : 사실 생소한 말이다. 정확히 어떤 디렉팅을 했나?
이유수 : 모티프의 시각화는 두 가지 챕터로 대표된다. 1)작품을 해석해서 화보로 보여주는 것과 2)작가가 자신이 쓴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연출하는 화보다.
장은정 : 1)그럼 전자부터 이야기해보자. 시보다 화보가 먼저 나오면 시에 대한 다양한 독해를 오히려 가로막는 것 아닌가?
이유수 : 왜?
장은정 : 예를 들어 문보영의 「그림책의 두 가지 색」에서는 두 가지 색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데 모티프는 주황색과 보라색으로 구체화시켰다. 이로 인해 다른 색의 상상을 가로막은 것 아닌가?
이유수 :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상정한 독자는 그런 상상에 익숙치 않은 이들이다.
장은정 : 그 독자도 모티프가 상정한 허상일 수도 있지 않나?
이유수 : 문학이라곤 국어 과목이 전부였던 사람들을 독자로 상정하면서 이것이 허상이 아닐까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2호를 내면서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했다. 모티프가 상정한 독자군은 두 종류다. 시와 사진이 함께 담긴 페이지를 펼쳤을 때, 시부터 읽는 독자와 사진부터 보는 독자. 당신은 전자고, 내가 말하는 것은 후자다.
장은정 : 후자의 독자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데?
이유수 : 처음 모티프를 보고 이게 무슨 책이냐고 묻지 않고 이 모델이 누구냐고 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땐 어째서 주황색과 보라색을 골랐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이것은 사진부터 보는 사람이 시를 읽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장은정 : 모티프가 시의 독자를 발명했다는 건가?
이유수 : 그렇다. 이번엔 내가 묻고 싶다. 우리의 화보가 시에 대한 상상을 가로막는다고 했는데, 그거 너무 독자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장은정 : 무슨 뜻이지?
이유수 : 우리가 주황색과 보라색으로 특정했다고 해서 시를 읽는 사람들이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결국 후자의 독자가 당신과 같은 질문을 한 셈이 아닌가? 
장은정 : 정당한 비판이다. 잡지의 컨텐츠에서 독자로 가는 방향만을 고려하고, 독자의 편에서 역으로 잡지로 질문하는 방향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유수 : 결국 우리가 주황색과 보라색을 고름으로써 해석이 다른 독자들과 시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고 본다.
장은정 : 2)그렇다면 작가를 촬영하는 화보의 경우로 넘어가보자. ‘완전히 새로운 포맷’이라고 스스로 소개하는 것을 보고 설득이 안됐다. 패션잡지에서 작가들을 대상으로 화보를 촬영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유수 : 패션잡지에서 작가를 촬영할 경우 그들은 작가를 단지 모델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는 작가를 자신이 쓴 작품 속의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장은정 : 사실 나는 그걸 모티프의 보도자료를 보면서야 깨달았다. 
이유수 : 굳이 그 차이를 부각하진 않았다.
장은정 : 왜? 그게 잘 전달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유수 : 의도를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설득보다는 매혹이 우선 되었으면 했다.
장은정 : 물론 기존 문예지와 나란히 두면 모티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지만, 기존의 패션잡지와 섞어 놓았을 때에도 독자가 선택하게 만드는 ‘다른’ 매혹이 있다고 보나?
이유수 : 그건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장은정 : 적어도 디렉팅을 하는 입장에서는 패션잡지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나?
이유수 : 기존의 패션잡지의 화보는 상품의 판매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는 모델이 될 작가와 작품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장은정 : 역시 그것까진 몰랐다. 
이유수 : 반복하지만, 그건 당신이 사진과 글 중에 글부터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장은정 : 듣고 보니 디렉팅이 다른 모든 문학잡지와 비교했을 때 모티프에만 유일하게 존재하는 포지션 같다.
이유수 : 우리는 그 디렉팅이 당신이 하는 비평적 작업과 근본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을 갖는지는 독자들 각각이 판단할 문제다. 

 

 

 

네 번째 모티프, 김의석

_문학의 손익분기점

 

장은정 : 그래, 일단 알겠다. 그런데 일단 다음 호를 제작할 수 있는 수익은 내야할 텐데, 마케팅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의석 : 그렇다.

장은정 : 낯빛이 어둡다.

김의석 : 쉽지 않다. 사실 마케팅 부분이 우리에게 가장 큰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장은정 : 왜지?

김의석 :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장은정 : 첫 번째 좌절은?

김의석 : 창간호의 가격을 책정할 때다. 더 많은 문학 독자를 만들려고 시작한 일인데, 그것도 사실은 자본력 없이 컨텐츠 내용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은정 : 어떤 일을 겪은 건가?

김의석 :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원이냐, 만오천이냐’의 고민이었다. 만원이면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대신 원하는 걸 만들 수 없다. 반면, 마음껏 원하는 대로 만들면 그만큼 독자들을 만날 기회도 적어진다.

장은정 : 현타 왔을 것 같다.

김의석 : 살 때랑 팔 때랑 마음이 다르더라.

장은정 : 결국 만오천원으로 책정했을 때, 심정이 착잡했겠다.

김의석 : 그렇다. 더욱 착잡했던 건 그 만오천원도 1쇄를 모두 판매했을 때에만 본전이다.

장은정 : 창간호 1쇄는 다 팔렸나?

김의석 : 70%는 팔았다.

장은정 : 현재는 30% 적자네?

김의석 : 창간호만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자.

장은정 : 만오천원이 마지노선이었던 이유는?

김의석 : 제작·인쇄비 오천원, 유통 수수료 오천원, 나머지 남은 오천원으로 촬영도 하고 원고료와 디자인 비용까지 충당해야 한다. 물론 여기서 사무실 월세는 빠져있다.

장은정 : 존경한다.

김의석 : 스파크는 연비라도 좋지.

장은정 : 그런데 이게 첫 번째 좌절이라고? 몇 번째까지 있나?

김의석 : 세어본 적은 없지만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순서를 매겨보겠다.

장은정 : , 그럼 두 번째 좌절.

김의석 : 처음 대형서점에 유통할 때, 문예지 매대가 아니라 패션지 매대에 책을 올리고 싶었다. 그런데 직접 서점에 확인하러 갔을 때 쪼그려 앉아야만 뽑을 수 있는 위치에 모티프가 진열되어 있었다.

장은정 : 독자와의 거리가 실감났을 것 같다.

김의석 : 물리적으로 느껴졌다.

장은정 : 그것을 어떻게 넘으려고 했는가?

김의석 : 대형서점으로는 방법이 안보였다. 그래서 독립서점 뿐 아니라 굳이 서점이 아닌 장소에서도 모티프가 놓여야 할 것 같았다. 소위 ‘편집샵’에 유통하고 싶었다.

장은정 : 성공했나?

