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저수지 근처에서였다.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다가 우리는 싸웠다. 나는 절박했다. 그는 그 절박함에 목 졸리고 있었다. 내가 한 마디를 더 보탤수록 우리는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보태고 보탰다. 바닥을 보며 듣고 있던 그가 날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할 수만 있다면 가위로 내 입을 오려내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어쩐지 그 증오가 묘하게 평화로워보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몇 마디를 더 보탰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다가 뚜벅뚜벅 나를 지나쳤다.


혼자 남겨진 것 치고는 너무 환하고 밝았다. 나는 그의 사라져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를까 말까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비참함과 후련함이 뒤섞여서 망설이다보니 너무 멀어져버렸다. 비행기가 지나간 후 하늘에 구름들이 선을 그리듯이, 그가 지나간 긴 자국을 눈으로 오래 더듬었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조금 울었다. 한껏 몰입해서 슬퍼하고 싶었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내 울음이 스스로에게 어색해졌다. 

 

긴장이 풀리자 온 몸이 나른해졌다. 적당히 바람이 불어서 눈물이 금방 말랐다. 건성 피부여서 얼굴에 눈물이 흐른 자국이 당겼다. 가방에서 로션을 꺼내 발랐다. 여전히 저수지의 수면은 평온했다. 햇살을 반사하고 있어 반짝거렸고 예뻤다. 날씨는 따뜻했고 약간 졸렸다.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안전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의 따뜻한 온도와 나른한 기분, 그 평온하던 수면과 반짝임. 마침내 어긋나는 순간, 어긋남이 자명해지는 순간의 투명함. 활과 과녁 사이. 날카롭게 공중을 가르며 떠 있는, 포물선을 그리는 화살의 시간. 거절과 외면 후에 잽싸게 따라붙는 시간들이 절망과 괴로움이 아니라 평온함이라니. 이 역설 속에서 나는 어리둥절하다. (2009)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가 어려워요  (0) 2021.07.31
남은 것들  (0) 2020.02.05
부서지는 것  (0) 2020.01.18
다만 오늘  (1) 2019.06.14
칠월  (4) 2019.06.14

출간

2019년 5월, 소영현 외 12인, 『#문학은_위험하다』 발간 링크


발표글

2019년 12월, 《포지션》, 「누가 시를 읽는가」

2019년 8월, 문학웹진 《비유》, 「작가연대 총파업 돌입, 작가들 노동환경 개선되나」링크

2019년 봄호, 《문학과사회》, 「현장-스코어-비평」링크

2019년 2월, 임지은 시집 『무구함과 소보로』 해설, 「범람」링크

2019년 1월, 이기인 시집 『혼자인 걸 못 견디죠』 해설, 「셀 수 없는 것」링크

2019년 1월, 《크릿터》 리뷰, 「탈출구-문보영론」링크

 

포럼

2019년 10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였는가?문학분야 정책 비평 발표 링크

 

좌담

2019년 8월, 《문장웹진》, 「'비평지'를 만드는 사람들」 좌담 사회 1편 링크 2편 링크 

2019년 7월 《연극in》, 「미투 이후 1년, 연극은 달라졌는가?」 좌담 패널 1편 링크 2편 링크

2019년 5월, 《모티프》, 「인터뷰-비평 : 잘 알지도 못하면서」링크

 

행사 

2019년 8월, 심훈문학상 챌린지 리뷰 및 비평 패널 링크링크

2019년 8월, 위험한 북토크, 〈#해시태그는_위험하다 패널 링크

2019년 7월, 요즘비평포럼, 비평가는 어디에 있는가? 패널 링크 

2019년 1월,  내/일을 위한 시간〉예술계 협동조합 사례 발표 링크

 

강의

2019년 4월, 문학출판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 이후 페미니즘 문학비평 담론특강, 말과활 아카데미↘링크 

 

