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 석권한 '젊은작가상'에도 별점테러↘링크

(2021년 4월 15일자 기사) 

 

Q. 최근 도서 판매 사이트에서 2021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 대한 ‘별점테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 여성작가에 대한 공격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별점테러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이미 82년생 김지영 때부터 있었던 일이고 흔히 여성서사 혹은 퀴어서사라고 불리는 거의 모든 컨텐츠에 일어나는 현상일 뿐,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플레이스테이션 4게임에서 발매한 라스트 오브 오스2는 전작이 아버지가 딸로 상징되는 소녀를 구하는 이야기였는데, 2편에서 여성 주인공으로 바뀐 데다 레즈비언으로 설정된 것을 가지고 소위 ‘피시가 묻어서 게임이 망했다’고 평가하고 유명 유투버들이 그 게임 시디를 부수는 퍼포먼스가 연달아 나타났습니다. 여성퀴어 존재가 부각된 컨텐츠를 실제로 부수고 그것을 영상으로 찍어 송출하며 ‘사이다’라고 여기는 일에 비한다면 어떤 책에 대한 별점을 낮게 주는 것을 ‘테러’라고 명명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까요? 우리가 무언가를 ‘테러’라고 부른다면 얼마 전 변희수 하사가 죽음을 맞게 된 상황이야말로 ‘혐오의 테러’이며 국방부에서 제출한 문장들이야말로 테러겠지요. 저는 오히려 ‘별점테러’라는 용어가 현실의 폭력을 지우는 것에 기여한다고 생각합니다.

 
Q. 일각에서는 “<사랑하는 일> 속 인물이 ‘한남’이라는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쓰지만,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에서 등장인물은 게임에서 쓰이는 ‘혜지’라는 여성혐오 표현을 비판한다”면서 “이는 평가위원들이 여성혐오만 문제 삼고 남성혐오는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많은 이들에게 잊혀지고 있지만 2016년 10월 문학출판계 성폭력 문제가 터졌을 때, 공론화된 대부분의 내용에서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르면서 이를 ‘예술적인 것’으로 정당화하는 공통점이 나타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문학 뿐 아니라 예술계 전체에서 나타난 성범죄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입니다. 그동안 예술사는 끊임없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미적인 것과 동일시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입시라는 제도를 통과하기 위해 그런 작품들을 고전으로, 정전으로, 문학의 정답으로 교육 받아왔습니다. 저만 해도 학부 전공 시간에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페미니즘적 시선으로 보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문학’이라고 교육 받았던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심사위원들이 이러한 맥락을 모두 지우고 작품에 혐오 표현이 있느냐 없느냐만 가지고 심사를 했다면 그것이 더 큰 문제겠지요.


Q. 여성이슈나 퀴어를 다룬 작품들이 문학계에서 ‘주류’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런 작품들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현재 한국사회에서 제작되고 있는 모든 컨텐츠들 중에서 “여성이슈나 퀴어를 다룬 작품들”이 과연 몇 프로나 차지할까요? 제가 2017년에 제 62회 현대문학상을 탔을 때 시와 소설, 평론 수상자가 처음으로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들은 말이 “역시 요즘 우먼파워라니까!”와 같은 감탄사였습니다. 그동안 남성들이 수상하는 일이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여성이 상을 타면 그것이 특별하고 아주 큰 일로 느껴지면서 심지어 ‘주류’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말로 총 62번의 시상식 중 전원이 여성이었다는 것이 최초라면, 98%의 ‘맨 파워’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요. 그동안 남성들이 수상해온 경력과 비슷하게 60년 이상 여성만이 수상을 해야 겨우 동등해지는 환경입니다. 즉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그것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것이 ‘주류'처럼 보이는 시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작품을 읽지 않고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작품을 읽고도 이런 별점테러에 공감하는 독자층도 있는 듯합니다. 작가나 비평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거나 독자들이 의견을 나눈다면, 오해나 갈등이 사그라들 것이라고 기대하시나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에 기반한 경험과 주로 관계를 맺는 네트워킹에서 주로 사용하는 언어들을 기반으로 의견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최근 미디어 환경은 자신의 의견과 상반되는 데이터가 노출되지 않고 이미 가지고 있는 의견을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빅데이터가 작동하기 때문에 타인의 입장이나 경험을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이 극히 드물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나 경험이 현저히 낮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작가나 비평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한다고 해도 나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의 말을 경청하려는 태도가 없다면 오해나 갈등은 더 큰 적대로 발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이 타인의 경험을 마주할 수 있지 못하고 그것으로부터 영향 받고 있음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대화도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고 판단됩니다. 우리가 현재 대화할 공간이 존재하는지, 그것에 대해 먼저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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