김의석 : 쉽지 않았다. 인지도부터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게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장은정 : 과연 희망일까?

김의석 : 인지도와 판매량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대안이 없는 것 같다.

장은정 : 1년 정도 모티프를 만들면서 실감한 출판 생태계의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의석 : 말이 길어질 것 같다.

장은정 :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무엇인가?

김의석 : 유통과정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나 다름없다. 대형서점에 책을 납품할 때, 그 조건이 소형 출판사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까다로웠다. 자체 재고 관리 시스템인 scm도 체계적이지 않다. 언제 어디서 책이 팔려 입금이 되는 건지, 어느 매장에는 우리 책이 한 권도 없는데 왜 더 입고 요청이 들어오지 않는 것인지도 의문이 들었다.

장은정 : 공급자로서의 고충이 심한 것 같다.

김의석 : 그렇다. 유통과정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장은정 : 또 뭐가 문제인가?

김의석 : 현장에서 독자가 만나볼 수 있는 책의 종류가 한정적이다. 서점에 들어가면 보이는 매대에는 베스트셀러만이 놓인다. 조명 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책들이 수없이 많다.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진열되고, 그렇게 관리되지 않은 책들은 손때가 묻어 헌 것이 되거나 도장이 찍히거나, 스티커가 붙어 상품 가치가 없어진 상태로 우리에게 반품된다.

장은정 : 그 손해는 고스란히 출판사의 몫이 되겠다.

김의석 : 정답이다.

장은정 : 만일 딱 한 가지 책을 만드는 조건이 바뀐다면, 자본금 이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김의석 : 유통과정의 위탁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 말이 위탁이지, 진열 기간이 끝나서 반품이 들어오면 못 쓰는 책들이 태반이다. 정가의 삼 분의 일이 넘는 수수료가 관행적으로 정해진 비율이라는 설명만 들었다.

장은정 : 그 관행을 누가 정한 건가?

김의석 : 우리도 그걸 물어보고 싶다.

장은정 : 모티프에게 롤 모델이 되는 곳이 있다면?

김의석 :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자생적으로 발행을 이어갈 수 있는 모든 매거진.

장은정 : 그런 곳이 있기는 한가?

김의석 : 사실 찾아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몇 군데나 있을지는 우리도 잘 모르겠다.

장은정 : 인터뷰가 끝나가는 데도 여러분들이 무슨 힘으로 버티는지 모르겠다.

김의석 :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바보인 것 같기도 하고.

장은정 : 이러고도 계속 만들 건가?

김의석 : 솔직히 자신은 없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갈 데 까지 가보려 한다.

 

 

에필로그 (모티프)

공전이 만들어진 것은 2017년 12월, 모티프가 창간된 것은 2018년 4월의 일이다. 우리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의 기획회의를 통해 모티프의 문학을 정의했다. 구성원 네 명의 의견은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분모는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소비되는 문학을 만들자.' 소설이, 시가, 문학이,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작가가 세상에 보다 인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문학잡지라는 포지션을 고수해온 것도 동일하다. '이런 것도 문학이에요.'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책을 만드는 일도, 여러명이 무언가를 기획해내는 일도 처음이었기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세상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배웠다.

 

장은정 평론가의 모티프에 대한 첫인상처럼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척당하거나 반려당했다. 우리도 딱히 그들이 말하는 문학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려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위의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애초에 우리가 타겟팅했던 이들은 이미 '본인들의 문학'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본 대담을 통해 우리의 그러한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방향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계속 나아가도 된다'는 확신을 얻기도 했다. 이것이 이번 인터뷰-비평에서의 가장 큰 성과였다.

 

우리는 모티프를 만들기 시작한 뒤로 언제나 불확신과 불안함을 기저에 두고 나아갔다. 스스로의 활동을 단순히 '미래의 누군가에게 더 나은 과거'라 지칭했던 것도 이러한 불안정함에서 기인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딛고 있는 것이 곧 무너질 모래성 따위가 아니라고 믿는다. 모티프의 뜻처럼 우리의 행보가 문학에서 절대 생략될 수 없는 역사의 한 꼭짓점으로 남기를 기원하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는 문학을 한 문장으로 정의내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다. 모티프는 그저 '문학'이라는, 조금 멀게 느껴지는 세계와 독자를 이어줄 수 있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오늘의 이 인터뷰-비평이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방식의 비평도, 우리가 문학을 말하는 방식처럼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공전은 세상과 가까운 문학을 꿈꿉니다."

 

 

(2019년 5월, 모티프 3호에 수록) 

 

※알립니다. 

1. 저는 2019년 겨울에 '노동자로서의 평론가'라는 주제를 청탁받아서, 11년간 발표한 원고에 각각의 일련번호를 붙인 후, 청탁서 여부와 고료 기재 여부, 매수 및 입금고료와 입금날짜까지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이 파일을 완성하는 것에만 한달이 걸렸고, 이 데이터들을 대상으로 「지나간 미래」를 작성했습니다. 이 글은 『자음과모음』 2020년 봄호(링크)에 실렸습니다. 

 

2. 경향신문의 이영경 기자님께서 위 글을 읽으시고 인터뷰를 요청해주셨습니다. 이 인터뷰를 기반으로 "매당 5000원의 삶" '노동자로서 평론가'의 삶은 가능한가'(↘링크) 기사가 작성되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이영경 기자님께서 정리하시기 전, 제가 작성한 인터뷰 원본 전문입니다. 이영경 기자님의 동의 하에 전문을 공개합니다.


이영경 : 글을 읽는 독자를 30년 후인 2050년의 독자로 상정하고 글을 쓴 이유가 있으신지요.

 

장은정 : 우리는 일상에 주어진 과업들을 하루하루 소화하기도 벅차기에 내가 처해 있는 여러 조건들이 역사적으로 보았을 때 특정 시대의 산물이라는 것을 사유하기 힘듭니다. 제가 만일 2050년의 관점을 도입하지 않고 이 글을 썼다면 출판 산업의 구조 속에서 평론가가 갖는 열악한 노동조건을 폭로하는 것으로만 읽혔을 것입니다. 적을 상정하고 분명한 전선을 그어 프레임을 짜는 것은 빠른 시간 내에 사람들을 함께 행동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효율적이며, 이런 방식의 운동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방향성 없이 이 방식이 반복될 경우, 그에 참여한 사람들을 궁극적으로는 무력하게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느리더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경험의 축적이 없다면 모든 노력이 무의미한 반복으로 경험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지금으로부터 30년 이후라는 설정은 ‘어떤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질문과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맞물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태어난 아이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살게 될 세상은 지금의 우리에게 큰 책임이 있습니다.