기획

2019년 8월, 문학웹진 《비유》 의 '?'(묻다) 코너의 '공동체' 키워드 기획 링크

2019년 8월, 《문장웹진》, 「'비평지'를 만드는 사람들」  좌담 패널 선정 및 주제 기획 ↘1편 링크 2편 링크 

2019년 1월, 문학웹진 《비유》 × 《문학3》  공동 주최 내/일을 위한 시간링크

 

기타

2019년 5월, 제24회 한겨레문학상 심사 링크 

2019년 5월, 미투 공동포럼 미투 운동 1년, 한국 사회에 찾아온 변화토론 링크 

1

 

태어나 처음으로 야구장을 갔을 때를 기억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것을 처음 보았고, 나는 아직 어렸으므로 그저 부모님과 함께 외출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들떠 있었다. 손등으로 흘러내릴 만큼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아껴 먹으면서 사람들이 소리 지를 때 함께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들뜸이 조금씩 지쳐 갔던 것 같다. 아마 아직 어린 아이가 관람하기에 야구는 지나치게 길고 정적이고 복잡한 게임이었을 것이다.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분명 한낮에 입장을 했는데 지금은 해가 졌고, 태어나 처음으로 보게 된 저렇게 밝고 큰 조명 장치하며, 모두가 숨죽이고 있다가 일시에 터지는 함성들 같은 것 말이다.

 

저 마름모꼴 흰색 선은 누군가 땅 위에 그려 놓은 것에 불과한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금방 지워져 버릴 저 도형의 내부 혹은 외부의 특정한 어떤 위치에 공이 위치한다는 사실 때문에 모두가 때로는 모든 것을 잃은 듯이 절망하고 때로는 세상의 전부를 얻은 듯이 열광하고 있으니까.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안과 밖에서 울고 웃으며 사는 것이 인간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지만, 대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뭘까 곰곰 따라가면 저 야구장의 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러니까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이 직접 선을 그어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의 규칙 속에 흠뻑 빠진 채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는 듯이.

 

낯선 이에게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읽은 것에 대해 씁니다라고 답하곤 했다. 시인은 시를 쓴다고 말할 것이고 소설가는 소설을 쓴다고 말할 것이다. 비평가는 읽는 것에 대해 쓴다. 이것이 비평이라는 장르의 특수성일 것이다. 언제나 ‘~에 대해써야 한다. 세계에 대해 쓴 것을 읽고 그것에 대해 쓴다. 이 이중의 절차는 읽지 않고서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게 만든다. 시인들과 소설가들에게 왜 쓰느냐는 질문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비평가에겐 왜 읽느냐는 질문이 더욱 본질적인 것이다. 읽기를 멈추는 순간, 단 한 줄도 쓸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 비평이므로. 이것이 비평이 스스로 만든 규칙이다.

 

 

2

 

왜 읽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왜 쓰는가에 대해서보다 훨씬 더 답하기가 어렵다. 읽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특히나 시나 소설을 읽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많은 이들은 비평가가 텍스트를 고르고 그에 대해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엔 반대의 상황이 일어난다. 텍스트가 나를 고른다. 그만 읽고 싶어도 도무지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텍스트를 만나게 되면, 그땐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나를 읽는다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한 일이다. 그 텍스트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느낌과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지 관심도 없지만, 그런데도 그 텍스트는 나를 낱낱이 들여다보고 애써 모른 척 해 왔던 것들을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상기시킨다. 그렇게 나는, 읽는 것이 아니라 읽힌다.

