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여행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여행해왔다.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자신도 모르는 것에 대해 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 글을 쓰겠노라고 쉽게 약속했던 것은 쓰는 동안 알지 못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만 몇 개의 기억들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타이베이를 벗어나 중부 지역인 타이중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일정은 아리산을 방문하는 것이었는데, 예약해놓은 숙소는 아리산 해발 1200m 위치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구불거리는 산길을 한참 올라야 해서 아주 피로해진 상태였다. 장거리를 이동해야 했으므로 숙소에 온 것만으로 하루가 모두 가버려서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숙소의 부엌을 둘러보다 마을을 소개해둔 지도를 발견했다. 지도 한 귀퉁이에 ‘firefly trail’이라고 써져 있었다. 조금 더 어두워지면 반딧불이를 보러 여길 가볼까 싶었는데, 안전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은 숙소에 묵는 다른 게스트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들도 가보지 않아 알지 못한다고 대답하며 흥미를 보였다.

 

저녁 아홉시 쯤 지도 한 장을 접어 주머니에 넣은 채로 숙소를 나섰다. 산골 마을답게 상점들은 당연히 모두 문을 닫았고 가정집들에서 드문드문 불빛이 흘러나왔다. 가로등이 밝게 켜져 있어 ‘firefly trail’의 입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는데, 그 입구에서 돌아 나오는 한 가족이 있었다. 각각 다섯 살, 여덟 살 쯤 되어 보이는 두 남자아이를 한 명씩 안고 있는 부부는 한 손에는 내가 가진 것과 같은 지도를, 다른 한 손에는 손전등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반딧불이를 보았느냐고 물어보니 길이 너무 어두워 몇 걸음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에게 행운을 빈다고 말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핸드폰 플래쉬 불빛에 의지해서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아마도 이 작은 산골마을 사람들은 이 길을 처음 만든 이후로 전혀 관리를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서서히 길 위로 울창한 식물들이 뒤덮어가고 있었고 이러다가는 돌아오는 길을 잃겠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나서 왔던 길을 되짚어 나왔다. 반딧불이를 반드시 봐야겠다는 집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저 숙소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지도를 다시 살펴보니 길이 하나 더 있었다. 

 

새로운 입구를 찾았을 때의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기억한다. 아리산의 그 울창한 열대 나무들로 빼곡한, 그야말로 ‘밤의 숲’이었다. 빛이라곤 저 멀리 마을의 마지막 가로등 빛과 내가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 불빛이 전부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그토록 완벽한 어둠은 처음이었다. 이제 나는 반딧불이의 빛이 아니라 숲의 어둠에 홀린 기분으로 한발 한발 숲 속을 걸어 들어갔다. 가로등 불빛이 더 이상 도달하지 않기에 사방이 가늠할 수 없는 어둠으로 가득 찼을 때에야 내가 아주 위험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멈출 수는 없었다. 이토록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생생한 어둠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얼마나 걸어 들어갔을까, 여기까지 왔는데도 반딧불이를 만나지 못했다면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그러나 밤의 숲에 완전히 매혹된 상태였으므로 나는 잠시 핸드폰 불을 껐다. 완전한 어둠을 경험하고 싶었고, 이 깊은 숲속에서 올려다보는 별빛이 찬란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은은히 빛들이 켜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반딧불이로 가득한 숲속에 도착했던 것이다. 그 연한 빛들이 핸드폰의 차갑고 선명한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음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하늘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별들이 빛났다. 순식간에 빛으로 가득한, 밤의 숲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나는 길 위에 조용히 앉아 점멸하는 반딧불이의 빛들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왜 반딧불이의 빛에 매혹되는 것일까? 연약함 때문일까. 

 

숙소로 돌아와 불을 끄고 반듯하게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다른 나라의 산 속에서 반딧불이를 보고 돌아와 낯선 방에서 잠을 청하는 나 자신이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하는 기분이 들었고,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밤의 숲속에서의 경험이 꿈처럼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무서운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다. 그토록 아름다운 경험 이후에 어째서 이런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타이베이에서 묵기로 했던 숙소는 시내로부터 조금 떨어져 있는 조용한 주택가의 한 가정집이었다. 호스트는 자신을 비디오 아티스트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초행길이라 헤맬지도 모를 나를 위해 지하철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숙소에 들러 짐을 내려놓고 동네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집에서 십분 정도 걸어 나갔더니 상점가와 시장이 나왔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카페와 음식점들을, 집 근처의 저렴한 마트를, 집 근처의 공원을 가는 방법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여행이 아니라 이사 온 느낌이 들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안내를 받고 숙소에 돌아와서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오늘은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시립미술관에 갈 것이라고 대답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미술관이 문을 닫을 무렵에야 깨어났다. 호스트는 외출하고 없었다.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고 이른 아침 비행기를 놓칠까 싶어 새벽부터 움직이느라 쌓였던 피로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그때의 적막을 기억한다. 처음 도착한 낯선 작은 방에서 꿈도 없는 깊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 텅 빈 집에 혼자 앉아 있는 동안 공간을 가득 채우던 깨끗한 적막을. 그것을 무엇이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건 서울의 작은 내 방에서도, 일상 속에서 자주 경험하는 감각이었으므로. 어쩌면 그 평범함 때문에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일지 모르겠다. 먼 곳으로 여행을 가더라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 있고, 어딜 가도 그저 나는 나인 것이다. 바꿀 수 없는 것들 속에서 돌멩이처럼 단단하게 굳은 채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열어둔 방문으로 함께 사는 고양이 미미가 들어왔다. 내 캐리어 곳곳을 꼼꼼하게 냄새 맡는 것을 보고 카메라를 꺼내 미미를 찍으며 웃었다. 그제야 나는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날 저녁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정수리에 얼음물을 부은 것처럼 일시에 모든 감각이 깨어나던 그 깨끗한 적막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빛으로 가득하던 밤의 숲을 보고 돌아와 잠들기 위해 누워 있었을 때 경험했던 감각과 비슷했다. 내게 있어서 모든 경험의 중핵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무의미가 존재하고 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극대화하는 일에 가까운 것 같다. 반딧불이의 수명은 이 주 정도라고 한다. 대만에 이 주 가량 있었으므로 나의 여행 기간이 어느 반딧불이에게는 태어나고 죽음을 맞이하는 전체의 일생이었을 것이다. 아리산은 천년 넘게 산 고목들로 가득했다. 한 자리에 뿌리를 내린 채 천년을 살아온 나무들이 가득한 숲속에서 나의 삶은 반딧불이의 삶처럼 순간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우주 전체의 시간에 비교한다면 나와 반딧불이, 아리산의 고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온 지 한 달이 넘었다. 벌써 드문드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겪은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연약한 빛과 깨끗한 적막에 대해 썼고, 이 또한 공정하게 잊힐 것이다. 그뿐이다. 

 

(시인동네, 2017년 7월호 발표)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가 어려워요  (0) 2021.07.31
남은 것들  (0) 2020.02.05
부서지는 것  (0) 2020.01.18
각각의 경건함에 대하여  (1) 2020.01.16
다만 오늘  (1) 2019.06.14
칠월  (4) 2019.06.14

1 2 3 4 5 6 7 8 9 10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