 


이영경 : 2009년 등단, 11년 동안 문학평론가로서 일해왔습니다. 11년이라면 짧지 않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은행 계좌를 들여다보며 지난 11년의 평론가로서의 삶을 돌아보니 어떤 소회가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장은정 : 저는 이 작업을 하기 전에는 제 문학관과 비평관을 통해 저를 어떠어떠한 평론가라고 이해해왔습니다. 그런데 은행 계좌에 입금된 내역을 보면서 저의 자의식과는 별개로 현재의 한국 사회의 출판 산업 내에서 문학평론가에게 부여된 장소가 고정된 상태로 반복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11년 간 쓴 비평들의 총 매수와 원고료 총액을 계산해보니 1매당 오천원 정도였고, 월 평균 46만원을 벌었습니다. 이것은 제 삶의 조건일 뿐 제 가치를 매기는 것이 아닌데도 제가 매당 오천 원짜리 삶을 살았다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처한 경제적 조건과 제 삶이 갖는 의미를 구분하여 사유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만, 그것이 옳은 태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경제적 조건이 비평이라는 장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비평가로 하여금 어떠한 자의식을 갖게 하는지 그 관계를 더욱 면밀히 사유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 중입니다.

 

 
이영경 : 비평가의 역할이 ‘지식인-비평가’에서 ‘작가-평론가’로의 변화를 소영현 선생님의 말씀을 인용해 말씀하셨습니다. ‘작가-비평가’는 개별 작품을 꼼꼼히 읽고 해설하고 비평하는 평론가, ‘서평가로서의 평론가’에 가깝게 들리는데요, 제가 해석한 말이 맞을까요? ‘작가-비평가’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장은정 : 소영현 평론가는 ‘작가-평론가’의 기반이 황종연, 이광호, 김형중 평론가에게서 그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저는 이 기반이 2000년대에 이르러 신형철 평론가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에 발간된 그의 첫 평론집 서문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나에게 비평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는 일이다.” 대략 10년이 지난 2017년, 《문학동네》 인터뷰에서 권희철 평론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에게 비평은 작품에 대한, 작품에 의한 비평입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비평이 작품을 경유하지 않고는 세상의 비참과 폭력, 고통에 대해 ‘직접’ 발언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작가-비평가’ 모델에 근본적인 의심을 갖게 된 것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일부 남성평론가들이 페미니즘 비평을 쓰는 여성평론가들의 글을 비판하면서 비평가는 작품을 충실히 읽는 직업이지 그런 식의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부터입니다. 그 이후, ‘지식인-비평가’ 모델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기획에서 시작된 ‘작가-비평가’ 모델 역시 그 역사적 유효성이 끝났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이영경 :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문학 출판사에서 ‘젊은 평론가’들을 10년 정도 활용하고, 10년이 지나면 다음 세대의 평론가들에게 또 ‘젊은 평론가’의 역할을 부여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들이 ‘젊은 평론가’로서 여러가지 역할을 요구받고, 최근 유튜브 등 영상 콘텐츠까지 확대되면서 역할 또한 다양화되는 가운데 충분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젊은 평론가’로서 평론가의 경력에 얻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10여년의 ‘젊은 평론가’로서의 경력이, 현재 선생님의 앞으로 평론가로서의 경력을 만들어 나가는데 어떤 연결점이나 커리어로 작용하는지 궁금합니다.

 

장은정 : 저의 11년의 경력 중 ‘젊은 평론가’로서의 경력은 5~6년 정도입니다. 7년 차 쯤, 90년대생 평론가들이 유입되면서 짧은 리뷰 지면 청탁 대신 대체로 긴 분량의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제가 기성 평론가로 분류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5~6년간의 ‘젊은 평론가’로서의 경력을 통해 제가 얻게 된 것은 출판 산업이 신간이 출간되는 속도에 맞춰 ‘젊은 평론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그 구조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번 《자음과모음》(2020년 봄호)에 발표한 「지나간 미래」는 그 이해를 역으로 활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출판계에서 비평의 입지는 점점 더 좁아질 것으로 보이고, 만약 제가 앞으로도 이곳에서 경력을 쌓아나간다면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아직은 예상하기 힘듭니다. 

 


이영경 : 젊은 평론가들이 ‘과분하게 주어지는 큰 기회’라 받아들여 제대로 된 청탁서나 보상 없이 ‘인정’을 위해 일하고 10년이 지나면(물론 교체 주기는 다른 업종에 비해 깁니다만), 다른 ‘젊은 평론가’들에게 자리를 넘겨주는 점을 지적하셨습니다. 어찌보면 이는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 상황 같기도 한데요. 정당한 보수 없이 스펙 쌓기나 ‘기회’를 위해 일하고, 안정적인 직업이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측면 말이죠. 예를 들어 인턴 같은 제도가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장은정 : 동의합니다. 이번 이상문학상 사태 속에서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가 발표한 성명서에는 출판계에서는 외주노동자 뿐 아니라 재직 중인 출판노동자에게조차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으며, 10년 넘는 경력을 쌓고도 아웃소싱의 영역으로 내몰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번 이상문학상 사태에서 언론노조의 성명서가 나왔을 때 가장 반가웠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의 구체적인 발화 없이는 (한국출판인회의의 입장문에서 목격할 수 있는 바와 같이)창작자와 출판사라는 대립구도로 단순하게 이해되기 쉽고 그 과정에서 출판노동자들이 처한 노동환경이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학평론가’가 처해있는 이 특수한 노동환경이 ‘문학출판계’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문학출판계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처해있는 상황들이 더욱 입체적으로 가시화되어 어떤 연결점으로 맞물려 있는지 ‘공적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영경 :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 2015~2017년 문학잡지 혁신호,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폭로, 2017년 최영미 시인 미투, 2020년 1월 이상문학상 저작권 문제를 경험하면서 평론가로서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각각의 사건을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평론가님 개인에게, 또 문단 제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시는지요.

 