 

그런 작품을 만나고 나면 내가 그동안 세계를 이해해 왔던 방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쩌면 그동안 내게 보이던 세계의 모든 것이 다만 나의 합리화, 기만, 위선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읽기라는 건…… 그것이 제대로 된 읽기일수록 파괴의 경험에 가깝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임의적인 것으로 만들기, 확실하다고 믿어 왔던 것을 흔들리는 자리로 되돌리기, 좋은 작품은 오래도록 날 지켜 주었던 믿음을 가차 없이 파괴한다. 나는 모두가 함께 열광하고 절망하는 큰 경기장 속의 무수한 의자들 중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손등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보면서 어리둥절해지는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범람이다. 텍스트가 내 삶을 구체적으로 부수고 들어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읽고 쓴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계속해서 부수면서 살아가는 일이 아닌가. 마치 한 번의 큰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며 공들여 모래성을 쌓는 것에 가깝지 않나. 그렇게 계속 읽고 쓰다 보면 결국은 어떤 진실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쥐게 되는 것은 아주 단단한 무지, 결코 파괴할 수 없는 무의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코 뚫을 수 없는, 어떤 빛도 스며들 수 없는 단단한 돌멩이 하나를 쥐기 위해 읽는/읽히는 것일까.

 

 

3

 

나의 할아버지는 글을 쓰시는 분이었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라디오와 책, 종이와 펜으로 삶을 살아가셨다. 일어로 쓰인 그 글들은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장애인의 아내로 사느라 평생을 고되게 보내셨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그 글들을 모두 태워 버리셨다. 이제야 생각해 본다. 저자인 동시에 스스로 유일한 독자였을, 평생을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웠을 그 문장들이, 할아버지에겐 무슨 의미였을까. 왜 쓰고 또 쓰셨을까. 그것이 자신의 삶을 구원해 주리라 기대하셨을까. 아니면 그런 기대조차 없이 읽고 또 쓰셨을까. 인간이 문장을 쓴다는 것은, 그리고 인간이 쓴 것을 읽는다는 것은 아직도 내게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비밀처럼 느껴진다. 세상과 단절된 그 어두운 작은 방에서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집으로 가져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해가 지고 파도가 밀려오면 어둠 속에서 결국 다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모래성을 쌓는다. 이젠 더 이상 아이가 아닌데, 읽고 쓰는 일이 이와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무언가를 제대로 읽을수록 내가 쌓아 올린 모래성은 쉽게 허물어진다. 그 허물어짐에 대해 쓰는 일은 또다시 새로운 모래성을 쌓는 일이고, 그것은 또 다음의 읽기에서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쌓고 텍스트는 파도처럼 밀려와 허문다. 허물기 위해 쌓는 것은 아닌데, 늘 그렇게 된다. 아무것도 쌓이지도, 지속되지도, 남아 있지도 않다. 세계에 대한 어떤 통찰도 잠시 그럴싸했다가 금방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결국 세계를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영역이 있다. 그렇다면 읽고 쓴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느 겨울이었다. 이미 죽어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 쓴 문장을 밤새 들여다보다가 햇볕을 좀 쬐고 한숨 자겠노라고 산책을 나선 적이 있다. 하필 출근 시간이었고, 잠이 덜 깬 피곤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골목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 모두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있을 때, 나는 그들 사이를 헤쳐 정반대로 걸으며 생각했다. 계속 이 방향으로 가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한사코 그들이 가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나 홀로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산책 내내, 이미 죽은 자의 문장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런 것에 대해 쓰는 일이 참으로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그때였던 것 같다. 아무도 없어 텅 비어 있는 공원에 빛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그날 오전의 공원은 텅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차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죽은 후에도 있을 풍경을 상상해 본다. 어느 시절이고 아이들은 해변가에서 모래성을 쌓았을 것이고, 어느 시절이든 파도는 그것을 허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이 닿는 곳마다 부지런히 쌓고 또 남김없이 허물어 버렸을, 그러나 또 쌓아 올려질 모래성과 반드시 밀려오는 파도에 대해서 말이다. 쌓고 허무는 일이 반복되는 해변이라는 장소 그 자체, 그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여전히 무언가 남아 있다. 아마도 오늘. 언제나 오늘이 남아 있다. 어떤 거친 파도도 오늘이라는 시간만은 모조리 허물 수가 없어서 누군가 또 모래성을 쌓고 마는 것이다. 문장을 쓰는 일이 그저 이 끝없는 우주 속에서 몇 줌의 모래를 쌓아 올리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고 한들 멈추지 않는 것은 아마 읽고 쓰는 일이 항상 오늘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다만 오늘을 살기 위해 읽고 쓰는 것이라고.

