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어나 처음으로 야구장을 갔을 때를 기억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것을 처음 보았고, 나는 아직 어렸으므로 그저 부모님과 함께 외출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들떠 있었다. 손등으로 흘러내릴 만큼 아이스크림을 천천히 아껴 먹으면서 사람들이 소리 지를 때 함께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들뜸이 조금씩 지쳐 갔던 것 같다. 아마 아직 어린 아이가 관람하기에 야구는 지나치게 길고 정적이고 복잡한 게임이었을 것이다. 문득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분명 한낮에 입장을 했는데 지금은 해가 졌고, 태어나 처음으로 보게 된 저렇게 밝고 큰 조명 장치하며, 모두가 숨죽이고 있다가 일시에 터지는 함성들 같은 것 말이다.

 

저 마름모꼴 흰색 선은 누군가 땅 위에 그려 놓은 것에 불과한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금방 지워져 버릴 저 도형의 내부 혹은 외부의 특정한 어떤 위치에 공이 위치한다는 사실 때문에 모두가 때로는 모든 것을 잃은 듯이 절망하고 때로는 세상의 전부를 얻은 듯이 열광하고 있으니까.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의 안과 밖에서 울고 웃으며 사는 것이 인간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지만, 대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뭘까 곰곰 따라가면 저 야구장의 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러니까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이 직접 선을 그어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의 규칙 속에 흠뻑 빠진 채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마치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는 듯이.

 

낯선 이에게 직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읽은 것에 대해 씁니다라고 답하곤 했다. 시인은 시를 쓴다고 말할 것이고 소설가는 소설을 쓴다고 말할 것이다. 비평가는 읽는 것에 대해 쓴다. 이것이 비평이라는 장르의 특수성일 것이다. 언제나 ‘~에 대해써야 한다. 세계에 대해 쓴 것을 읽고 그것에 대해 쓴다. 이 이중의 절차는 읽지 않고서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게 만든다. 시인들과 소설가들에게 왜 쓰느냐는 질문이 본질적인 것이라면 비평가에겐 왜 읽느냐는 질문이 더욱 본질적인 것이다. 읽기를 멈추는 순간, 단 한 줄도 쓸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것이 비평이므로. 이것이 비평이 스스로 만든 규칙이다.

 

 

2

 

왜 읽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왜 쓰는가에 대해서보다 훨씬 더 답하기가 어렵다. 읽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특히나 시나 소설을 읽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많은 이들은 비평가가 텍스트를 고르고 그에 대해 쓴다고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우엔 반대의 상황이 일어난다. 텍스트가 나를 고른다. 그만 읽고 싶어도 도무지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드는 텍스트를 만나게 되면, 그땐 내가 읽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가 나를 읽는다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한 일이다. 그 텍스트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느낌과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지 관심도 없지만, 그런데도 그 텍스트는 나를 낱낱이 들여다보고 애써 모른 척 해 왔던 것들을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상기시킨다. 그렇게 나는, 읽는 것이 아니라 읽힌다.

 

그런 작품을 만나고 나면 내가 그동안 세계를 이해해 왔던 방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어쩌면 그동안 내게 보이던 세계의 모든 것이 다만 나의 합리화, 기만, 위선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읽기라는 건…… 그것이 제대로 된 읽기일수록 파괴의 경험에 가깝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임의적인 것으로 만들기, 확실하다고 믿어 왔던 것을 흔들리는 자리로 되돌리기, 좋은 작품은 오래도록 날 지켜 주었던 믿음을 가차 없이 파괴한다. 나는 모두가 함께 열광하고 절망하는 큰 경기장 속의 무수한 의자들 중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손등을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내려다보면서 어리둥절해지는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일이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범람이다. 텍스트가 내 삶을 구체적으로 부수고 들어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읽고 쓴다는 것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을 계속해서 부수면서 살아가는 일이 아닌가. 마치 한 번의 큰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리기를 바라며 공들여 모래성을 쌓는 것에 가깝지 않나. 그렇게 계속 읽고 쓰다 보면 결국은 어떤 진실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쥐게 되는 것은 아주 단단한 무지, 결코 파괴할 수 없는 무의미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결코 뚫을 수 없는, 어떤 빛도 스며들 수 없는 단단한 돌멩이 하나를 쥐기 위해 읽는/읽히는 것일까.