장은정 : 우선 저는 이 사건들이 문단 제도 전체에 끼친 영향을 조망할 만한 안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 경험적 범주와 비평관을 통해 답변하고자 합니다. 저는 최근 다른 지면에서 이 사건들을 기존 문학출판계를 향한 ‘질문하기’의 역사라는 점에서 하나의 큰 흐름으로 묶은 바 있습니다. 이 시기와 제가 기성평론가로 분류되기 시작한 시점이 맞물려 저는 각 사건들에 대해 여러 번 발화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발표한 글들은 이전의 글들과 확연한 차이를 갖고 있습니다. 그전의 글들이 특정한 작품이나 작가가 갖는 문학적 가치를 부여하는데 지면을 할애했다면, 이 시기는 위 사건들의 발생 구조를 분석하는 것에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합니다. 즉 저는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매체 비평, 제도 비평 쪽으로 관심사가 이동하여 일종의 ‘작가 중심주의’에서 이탈하게 되었습니다. 신경숙 표절 사태는 문예지 혁신의 계기가 되었지만, 그때 문학계가 꿈꾼 ‘혁신’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출판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에 참여한 피해자들 대다수가 가해자들로부터 역고소를 당했고 길고 고통스러웠던 재판 결과가 하나둘씩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론화조차 되지 못한 피해사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은 문단 제도 전체에 끼친 영향보다는 문학출판계를 이루는 구성원들 각각에게 이 시간들이 어떤 경험으로 남아있는지, 그때 고려되지 못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영경 : 이상문학상 사태,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저작권 소송 패소 등으로 저작권 등 작가 권리에 대한 광범위한 문제제기가 있었습니다. 예전에 비해 작가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는 등의 변화로 문학상, 출판시 작가들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되는 사례가 있기도 한데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 알 수 없는 곳, 규모가 작은 출판사의 경우는 이런 부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문학 출판계가 작가들의 저작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장은정 : 얼마 전, 우롱센텐스의 주최로 〈예술인을 위한 권익 보호 워크숍〉이 열렸고 2월 19일에 ‘계약 및 저작권’에 대한 세미나가 진행된 바 있습니다. 현실을 이야기하자면, 이번 이상문학상 사태를 계기로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권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여러 교육들을 필요로 하는 시기라고 판단됩니다. 사실 ‘작가들’이라고 묶어서 이야기하지만 장르별로 처한 상황이 워낙 다릅니다. 제가 입금내역을 기반으로 출판산업의 구조에 대해 서술한 글을 시인이나 소설가 친구들에게 먼저 보여줬을 때, 평론가들이 이러한 시스템 속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작가가 갖는 노동권리 문제는 장르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특수성을 고려해가면서 앞으로 더욱 본격적으로 이야기해나가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영경 : 페미니즘 비평 아카이브(↘링크)를 운영하고 계신대요, 이런 시도 또한 ‘평론가로서의 역할 재정립’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아카이브 작업의 의미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지 계획이 있으신가요.

 

장은정 : 2016년 10월의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SNS의 특성과 언론사의 보도 형태, 문학잡지에서의 특수한 비평적 접근 방식, 한국사회 내 페미니즘의 흐름 등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 복합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각자 사용하는 매체가 달라 이 사건들을 기억하고 경험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서로 다른 기억과 경험들이 동일한 시간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으며, 서로 다른 데이터를 한 번에 모아볼 수 있는 페이지가 있다면 ‘공동 시간’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 아카이빙 페이지는 1. 언론사 보도 기사 2. 문학잡지 관련 기획 3. 관련 행사들의 자료집 4. 당시 출간된 페미니즘 신간 서적의 목록 등으로 구성됩니다. 이는 제게 파편적으로 흩어진 데이터들을 일정한 년도와 월에 모아 ‘동시대’를 데이터로 재구성하는 적극적인 비평적 개입입니다. 또한 이 시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 시간을 어떻게 기록하여 남길 것인가’에 대한 제 방식의 대답이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문학평론가’로서 출판사로부터 청탁받은 원고를 작성하는 것에 골몰했다면, 이제는 ‘비평적 행위’가 앞서고 글쓰기는 그러한 비평적 행위의 한 요소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아카이빙 팀 ‘모월모일’ 멤버로서, 아직 완성되지 않은 2017년 이후의 폴더들을 데이터로 채우는 일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이영경 : 이전에 ‘작가연대 총파업’이란 글(↘링크)을 쓰신 적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도 작가들의 노동조합 결성, 단결권과 단체행동권 등 행사를 통해 원고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회 계류중인 예술인권리보장법이 예술인의 단결권을 가능하도록 하고 있지만, 국회의 태업으로 법 통과가 요원한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예술인 협동조합 등 결성을 염두에 두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장은정 :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여성예술인연합이 오래 천착해온 작업으로서 예술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의 성과 중 하나입니다. 문학계에서는 이성미 시인께서 여성예술인연합의 멤버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적 토대의 마련은 당연히 필요하며 아주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데 문학출판계에서 이러한 법적 토대를 기반으로 조직이 만들어진다면 그 특수성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1월, 문학웹진 《비유》와 《문학3》이 공동 기획한 행사 〈내/일을 위한 시간〉(↘링크)을 통해 ‘만일 협동조합이 생긴다면 우리의 글쓰기 환경엔 어떤 변화가 생길까?’라는 질문을 던져본 바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행사 참여자분들의 의견들 중, 협동조합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등단제도에 의한 위계가 작동할 것이고 모이는 일이 오히려 서로를 낙인찍고 소외시키는 일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이런 의견들을 경청하면서, 조직을 만들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그동안 문학출판계에서 작동해오던 다양한 방식의 위계를 해체하는 방식이 되지 않는다면 어렵게 단체를 이룬다고 하더라도 지속되기 어렵다고 생각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할 생각입니다.

 

이영경 : 현재 독립 문예 잡지가 많이 등장하고 있고, 구독자를 직접 모집하는 작가, 작가들이 만든 새로운 유료 플랫폼 등 기존의 문학제도를 벗어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흐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은정 : 독립문예 잡지는 독자와 작가 사이의 만남을 다르게 촉발하며 문학이라는 장르를 재정의하고 다양하게 향유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2016년 초부터 시작된 펀딩 시스템을 통한 소위 제1세대 독립 문예잡지들은 휴간 혹은 폐간 상태입니다. 이는 2~3년 이상 지속하기 힘든 독립출판 생태계를 보여준다고 판단됩니다. 그들이 잡지의 발행을 중단하게 된 과정에 대해 경청하는 담론이 있어야 경험이 축적되어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일종의 각개전투로서 각자 고립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구독자를 직접 모집하는 작가들 역시 이제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기획하고 모집하고 발송하는 등 일종의 개인사업자로서 활동한다는 점에서 글쓰기 이외의 업무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피로감이 있으리라 추측됩니다. 저는 현재 2세대로 분류될 수 있을 《모티프》, 《토이박스》, 《be:lit》, 《Noizy》, 온라인 플랫폼 "s-r-s" 뿐 아니라 소곡출판사의 시씰팀, 유후팀의 활동, 얼마 전 오픈한 웹진 《던전》 등, 이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이들은 주로 20~30대 청년들이며 독립출판 생태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그에 대한 섬세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또한 비평계에서도 제도 내에서 승인된 작가들에 대한 작품론만을 반복하여 생산하기보다는 문학출판계의 구조 중 하나인 독립출판 생태계에 관심을 갖고 이들의 시도가 지속될 수 있는 비평 담론을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영경 : 다양한 작가군의 발굴, 작가 권리 확장 등 기존 문단의 문제점을 벗어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장은정 : 저는 2019년 10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였는가?〉포럼(↘링크) 에서 문학출판계에서 여러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그 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주로 대형출판사들이 지목되었을 뿐, 공공기관의 역할에 대한 요구는 거의 무관심에 가까웠다는 현상에 주목하여 그 원인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문단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은 ‘등단제도’의 악용, 예술고에서의 ‘입시제도’, 예술대학에서의 사제관계, 사설 문학창작 수업 내에서의 위계관계에 이르기까지 문학계가 끝없는 경쟁시스템과 그로 비롯된 위계관계로 촘촘히 엮여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공공기관의 문학사업 기금은 이미 출판산업 내에 진입한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원 배분의 역할에 그침으로써 출판 산업 생태계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기능하고 있을 뿐이기에 누구도 문학계 문제해결의 주체로 상정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인복지재단, 서울문화재단 등 여러 공공기관이 문학출판계의 구조를 면밀히 살피고 문학이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장기적 안목으로 생태계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공적자금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영경 : ‘직업으로서 평론가’가 유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셨나요?