 

2016년 봄, 연희문학창작촌 연간지 발표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가 어려워요  (0) 2021.07.31
남은 것들  (0) 2020.02.05
부서지는 것  (0) 2020.01.18
각각의 경건함에 대하여  (1) 2020.01.16
칠월  (4) 2019.06.14

때는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더 이상 시 읽기가 즐겁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를 읽고 읽은 것에 대해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지 5년 차가 되었을 시기였다. 언제 청탁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터무니없이 적은 원고료조차 생활비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어쨌든 계속 글을 써야했다. 애정 없이 쓴 글이 마음에 들 리 없다. 내 글이 실린 잡지가 집으로 배달되어 오면 죄책감과 자조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소포봉투를 뜯어보지도 않고 모른 척 내버려두곤 했다.


물론 시에 대한 마음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집으로 돌아오면 ‘개인회생’이라거나 ‘소송’과 같은 단어들이 오가는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고, 행여나 가족 중 누군가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지 않을까  불안했고, 아니, 사실은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내가 먼저 그런 선택을 하게 될까봐 두려운 시기였으니 문학 같은 것이 뭐가 중요했겠는가. 

 

어쩌면 이렇게 기다렸다는 듯이 한꺼번에 망가지는 걸까 싶을 만큼, 댐이 터지듯 삶이 급속도로 망가지는 시기였다. 나는 그 시기를 진은영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창비, 2012)로 기억한다. 여러 번 반복되는 그 구절을 당신도 기억하는지.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훔쳐가는 노래」중) 이 구절을 읽자마자 울어버렸던 것은 살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을 참으로 잔인하고 아름답게, 한 줄로 요약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시를 읽을 수 있고, 읽은 것에 대해 쓸 수 있어서 삶을 버텨냈던 다른 날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선물처럼 도착한 시집이었지만 그 시들에 대해 쓴 어떤 문장에도 만족할 수 없게 되자 정말로 내 마지막 주머니까지 다 줘버린 기분이었으므로. 그렇게 소포용지에 담긴 책들이 점차 쌓여 방의 한 구석 서서히 잠식해나가던 어느 날, 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

터무니없게도 사랑 이야기를 시작할 참이냐고 묻는다면, 단지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 답하고 싶지만 사랑 이야기로 읽힐 것을 안다. 그 사람은 나의 생활영역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살아오던 사람이었다. 문학과는 전혀 무관한 공부를 했고,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고, 해보고 싶은 일들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사람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쩌면 나는 그 사람보다 그 사람의 삶을 동경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더 이상 건물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었고 그것으로 그 사람과 함께 해야 했던 이유는 충분했다.

 

처음의 기억은 함께 달리기를 하러 갔던 날이다. 사실 전문적인 마라톤 대회는 아니었고 스포츠 용품을 판매하는 한 기업에서 마케팅 차원에서 마련한 행사였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색색의 분말가루를 뿌리면서 달리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내 삶 거의 대부분은 도서관에 혼자 앉아 있는 것으로 이뤄져 있었으므로 그건 내게 큰 도전이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해서 일부러 한적한 장소와 시간대를 골라 외출을 하는 나로서는 평생 경험해볼 일이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 곳에 갔던 것은 단지 그 사람 때문이었으리라.

 

그날의 놀라움을 기억한다. 처음 만난 모르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 여러 색의 가루를 뿌리고 던지고 눈을 마주치며 웃으며 달렸고, 달리기가 끝난 후에는 웃고 춤추고 방방 뛰며 공연을 보았다. 아마 그날 나는 처음 알게 되었던 것 같다. 몸을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이건 내가 처음으로 시라는 장르를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유사했다. 