 

 

3

 

나의 할아버지는 글을 쓰시는 분이었다.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서 라디오와 책, 종이와 펜으로 삶을 살아가셨다. 일어로 쓰인 그 글들은 단 한 번도 세상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 장애인의 아내로 사느라 평생을 고되게 보내셨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그 글들을 모두 태워 버리셨다. 이제야 생각해 본다. 저자인 동시에 스스로 유일한 독자였을, 평생을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웠을 그 문장들이, 할아버지에겐 무슨 의미였을까. 왜 쓰고 또 쓰셨을까. 그것이 자신의 삶을 구원해 주리라 기대하셨을까. 아니면 그런 기대조차 없이 읽고 또 쓰셨을까. 인간이 문장을 쓴다는 것은, 그리고 인간이 쓴 것을 읽는다는 것은 아직도 내게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비밀처럼 느껴진다. 세상과 단절된 그 어두운 작은 방에서 매일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집으로 가져가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해가 지고 파도가 밀려오면 어둠 속에서 결국 다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은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모래성을 쌓는다. 이젠 더 이상 아이가 아닌데, 읽고 쓰는 일이 이와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무언가를 제대로 읽을수록 내가 쌓아 올린 모래성은 쉽게 허물어진다. 그 허물어짐에 대해 쓰는 일은 또다시 새로운 모래성을 쌓는 일이고, 그것은 또 다음의 읽기에서 무너질 것이다. 그렇게 나는 쌓고 텍스트는 파도처럼 밀려와 허문다. 허물기 위해 쌓는 것은 아닌데, 늘 그렇게 된다. 아무것도 쌓이지도, 지속되지도, 남아 있지도 않다. 세계에 대한 어떤 통찰도 잠시 그럴싸했다가 금방 날아가 버리는 것이다. 결국 세계를 충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영역이 있다. 그렇다면 읽고 쓴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어느 겨울이었다. 이미 죽어 지금은 세상에 없는 사람이 쓴 문장을 밤새 들여다보다가 햇볕을 좀 쬐고 한숨 자겠노라고 산책을 나선 적이 있다. 하필 출근 시간이었고, 잠이 덜 깬 피곤한 표정으로 사람들이 골목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들 모두 지하철역을 향해 걷고 있을 때, 나는 그들 사이를 헤쳐 정반대로 걸으며 생각했다. 계속 이 방향으로 가도 되는 것일까. 어쩌면 한사코 그들이 가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나 홀로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산책 내내, 이미 죽은 자의 문장의 진실이 무엇인지, 그런 것에 대해 쓰는 일이 참으로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걷던 그때였던 것 같다. 아무도 없어 텅 비어 있는 공원에 빛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그날 오전의 공원은 텅 비어 있으면서도 꽉 차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죽은 후에도 있을 풍경을 상상해 본다. 어느 시절이고 아이들은 해변가에서 모래성을 쌓았을 것이고, 어느 시절이든 파도는 그것을 허물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람이 닿는 곳마다 부지런히 쌓고 또 남김없이 허물어 버렸을, 그러나 또 쌓아 올려질 모래성과 반드시 밀려오는 파도에 대해서 말이다. 쌓고 허무는 일이 반복되는 해변이라는 장소 그 자체, 그곳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여전히 무언가 남아 있다. 아마도 오늘. 언제나 오늘이 남아 있다. 어떤 거친 파도도 오늘이라는 시간만은 모조리 허물 수가 없어서 누군가 또 모래성을 쌓고 마는 것이다. 문장을 쓰는 일이 그저 이 끝없는 우주 속에서 몇 줌의 모래를 쌓아 올리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고 한들 멈추지 않는 것은 아마 읽고 쓰는 일이 항상 오늘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다만 오늘을 살기 위해 읽고 쓰는 것이라고.

 

2016년 봄, 연희문학창작촌 연간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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