 

장은정 : 현재로서는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이영경 : 등단 11년, ‘젊은 평론가’ 시기 이후 평론가로서의 전망은 어떻게 찾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30년 후에 평론가들은 어떤 역할을 하리라 생각하시는지요.

 

장은정 : 비평 전문 잡지를 내세운 《크릿터》의 목차를 보면 ‘리뷰’ 지면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목차는 ‘작가-비평가’ 시대의 ‘비평’이란 결국 ‘서평’ 기능을 수행하는 장르에 불과함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저는 비평이 서평 역할 이상의 일들을 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평론가’ 시절의 저는 각각의 문학작품 속에 들어있는 가장 빛나는 것을 꺼내어 독자에게 보여주는 일을 잘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이제는 작품 한편을 하나의 톱니바퀴로 여기고 어떤 작품을 세상의 어디에 배치하여 어떻게 다르게 작품을 작동하게 할 것인지를 고민 중입니다. 그런 점에서 2019년 〈더 스크랩〉의 행보는 현재 제가 지향하는 비평적 행위에 가장 가깝습니다. 사진이라는 장르의 특수성을 활용하여 홍콩 시위에 독창적 방식으로 연대하는 일을 목격하면서, 비평적 중심점이 이제는 예술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위치’로 이동해야 하며, 향유자의 향유 방식을 어떻게 다르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비평적 개입이 2020년 현재 예술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비평가들의 고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0년 후의 평론가들은, 지금 비평가들이 무엇을 비평의 역할로 정립하느냐에 따라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영역이 달라질 것입니다.

 

(2020년 3월)

 

 


오랜 시간, 여행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여행해왔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자신도 모르는 것에 대해 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겠노라고 쉽게 약속했던 것은 쓰는 동안 알지 못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만 몇 개의 기억들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타이베이를 벗어나 중부 지역인 타이중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은 아리산을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예약해놓은 숙소는 아리산 해발 1200m 위치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구불거리는 산길을 한참 올라야 해서 아주 피로해진 상태였다. 장거리를 이동해야 했으므로 숙소에 온 것만으로 하루가 모두 가버려서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숙소의 부엌을 둘러보다 마을을 소개해둔 지도를 발견했다. 지도 한 귀퉁이에 ‘firefly trail’이라고 써져 있었다. 조금 더 어두워지면 반딧불이를 보러 여길 가볼까 싶었는데, 안전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숙소에 묵는 다른 게스트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들도 가보지 않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며 흥미를 보였다.

 

저녁 아홉시 쯤 지도 한 장을 접어 주머니에 넣은 채로 숙소를 나섰다. 산골 마을답게 상점들은 당연히 모두 문을 닫았고 가정집들에서 드문드문 불빛이 흘러나왔다. 가로등이 밝게 켜져 있어 ‘firefly trail’의 입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그 입구에서 돌아 나오는 한 가족이 있었다. 각각 다섯 살, 여덟 살 쯤 되어 보이는 두 남자아이를 한 명씩 안고 있는 부부는 한 손에는 내가 가진 것과 같은 지도를, 다른 한 손에는 손전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반딧불이를 보았느냐고 물어보니 길이 너무 어두워 몇 걸음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핸드폰 플래쉬 불빛에 의지해서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아마도 이 작은 산골마을 사람들은 이 길을 처음 만든 이후로 전혀 관리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서히 길 위로 울창한 식물들이 뒤덮어가고 있었고 이러다가는 돌아오는 길을 잃겠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나서 왔던 길을 되짚어 나왔다. 반딧불이를 반드시 봐야겠다는 집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숙소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지도를 다시 살펴보니 길이 하나 더 있었다. 

 

새로운 입구를 찾았을 때의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기억한다. 아리산의 그 울창한 열대 나무들로 빼곡한, 그야말로 ‘밤의 숲’이었다. 빛이라곤 저 멀리 마을의 마지막 가로등 빛과 내가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 불빛이 전부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토록 완벽한 어둠은 처음이었다. 이제 나는 반딧불이의 빛이 아니라 숲의 어둠에 홀린 기분으로 한발 한발 숲 속을 걸어 들어갔다. 가로등 불빛이 더 이상 도달하지 않기에 사방이 가늠할 수 없는 어둠으로 가득 찼을 때에야 내가 아주 위험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이토록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생생한 어둠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여기까지 왔는데도 반딧불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그러나 밤의 숲에 완전히 매혹된 상태였으므로 나는 잠시 핸드폰 불을 껐다. 완전한 어둠을 경험하고 싶었고, 이 깊은 숲속에서 올려다보는 별빛이 찬란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은은히 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반딧불이로 가득한 숲속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 연한 빛들이 핸드폰의 차갑고 선명한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하늘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빛났다. 순식간에 빛으로 가득한, 밤의 숲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길 위에 조용히 앉아 점멸하는 반딧불이의 빛들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왜 반딧불이의 빛에 매혹되는 것일까? 연약함 때문일까. 

 