 

평생 의사소통을 위해서만 말을 사용해보았을 뿐이었던 스무 살의 나에게 시를 읽는 경험이라는 것은 언어를 그 자체로 다루는 법을 처음 배우는 일이었다. 사람은 ‘언어’를 가지고 있는 존재구나, 그 당연한 사실을 새삼 낯설게 깨달으며 그토록 벅찬 마음을 느꼈던 것은 시라는 장르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감각임에 틀림없다. 

 

그날 달리기를 했던 경험도 그렇다. 단지 대중교통을 타기 위해, 누군갈 만나기 위해, 일을 하기 위해, 즉 생활을 위해 몸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몸을 움직여본 최초의 경험이었던 것이다. 마치 처음 시를 알게 되어 하루에 다섯 권씩 시집을 무섭게 읽어대던 스무 살의 그 시기와 거의 유사하게, 서른 살의 나는 몸을 움직이는 방법을 태어나 처음 배운 사람이 되었다.

 

그날 이후,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 대부분을 몸을 움직이며 보냈다. 봄에는 꽃이 핀 길을 함께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달렸고, 여름에는 깊은 바다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바라보았으며, 가을이면 붉고 노란 높은 산을 올랐고, 겨울에는 스노우 보드를 타면서 눈 덮인 슬로프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혹은 매일 다른 날씨에 맞춰서 그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다르게 주어졌고, 살아있는 한 나는 여전히 몸을 가진 존재이므로, 언제든 즐거워질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고 해야 할까.

*

스노우 보드를 타기 시작하면서 카빙을 처음 배웠던 순간을 기억한다. 카빙턴은 보드의 엣지만을 이용해서 보드를 타는 방법이다. 쓰러질듯 거의 바닥에 붙을 만큼 몸이 기울어지는 것이나 균형을 잡으려 보더들이 손을 뻗어 눈을 살짝 스치며 달리는 모습은 마치 오토바이를 완전히 기울여서 타는 모습과 비슷하게 아찔해서 더욱 멋져 보였다. 그런데 카빙을 타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무서울 정도로 빨라서, 과연 내가 저 속도 속에서 버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정작 자세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나자 속도가 빠를수록 훨씬 더 안정적인 자세가 나온다는 걸 알았다. 

 

자전거를 처음 배웠을 때가 떠올랐다. 무섭다고 천천히 달리면 자전거가 더 많이 흔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속도가 빠를수록 턴이 훨씬 안정적이고 보드를 제어하기도 쉬워진다. 카빙턴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볼 때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내가 해보니 그 속도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것이 굉장히 느리고 선명하고 가깝게 다가오는 느낌. 

 

슬로프를 단숨에 내려와선 끝자락에 앉아 내려온 슬로프를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같은 슬로프에 있지만 저마다 느끼는 감각이 전혀 다르구나, 다들 각자의 세계에 있구나, 라고. 내게는 카빙이 그날 내 세계의 전부였지만, 카빙을 가르쳐준 그 사람은 그날 처음 파크를 타고 높이 날아올랐다. 그가 파크를 타고 붕 떠올랐을 때의 그 감각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파크를 타 본 적 없는 사람이 첫 시도를 하는 그 순간은 몸으로 알고 있던 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운동을 한다는 건 몸의 한계와 가능성을 계속해서 다르게 경험해보는 일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자세나 속도가 오늘은 가능해질 때, 어제의 불가능은 오늘의 가능이 된다. 이때 어제와 오늘은 분명히 구분된다. 그걸 성취나 발전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면 우리의 몸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까. 어제는 해본 적 없는 카빙턴을 오늘 처음 하게 되었다고 해서 조금 더 건강해진 것도, 하루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 더 기울어진 상태로 보드를 탄 것 뿐. 기울어진 상태로 눈 위를 미끌어지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 전부다. 