숙소로 돌아와 불을 끄고 반듯하게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다른 나라의 산 속에서 반딧불이를 보고 돌아와 낯선 방에서 잠을 청하는 나 자신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하는 기분이 들었고,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밤의 숲속에서의 경험이 꿈처럼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무서운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 그토록 아름다운 경험 이후에 어째서 이런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타이베이에서 묵기로 했던 숙소는 시내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는 조용한 주택가의 한 가정집이었다. 호스트는 자신을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초행길이라 헤맬지도 모를 나를 위해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숙소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동네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집에서 십분 정도 걸어 나갔더니 상점가와 시장이 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카페와 음식점들을, 집 근처의 저렴한 마트를, 집 근처의 공원을 가는 방법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여행이 아니라 이사 온 느낌이 들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안내를 받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오늘은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시립미술관에 갈 것이라고 대답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미술관이 문을 닫을 무렵에야 깨어났다. 호스트는 외출하고 없었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고 이른 아침 비행기를 놓칠까 싶어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쌓였던 피로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때의 적막을 기억한다. 처음 도착한 낯선 작은 방에서 꿈도 없는 깊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 텅 빈 집에 혼자 앉아 있는 동안 공간을 가득 채우던 깨끗한 적막을. 그것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건 서울의 작은 내 방에서도, 일상 속에서 자주 경험하는 감각이었으므로. 어쩌면 그 평범함 때문에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일지 모르겠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고, 어딜 가도 그저 나는 나인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굳은 채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열어둔 방문으로 함께 사는 고양이 미미가 들어왔다. 내 캐리어 곳곳을 꼼꼼하게 냄새 맡는 것을 보고 카메라를 꺼내 미미를 찍으며 웃었다. 그제야 나는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날 저녁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정수리에 얼음물을 부은 것처럼 일시에 모든 감각이 깨어나던 그 깨끗한 적막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빛으로 가득하던 밤의 숲을 보고 돌아와 잠들기 위해 누워 있었을 때 경험했던 감각과 비슷했다. 내게 있어서 모든 경험의 중핵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무의미가 존재하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극대화하는 일에 가까운 것 같다. 반딧불이의 수명은 이 주 정도라고 한다. 대만에 이 주 가량 있었으므로 나의 여행 기간이 어느 반딧불이에게는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는 전체의 일생이었을 것이다. 아리산은 천년 넘게 산 고목들로 가득했다.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린 채 천년을 살아온 나무들이 가득한 숲속에서 나의 삶은 반딧불이의 삶처럼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우주 전체의 시간에 비교한다면 나와 반딧불이, 아리산의 고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넘었다. 벌써 드문드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겪은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연약한 빛과 깨끗한 적막에 대해 썼고, 이 또한 공정하게 잊힐 것이다. 그뿐이다. 

 

(시인동네, 2017년 7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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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것

장은정

 


어떤 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묻는다. 그것도 아주 직접적으로. 그때 시는 ‘삶’으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당연하게도 삶은 나 자신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아서 김이듬의 『말할 수 없는 애인』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다. 전화를 걸어와선 “눈이 와, 여긴 함박눈이야”(「함박눈」)라고 말하는 ‘너’에서부터 “인도 아프리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학생들”(「말할 수 없는 애인」)도 있고, “미끄러운 언덕” 위에 있는 “오두막집의 삐걱거리는 문”을 열어야 만날 수 있는 “여태껏 보아왔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늙고 커다랗고 비만한 남자”도(「호수의 백일몽」) 있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첫눈을 맞아본 “쿠바에서 온 소녀”(「기적」)와 “7, 8년 만”에 동행한 “백발의 신사”도(「백발의 신사」) 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 시들은 그들에 ‘대해’ 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언제나 화자와 함께 있다. 함께 대화하고 함께 눈을 맞고 함께 통화한다. 그래서 그들에 ‘대한’ 시가 아니라 그들‘과의’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일어나는 일들로 가득해서, 어쩐지 김이듬의 시는 ‘텍스트’라고 말하기가 망설여진다. 화자와 시인을 혼동하게 하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이듬의 시를 읽고 있으면 어쩐지 그녀의 ‘생활’에 동참하게 된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때로 그 생활은 예전에 좋아했던 남자와 그의 딸을 만나는 일이어서 함께 새로운 감회를 경험하기도 하고(「겨울 휴관」), 반년 넘게 비어있던 앞집에 누군가가 새로 이사 온다는 사실을 알고 먼저 도착한 이삿짐 속의 책 제목을 흘깃거리는 일처럼(「파도」) 두근거리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일상에 내재해있는, 우리도 한번쯤은 경험해봤음직한 감정들은 김이듬의 시에선 고스란히 ‘시적인 것’이 된다.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일화들이 있다. 가령 화자에게 “한국말을 배우던 베트남 여자가 도망”친 일 같은 것들, 결국 “나의 베트남 친구”가 “추방”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자살」). 이런 일화들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히 ‘사적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일화에서 더욱 치열한 자기인식의 문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음악도 독서도 나를 방해하지 않고/철거반도 폭격도 내 식사를 망치지 않는다”(「나는 세상을 믿는다」)는 그러한 자기인식에 의해 가능한 문장이다. 여기에는 ‘나는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음악과 독서는 언제나 ‘즐기는’ 것으로 기능하고 결코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 철거반에 대한 기사를 보며 분노할 수도,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쏟아지는 폭격에 비장해지기도 하지만 그것들은 “내 식사를 망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내가 지금 “평범한 기쁨”과 “엄청난 사태로부터도” “떠나 있는 것”임을(「함박눈」) 알게 해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멍청이 정신병자로 분류되지 않으려면/의심 속에서 처참한 현장을 목격해야 한다” “휴전 지대에서의 생존은 몇 편의 어이없는 영화를 더 보는 것”이기 때문에 “자살을 지연하는 용기와 인내심을” 가져야한다.(「자살」)

 

이러한 자기인식에 기반한 가치관은 김이듬의 시적 가치관과 직결되어 있다. 그에겐 일반적인 ‘시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것에 대한 의심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문학적인 선언문」의 “나는 내가 시적이지 않은 시를 쓰며/시인답지 못하게 살다/문학적이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되길 빈다”는 구절이나 「죽지 않는 시인들의 사회」의 “연애는 없고 사랑만 있다/중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조용히 그리고 매우 빠르게/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했다”는 구절이 그러하다. 예술적 자율성을 파괴하고 삶으로 뛰어들 것! 이것은 아방가르드의 오래된 태도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저 구절들을 맥락 그대로 해석하는 일은 위험한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이듬의 시들은 충분히 시적이기 때문에. 그러니 가장 중요한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김이듬에게 ‘시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축하해
잘해봐
이 소리가 비난으로 들리지 않을 때

누군가 꽃다발을 묶을 때
천천히 풀 때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을 때
그랬다 해도 내가 듣지 못할 때

나는 길을 걸었다
철저히 보호되는 구역이었고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해놓은 길이었다

 

―「꽃다발」 전문

 


좋은 일이 생긴 모양이다. 축하한다는 말과 잘해보라는 말들을 듣는다. 그 말이 어쩐 일인지 비난으로 들리지 않아서 그 좋은 일에 흠뻑 젖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천천히 꽃다발을 묶고 천천히 푸는 것과 같이 차분해서, 그 시간만큼은 “아무도 비명을 지르거나 울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듣지 못한다. 조용한 곳, 조용한 시간. 그런데 흔치않은 이 시간은 지나치게 너무 조용하다. 여기는 어디일까. 사실 그곳은 “철저히 보호되는 구역이었고 짐승들 다니라고 조성해놓은 길이었다”. 이 시를 다 읽으면 어김없이 몰려드는 이 이상한 기분의 정체는 이것이다. 「꽃다발」은 아주 기쁜 순간, 그 기쁨의 조용한 순간을 시적으로 구축한다. 하지만 마지막 연은 바로 그 시간이 어떤 극도의 배제를 통해 만들어진 것임을 서늘하게 일러주고 있다. 그래서일 것이다. 시를 다 읽고 나면 어딘가 갇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이 시는 김이듬의 이번 시집 『말할 수 없는 애인』에서 김이듬의 ‘시적인 것’을 가장 응축하여 뛰어나게 보여준다. 아름다운 것을 충분히 감응하게 한 후 그 아름다운 것의 잔인함을 드러낼 것.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것은 이러한 시적인 것을 만드는 원동력이 시에 대한 불신에서 온다는 점이다. 가령 이런 구절은 어떠한가. “절박하다는 건 뭔가 나는 시를 안 썼어도 목매달지 않았을 것이다 난 나를 저주하지 않으며 내 시는 볼펜으로 그린 내 손목시계처럼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나는 속없이 다정하고 인생은 덥다”(「오빠가 왔다」). 뒤표지 글도 일관적이다. “2, 3년 쓰다 말려고 했는데 이래저래 세 번째 시집을 묶는다. 이렇게 된 데는 시를 향한 열렬한 사랑이나 의지 같은 거보다는 그것들을 상실하고 상실해가려는 내 육신이 있었을 뿐.” 우리는 시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려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김이듬의 시는 자신을 부정하는 힘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사실 삶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힘이다. 그래서 김이듬은 이렇게 쓴다. “내가 말할 수 없는 것을 끝내 내가 말하지 못할 때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끝내 쓰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들은 후에 그것에 대해 자세히 말하지 않는 일이다. 가령 「여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같은 시는 그저 읽을 수 있을 뿐, 그에 대해 따로 말을 덧붙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_ 《애지》 2011년 여름호 발표. 

 

 

 

남아있는 한 조각

장은정

 


하루 중에서 박형준의 시에 가장 어울리는 시간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해가 지는 무렵일 것이다. 붉음과 어둠이 불길하게 뒤섞이는 이 시간에 대해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있다』에서 그는 이미 단 한 줄로 시를 쓴 적이 있다. “알 속에서 이미 날개를 편 새”(「저녁 노을」). 그 시간을 지나 찾아오는 밤은 “날아다니는 동물”과도 같아서 어린 화자는 석유를 먹고 온 몸에 물집이 잡혔다. 아버지가 아이를 안고 강가로 달리던 장면은 여전히 쉽게 잊히지 않는다(「백열등이 켜진 빈집」). 그래서 그 동안 박형준의 시를 함께 읽어온 독자라면 이번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의 첫 시를 보고 어딘가 울컥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왜냐하면 아이를 안고 달리던 그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불길한 색감으로 묘사되었던 “저녁 노을”은 이제 “아버지 삼우제 끝나고/식구들, 산소에 앉아 밥을” 먹을 때 바라보는 “황혼”이 되어있다. 그 어둑한 빛에서 화자는 “창호지 안쪽에 배어든/초롱불”을 보고 “아버지가 삐걱 문을 열고 나올 것 같다”고 쓴다. 이제 해가 질 무렵의 시간은 이미지 자체라기보다 더욱 기억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변화는 제 1부 “아버지의 죽음에 바치는 노래”에서 시론으로 더욱 확장되고 있다. 시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를 가만가만 손가락으로 조용히 짚어간다. 거슬러 오는 동시에 미리 앞질러 가보는 것. 그래서 이 시들은 단순히 ‘애도가’가 아니며 ‘죽음에 관한 시들’이라고도 정리되지 않는다. 아버지는 생을 통과한 후에 비로소 죽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빗속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주던 밀가루 떡의 냄새를 맡거나(「별식(別食)」젊은 아버지의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보는(「꼬리조팝나무」) 시들은 아버지의 죽음이라기보다 삶에 가깝다. 이렇듯 시를 통해 아버지의 삶을 반추해보던 화자는 깨닫게 된다. 그의 삶이 “침묵”(「시집」)이었음을. 그 침묵의 삶은 아들이 쓰는 시를 “글씨”라고 부르곤 했었다(「가을밤 귀뚜라미 울음」). 그래서 “아버지 돌아가신 날/새 시집이 나왔다”는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침묵이 바람처럼 잦아든 후에야 시가 시작되는 것. 언어 이전에 삶이 있다는, 겸손하고 오래된 믿음은 “너는 삶 대신 이미지를 택했다.”(「서커스」)고 지적한다. 시인이 직접 뒤표지 글에서 자신의 시를 “기억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는 부재의 이미지”라고 쓴 것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기반에 두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읽어온 박형준의 시가 삶과 죽음이 기묘하게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색상이었다면, 이제 이 색은 삶을 잃은 이미지로 의미화 된다. 「당신의 팔」이 대표적이다. “당신의 팔 속에서/강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는 1연의 서정적 진술은 “사람이 사랑을/사랑이 사람을/못 믿고/사랑을 사람이 두고/못 믿”는다는 인식에 이른다. 그 때문에 “당신의 팔”은 “정육점 같은 팔”로서 일종의 고깃덩어리로, “강물”은 “고기 같은 강물”로 명명되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나는 언제나/당신의 팔에서 타인을 사랑”하고 “언제나 당신의 팔 속에서 죽”고 만다. 이미 “인간의 언어”를 알아버린 시인에게 아버지와 같은 “침묵의 삶”은 허락되지 않기에 언어는 삶에 가닿을 수 없고 시는 “가만히 펼쳐진 채 묘혈처럼 깊”어지는 것(「시집」)이다. 

 

삶이 제거된 이미지로서 이번 시집에 자주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빛’이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이 태양의 빛이 아니라는 점이다.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 빛이 내릴 때」) 내리는 빛이기에, “희한하게 빗속에서” 떠다니는 “빛들”에(「여우비」) 가깝다고나 할까. 본래 빛은 로고스로서의 진리를 상징해왔다. 하지만 박형준의 이번 시집에서 ‘빛’은 삶을 잃고 이미지로 존재하는 병든 빛에 가깝다. 「저녁 빛」에서는 그 동안 그의 시에서 중심을 이루는 저녁이라는 시간이 ‘빛’으로 형상화되면서 이미지로서의 저녁으로 고조되고 있다. 이때의 저녁은 “사물 속에 빛나는 고통”과도 같아서 노을은 “부드러운 상처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별들로/또 하나의 성좌를 이룬다”. “수평선의 빛”은 이제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빛이 고통인 이유는 분명하다. 그것은 부재의 이미지이므로 더욱 간절히 ‘있음’을 요구하고, 그러한 요구 속에서 지금의 ‘없음’을 더욱 확연하게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빛을 “남은 빛”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그것은 삶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이 된다. 이것은 결여의 이름이 아니라 삶의 아주 작은 조각의 이름인 것이다. 제 1부 <아버지의 죽음에 바치는 노래>로부터 시작한 박형준의 시가 제 3부 <남은 빛>에 이르러 그 언어에 관한 자의식이 점차 더욱 섬세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다.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삶의 한 조각이 언어라면, 그것은 당연히 “침묵으로 남은 빛”일 것이고 ‘침묵’인 삶을 쓸 수 있는 마지막 가능성일 것. 다만 그 가능성은 “너의 눈과 나의 눈에서 흐르는/눈물”로써만 피어나는 “꽃”과도 같다.