 

몸을 움직이는 기쁨을 알게 된다는 것은 몸을 멈추는 기쁨을 새로이 알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운 나라로 여행을 떠났던 적이 있다. 열흘의 일정이었고, 당시의 나는 일부러 모든 청탁을 거절하고 있었다. 이대로 청탁이 끊겨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은 여전했지만 그렇다면 이건 내 길이 아닌 거지 중얼거리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두고 글쓰기가 아닌 다른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평론가가 된 이후로 무언가 들을 만한 이야기를 내 놓아야 한다는 압박감 없이 지내는 첫 시기였을 것이다. 시를 읽고, 읽은 것에 대해 쓰는 것이 아주 먼 일처럼 아득하고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모르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를 걸으면서 처음 보는 장소에서 먹고 자고 일어나 걷는 동안 그동안 살아온 내 삶이 비현실적으로 생경해졌던 것을 기억한다.

 

아마 둘째 날이나 셋째 날 쯤, 머무는 숙소가 조금 익숙해지고 ‘오늘의 해야 하는 일’ 없이도 살 수 있구나, 정말 이상하고 신기하다, 그런 마음으로 해변을 나갔다. 아주 더운 시간이었다. 수직으로 내리꽂는 한여름의 바다 속을, 숨을 참고 물속을 몇 번이나 잠수해 내려갔는지 모른다. 피로함이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걸어 나와 나무 그늘을 찾아 앉았다.

 

그때, 바람이 불었다. 우선 소리가 들렸던 것을 기억한다. 나뭇잎과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었고 바람은 연이어 바닷물에 완전히 젖은 나의 몸을 잠시 감싸며 지나갔다. 바람이 지나가며 내 몸에 묻어 있던 물기와 만나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은 내가 그동안 살아온 어떤 시간과도 다르다는 것만은 똑똑하게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언제 변하는가. 이전과 다른 경험이 지속적으로 쌓이면서 서서히 달라지는 변화도 있겠지만, 겨우 한순간이 그동안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 잠깐의 정적이, 바람이 나를 스쳐지나가는 그 찰나가 내게는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그때 모든 것이 이전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은 3년 반 정도다. 우리가 어째서 더 이상 서로의 삶을 나눌 수 없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곱씹어 보지만 내가 여기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내 삶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다. 그 사람의 삶도 그 사람 것은 아니어서 여러 번의 결심과 시도, 노력을 거듭하던 중에 우리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올해부터는 작업실을 하나 구했다. 집으로부터 걸어서 30분을 가야 하는 거리인데, 아마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고르라면 작업실로 출퇴근하는 시간일 것이다. 나는 그 길들을 걷는 것을 사랑한다. 골목길인 탓에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고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간혹 지나다닌다. 그 길들엔 두 개의 놀이터와 초등학교가 하나 있다. 집에서 작업실로 가는 동안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아이는 넘어졌는지 서럽게 우는 소리도 들린다. 지나가게 되는 첫 번째 놀이터 건너편에는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테라스에는 흡연자들을 위한 테이블 하나가 놓여있는데, 평일 오후의 카페는 언제나 한적해서 그 자리가 비어있다. 

 

비흡연자가 유일한 흡연석을 차지하는 것이 눈치가 보이지만 그 카페의 사장님은 내가 그 자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 있어서, 주문을 하면 항상 먼저 물으신다. “오늘도 바깥에서 드실 거죠?” 내가 카페를 들르는 시간은 테라스에 그늘이 생기는 시간이다. 마치 수영을 마치고 그늘에서 젖은 몸을 말리던 여행지에서처럼, 깊은 잠수를 앞두고 호흡을 다듬는 다이버처럼,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동안이라도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생각을 비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들려오는 소리에 귀 기울일 것, 햇빛의 온도에 집중할 것,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아래 함께 흔들리는 그림자를 바라볼 것, 그렇게 나를 둘러싼 세계에 내 몸의 감각을 한껏 열어놓을 것. 