 

시적 언어에 관한 이러한 자의식 속에서 읽을 때, 표제시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는 더욱 크게 울린다. 이 시는 우선 가난했던 한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과나무의 꼭대기”만 보이는 지하방에 사는 한 젊은이와 작은 열매처럼 찾아온 사랑. 맨방바닥에서 나누던 사랑 끝에 낙과처럼 그녀가 떠났고 젊은이는 그녀를 기다리며 꽃무늬 요를 가만히 접어놓는다. 마침내 다시 그녀가 돌아왔을 때에야 지하방엔 꽃이 활짝 피어나는데, 마지막 연 “사과나무의 꼭대기,/생각날 때에만 울었다”를 읽고 나면 그녀가 이젠 영영 떠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녀가 우리가 끝내 잃어버린 ‘침묵의 삶’이라면, 사과나무 꼭대기야말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빛”은 아닐까. “생각날 때마다 울”수 있는 것은 아직 “사과나무 꼭대기,”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_《문학과사회》 2011년 가을호 발표.

 

 

 

알지 못하는 것들

장은정



유희경의 『오늘 아침 단어』에서 쉽게 마주칠 수 있는 것은 가장 개별적인 차원의 시적 감정에 관한 시들일 것이다. 가령 티셔츠에 목을 넣는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 순간은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가장 개별적인 시간이다. 그야말로 화자만이 겪는, 완전히 밀폐된 순간. 이런 순간을 시로 쓴다는 것은 예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하더라도, 시를 당장 ‘여기 지금’으로 만들어 놓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개별적인 것이라 해도 1인칭의 그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시시각각 모양이 달라지는 것이어서 스스로에게 차오르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1인칭 내부에 북적이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감정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속으로 내리는」은 바로 이 이질적 감정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순간을 잘 보여주는 시편이다. “원망하는 시간”과 “그만 갔으면 좋겠다가도 멈출까 봐 두려운 시간”, “너인 시간”이며 “네가 아닌 시간”인 동시에 “너를 생각하는 나도 아닌 시간”이 모두 함께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시집에서 풀어놓는 마음의 결을 세세하게 엿듣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을 가만히 짐작해보고 있는 이 시간이 어째서 도래하게 된 것인지를 생각하는 편이 더욱 흥미로운 것 같다. 「K」는 그 과정을 역추적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시편이다. 백발의 K는 창가에 서 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쳤음에도, 물러서거나 시선을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창밖에는 바람이 앞에서 뒤로, 쓰러질 것처럼 불고 있었다.” 창을 사이에 두고 K와 나는 서로 다른 공간에 있다는 점에서 분리된 동시에 서로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볼 수 없는 것과도 같다. “K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게 나를 미치게 만든다.” 그를 바라볼수록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지금 자신이 바라보는 것은 “K를 생각하는 태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타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반응의 바깥”에 위치해 있다. “그는 수천의 나비가 만들어낸 사람”인 것. 그렇게 타자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더더욱 알 수 없는 ‘우리’를 만들어낸다.

 

「K」가 닿을 수 없는 ‘너’에 관한 시였다면, 「내일, 내일」은 ‘우리’에 관한 시다. 둘은 “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말없이,” 마주 앉아 있다. 그들은 “서로의 눈썹을 향하여 손가락을, 이마를, 흐트러져 뚜렷해지지 않는 그림자를, 나란히 놓아둔 채 흐르는” 중이다. “오른쪽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궤적」 역시 “나와 다른 한 명이 나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구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둘은 어떤 대화를 나누었지만 사실 “각각 무슨 말을 했는데 중요한 건 아니었다.” 그야말로 “어쩌면 구름은, 그냥 보이는 것이”니까. 곧 다른 한명이 나무의자에서 떠나고 나만 홀로 남아 있는 것으로 시는 끝난다. 이 우리에 관한 시편들의 방향은 모두 동일하다. 타자로 향한 마음들은 창가처럼 단단한 유리에 부딪히고 그 유리가 유리 너머를 더욱 상상하게 만든다. 그 상상하는 마음들은 다시 ‘나’에게로 되돌아온다. 결국 끝없이 자기 자신으로 환원되는 것. 여기에는 어떤 깊은 무기력이 존재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무기력이 북적이던 모든 감정을 의심하는 순간에 다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深情」이 대표적이다. 누군가가 “나를 물속으로 던졌다”는 진술 뒤에 의심이 따라붙는다. 어쩌면 그가 나를 물속에 던진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의심이 아니라, “물은 우리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나는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감정에 대한 비유로 읽히는 ‘물’에 대한 의심이 인상적인 것은 이것이 그의 시 전반에 대한 의심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3연을 보자. “나는 물 아래로 흘러갔다/그때 나는 얼굴이 없었다/얼굴이 없어 눈물도 없었다/표정은 우리의 오해일지도 모른다”. 물에 대한 의심은 얼굴과 눈물, 표정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의심은 모든 감정을 흘러가게 하고 굳어가는 자세만을 남겨놓는다. “파쇄된 리듬처럼 굳어버”리게 되는 것. 

 

물론 이러한 슬픔들, 무기력들, 의심은 관계의 불가능성에서 기인하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근원적인 기원을 따라가자면, 어쩌면 이 시집에 실린 모든 시가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없어진 나날보다/있었던 나날이 더 슬”픈 것(「텅 빈 액자」)이다. 그의 시는 “택시에서 내려 문을 닫고 오늘 닫은 몇 번째 문인지 곰곰이 생각”하는 것에 가깝다. “문 뒤에는 또 문이 있고 문 뒤의 당신은 아직도 깜깜”한 것(「부드러운 그늘」)이다. 그렇게 일어난 일들의 문을 열어보고, 또 열어보면 또 다른 문이 나온다. 마지막 문은 「면목동」이다. 아내와 남편이 있다. 아내는 소주를 마시고 내내 울고 있고, 남편은 아내를 업고 대문을 나선다. 남편은 아내가 왜 울었는지 모른다. 유희경 시가 대부분 타자에 대해 그저 짐작만 하듯, 남편 역시 “미끄러지는 아내를 추스르며 빈 병이 되었다”. 이 연인 사이에서 조용히 ‘나’가 등장한다. “거기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건 남편과 아내 뿐이었다 마음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이렇게 유희경 시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했던 것이다. 이렇게 마지막 시편까지 읽고 나면 이 시집이 일렁이는 마음들이 처음 생겨난 기원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내 안에서 흔들리는 마음조차 알 수 없는 이유는 가장 최초부터 우리의 존재는 아무도 모르는 순간 생겨났던 것. 시는 그 모르는 것들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_《시와 사상》 2011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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