 

찬란한 여름 햇살과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 팡팡 피어나는 여름 꽃들로 언제나 활기찬 늦은 오후의 길을 걸어 작업실에 도착하면 저녁 내내 책을 읽는다. 자정이 넘은 후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텅 빈 놀이터와 초등학교, 간격을 두고 켜져 있는 가로등을 따라 걷는 동안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 하나를 사들고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귀가하는 동안, 여름밤의 바람은 완벽하다.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은 후의 일과는 보드를 들고 공원으로 나가는 것이다. 입문만 하고서는 그다지 연습하지 않고 내버려둔 것이 몇 년인데,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기 시작하자 다시 스케이트 보드를 제대로 타보고 싶어졌다. 나의 허리 높이보다 더 긴 롱보드를 가지고 공원으로 향할 때의 시간을 뭐라고 해야 할까. 

 

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이제 그 사람은 없고, 그 사람과 함께 하던 것들은 여전히 남아 내 삶이 되었다.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3년의 시간을 서서히 그러나 결국은 완전히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가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계절과 날씨가 바뀔 때마다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매일 선물처럼 주어진다는 것을 항상 알고 있을 테니, 그 사랑이 가능케 했던 것들은 내가 살아있는 한 감히 영원한 것이 아닐까. 

*

어느 스키장의 슬로프에서 시즌권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네 시간 정도 보드를 쉬지 않고 타다가 야간권이 끝날 때 즈음에 시즌권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다. 안주머니 지퍼를 열어놓고 점프를 하다가 흘린 모양이었다. 당황한 우리는 장비를 구석진 곳에 던져놓고 걸어서 슬로프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넓고 넓은 슬로프에서 손바닥보다 작은 시즌권을 찾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어서 삼분의 일쯤 걸어 올라가다 말고, 슬로프 가장자리에 털썩 누워버렸다.


함박눈이 하늘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문득 내가 우주 속에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이상하게 벅찬 기분. 몸으로, 얼굴로 쏟아지는 눈 속에 한참을 누워 있었다. 금방 쌓여가는 눈은 아주 부드럽고 푹신했다. 내 옆에 엎드려 있던 그 사람은 땅으로 금방 내려앉은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눈이 아직 살아 있다고, 숨을 쉬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이 꼭 아이의 말 같아서 웃었는데, 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 같기도 했다. 나는 아직 살아있고, 숨을 쉬고 있구나. 이런 감각을 느끼기 위해 나는 살아 있는 것이라고, 이것을 잊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막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눈이 펑펑 내리는 한겨울의 슬로프에서의 일인데도 여름이 막 시작된 칠월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내게 칠월이란, 삶에 대한 최고의 비유인 모양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이 구절을 읽고 내가 그토록 전율했던 것은 아마 주머니에 있는 모든 것을 삶으로부터 빼앗기는 중이었던 시간을 이 구절에서 다시 확인했기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에도 가능한 사랑이 있다는 것, 그걸 너무나 믿고 싶은 사람들의 절박함을 시인이 이토록 매력적인 언어로 붙들어둔 덕분이었으리라. 

 

이 시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다시는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기를 지나고, 여전히 시를 읽고, 읽은 것에 대해 쓰며 살아가고 있다. 내 삶은 나의 소유물은 아니므로 사랑과 마찬가지로 이것이 언제까지 내게 허락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언젠가 더 이상 시를 읽지 못하게 되고 시에 대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날이 오더라도 두렵지 않은 것은, 시를 읽을 때에만 가능했던 것들은 내가 살아있는 한 감히 영원할 것이므로. 그렇게 언제나 칠월이다. 

 

2018. 3월 독립문예지 《베개》 3호 발표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가 어려워요  (0) 2021.07.31
남은 것들  (0) 2020.02.05
부서지는 것  (0) 2020.01.18
각각의 경건함에 대하여  (1) 2020.01.16
다만 오늘  (1) 2019.06.14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